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기자
- 승인 2023.12.18 07:55
정명섭 식품위생정책연구원장 3개 안 제시
1안, 제46조 전체 삭제…업계 피해 없고 행정력 절감
2안, 위해성 금속·유리만 대상…크기 3mm서 7mm로
3안, 크기 7mm에 2~3호 식약처장 인정 물질과 통합
본지 주최 ‘이물 관리 제도 개선 방안’ 수요 포럼서 제기
식품 이물 보고의 의무인 ‘식품위생법 46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또 다시 제기됐다. 식품업계가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주장을 해오던 해묵은 과제지만 그만큼 식품업계 입장에선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009년 식품 이물 보고 의무 시작 후 14년이 지난 현재 식품기업들의 이물 관리 능력이 월등히 높아졌음에도 당시와 똑같은 규제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 행정이라는 학계의 지적까지 일고 있어 업계 주장도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13일 식품음료신문 주최로 식품산업협회에서 개최된 ‘24회 글로벌 식품환경 조성을 위한 수요포럼’에선 ‘K-푸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이물 관리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학계, 업계, 소비자, 법조계, 정부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발제를 맡은 정명섭 식품위생정책연구원장은 식품 이물 보고의 의무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도 정부가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3가지 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정 원장은 “2009년 식품 이물 보고 의무화 실시 이후 국내 식품산업 주요지표와 위생관리 수준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당시 대부분 식품을 수입하는 상황에서 현재는 글로벌시장에서 K-푸드의 이름을 널리 알리며 수출국으로 당당히 성장했다. 이러한 모든 지표를 고려할 때 식품위생법 제46조 식품 이물보고 의무화 조항은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정 원장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HACCP(해썹)을 예로 들었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제62조에 따르면 식품제조·가공업 중 전년도 총 매출액이 100억 원 이상 영업소에서 제조·가공하는 식품은 해썹 의무 대상 식품이다.
이에 해당하는 식품제조업체에서 생산되는 식품 점유율은 약 77%에 달하고, 우리 국민이 섭취하는 식품의 약 80% 이상은 해썹 제품이다. 실제 HACCP 지정업소는 2009년 563개소에서 2021년 현재 1만356개소로 18.4배 증가했다.
식품 중 ‘이물’은 해썹에서 물리적 위험요인으로 관리되고 있어 이물 보고 의무화를 폐지해도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정 원장의 주장이다.
정 원장은 특히 국제적인 조화를 위해서라도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 EU, 캐나다, 일본 등에선 식품 관련 법규를 통해 이물이 혼입된 식품의 제조·가공·저장·유통·판매 등을 제재하고 있다.
즉 식물 이물을 인체 위험요인이나 식품에 적합하지 않은 물질로 규정하고 있어 구체적인 이물의 범위나 종류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만큼 HACCP, 리콜 제도 하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3mm 이상 크기의 유리·플라스틱·사기 또는 금속성 재질의 물질을 비롯해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동물의 사체 또는 배설물, 곤충류, 기생충, 고무류, 나무류, 토사류 등 이물에 대해 보고가 의무화돼 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이물 조사 판정 결과를 보면 위험하거나 혐오감을 줄 수 있는 금속, 곤충 등 이물 발생 건수는 전체 10% 정도에 불과하고, 판정 결과에서도 63.7%가 판정 불가, 조사 불가, 오인 신고 등으로 조사됐다. 제조 단계 혼입 및 유통단계 혼입은 13.2%에 불과하다고 정 원장은 설명했다.
정 원장은 “이물 보고 의무제도는 전 세계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제도다. 미국 등 선진국조차도 생쥐, 벌레 등 다양한 이물 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나 이물 발생은 100% 완전 예방이 불가해 고의성이 없고 위해성이 낮은 경우 보상처리 등에서도 정부가 직접 관여하지 않고 업계와 소비자간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국내는 이물 의무 보고로 언론에 노출되다보니 기업의 부정적 요인이 발생하고, 블랙컨슈머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또 이물 발생 보고의 의무 및 행정처분 증가로 식약처 관리부서의 행정력이 과도하게 투입할 수밖에 없다”며 “지난 14년간 국내 식품업체의 위생안전 관리 수준뿐 아니라 이물 관리 수준도 향상돼 현행 이물보고 의무와 같은 규정도 국제적인 조화를 위한 개정이 필요한 시기에 도달했다. WTO의 SPS나 TBT 협정문과 동등한 이물관리 수준을 유지해 수입식품 관련, 불필요한 통상마찰을 사전에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 원장은 국내 이물 의무 보고 제도에 대한 3가지 개선안을 제시했다.
1안은 식품위생법 제46조항 전체 삭제하는 것이다. 이 경우 보고대상 이물 건수가 연간 약1700여 건 감소돼 담당부서의 행정업무도 획기적으로 감소되고, 식품업계도 이물 관련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기업의 이윤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안은 금속성 이물, 유리조각 등 섭취 과정에서 인체에 직접적인 위해나 손상을 줄 수 있는 재질 또는 크기의 물질만을 보고 대상으로 규정하고, 동물 사체 및 배설물, 기생충 등 2~3호는 삭제다. 단 보고대상 이물크기 대상은 기존 3mm에서 7mm 이상으로 개정을 골자로 한다.
혐오감을 주는 이물은 재발 가능성이나 타 제품에서 재현성이 떨어져 식품업체 자체적으로 소비자와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또 미국 FDA에서 약 190개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식품 이물을 분석한 결과 7mm 미만의 이물은 외상 혹은 심각한 부상의 위험이 적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국내는 3mm 규정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는 만큼 글로벌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정 원장의 주장이다.
3안은 보고대상 이물크기 대상을 기존 3mm에서 7mm 이상으로 하고, 2~3호 사항을 식약처장이 인정하는 물질과 통합해 관리하는 안이다.
이 경우 이물 보고 관리 및 통계 작성을 담당하는 식약처의 행정업무 감소를 통한 실질적으로 필요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하고, 국정감사나 보도자료를 통해 공표되는 이물 문제를 감소시켜 국내 식품산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 원장은 “이물 관리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이는 식약처도 업계도 반드시 해야 하는 부분이다. 단 지난 14년간 업계에서도 이물 관리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만큼 의무 보고에 대한 틀을 깨자는 것이다. 이미 해썹이나 리콜 등 다른 제도가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 제도가 규제가 되는 불필요함을 없앨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용 식약처 식품안전정책국장은 “기술력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제도를 국가가 주도했다면 앞으로는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업계의 자율적 책임을 부여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이물 관리 제도 역시 업계의 자율성을 부여하며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하지만 제도를 일시에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제도 개선안 3안 정도는 빠르게 검토가 가능하다고 본다. 단 이를 위해서는 이물 조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소비자 접점에서 분쟁조정 기구의 설치도 마련돼야 한다. 업계, 소비자, 학계 등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해 가능한 부분은 삭제와 수정을 거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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