편의점 상비약 늘리는데…알레르기 표시는 ‘식품만도 못한 의약품’
식품·건기식은 알레르기 유발물질 별도 강조 표시
의약품은 깨알 주의사항 속 포괄적 ‘과민증 주의’만
약사 없는 편의점 판매 확대…성분 확인은 소비자 몫
식약처 “전문가 복약지도 전제”…현장과 괴리 지적
- 등록2026.07.23 15:38:10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식품과 건강기능식품 등 제품에는 알레르기 유발물질이 별도 바탕색이나 굵은 글씨로 강조 표시된다. 제조 과정에서 알레르기 유발물질이 섞일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혼입 가능성'을 알리는 주의·환기표시가 활용된다.
그러나 인체에 직접 작용하는 의약품은 사정이 다르다. 알레르기나 과민반응에 관한 정보가 제품설명서의 ‘사용상의 주의사항’에 기재되지만 식품처럼 소비자가 구매 단계에서 특정 성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별도 표시 의무는 없다.
특히 정부가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판매 품목을 현행 11개에서 최대 20개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약사의 복약지도 없이 소비자가 직접 의약품을 선택하는 환경에 맞춰 표시제도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깨알 글씨 속 '과민증 주의'…무슨 성분인지 알기 어려워
우유 알레르기가 있는 소비자 김 모 씨는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을 구매할 때마다 성분 확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약사에게 알레르기가 있다고 먼저 말하지 않으면 첨가제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안내받기 어렵다”며 “제품 겉포장에도 알레르기 관련 성분이 별도로 표시돼 있지 않아 소비자가 스스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최근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구매한 이 모 씨도 비슷한 불편을 겪었다.
이 씨는 “포장에는 ‘알레르기 체질인 사람은 의사 또는 약사와 상의하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어떤 성분을 주의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며 “편의점에는 물어볼 약사가 없고, 제품을 사서 상세설명서를 열어봐도 구체적인 안내가 없었다"고 말했다.
의약품에는 알약의 형태를 유지하거나 제조·보관 안정성을 높이고 맛과 흡수성을 개선하기 위해 유당수화물과 전분, 젤라틴, 대두유 등 다양한 첨가제가 사용된다.
하지만 특정 첨가제에 알레르기나 과민반응 병력이 있는 소비자가 구매 전에 자신이 피해야 할 성분의 함유 여부를 겉포장만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현행 제품 포장에는 ‘이 약 또는 이 약의 구성성분에 과민반응이 있는 사람은 복용하지 말 것’이나 ‘알레르기 체질인 사람은 복용 전 전문가와 상의할 것’과 같은 포괄적인 문구가 주로 기재된다.
그러나 소비자가 해당 의약품의 ‘구성성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이 같은 주의문구만으로 실제 위험을 가려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식약처 “전문가 복약지도 전제”…약사 없는 판매 현실과 충돌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정보 관리 체계가 서로 다르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품은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하는 제품인 반면 의약품은 사용상의 주의사항을 통해 과민반응 정보를 제공하고 의·약사 등 전문가의 복약지도를 전제로 섭취하는 제품"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약품 허가사항에는 사용상의 주의사항 항목이 있으며, 해당 내용을 의약품 용기·포장과 첨부문서에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의약품은 별도의 안전정보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약사의 개입 없이 소비자가 직접 고르는 안전상비의약품의 판매 구조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국민 수요와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올해 12월까지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안전상비의약품을 현행 11개에서 최대 20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약국과 24시간 판매점이 없는 지역에서는 24시간 운영하지 않는 소매점에서도 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안전상비의약품은 일반의약품 가운데 가벼운 증상에 시급하게 사용하고 환자가 스스로 판단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약사법에 따라 성분과 부작용, 함량, 제형, 인지도, 구매 편의성 등을 고려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20개 품목 이내에서 지정한다.
제도는 심야와 공휴일 등 약국이 문을 닫은 시간대의 의약품 구입 불편을 줄이기 위해 2012년 도입됐다. 현재 편의점에서는 해열·진통제와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11개 품목이 판매되고 있다.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는 등록증과 사용상 주의사항을 소비자가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게시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는 제품의 주성분과 첨가제, 알레르기 가능성을 설명해 줄 약사가 없다. 소비자가 포장과 매장에 게시된 주의사항만을 토대로 직접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구조다.
품목 확대가 의약품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안전정보 제공 장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자의 선택 범위만 넓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알레르기 체질인 사람’이나 ‘이 약의 구성성분에 과민반응이 있는 사람’이라는 문구만으로는 소비자가 자신에게 위험한 주성분이나 첨가제를 구매 전에 식별하기 어렵다.
식품·건기식은 알레르기 성분 강조…의약품은 포괄적 경고
식품과 건강기능식품 업계에서는 의약품과의 규제 형평성 문제도 제기한다.
건강기능식품은 제조시설의 품질관리 수준과 별개로 알레르기 유발물질이 사용된 경우 소비자가 구매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포장재에 해당 성분을 표시해야 한다. 제조 과정에서 알레르기 유발물질이 불가피하게 혼입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주의표시도 해야 한다.
반면 소비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과 안전상비의약품에는 식품과 같은 통일된 알레르기 강조표시가 적용되지 않는다. 제품에 따라 첨가제 정보가 설명서나 온라인 의약품 정보에 기재되더라도 구매 전에 겉포장에서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건강기능식품 업계 관계자는 “건강기능식품은 포장 공간이 부족해도 알레르기 유발물질을 소비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해야 한다”며 “반면 의약품에는 같은 방식의 알레르기 강조표시 의무가 없어 규제 형평성 측면에서 불합리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약사의 설명 없이 판매되는 안전상비의약품까지 전문가 상담을 전제로 동일하게 관리하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의 약사도 현행 의약품 표시 방식만으로는 알레르기와 과민반응 위험을 충분히 안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개업 약사는 “환자가 먼저 특정 알레르기 병력을 알리지 않는 이상 의약품에 사용된 유당수화물이나 대두유, 젤라틴 등 첨가제까지 약사가 제품별로 모두 기억하거나 복약지도 과정에서 일일이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며 “제품 겉면에 소비자가 알아보기 쉬운 강조표시가 마련된다면 약사의 복약지도와 환자 안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알레르기 표시 강화가 약사의 복약지도를 대신할 수는 없다”며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를 위한 근거로 활용돼서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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