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주=김현옥 기자
- 승인 2026.07.27 11:32
기업이 전략 제안 후 정부가 수출 지원하는 민간주도형 'Next K-푸드 프로젝트' 추진
K-푸드 수출이 사상 처음 15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우리 농식품이 세계 시장에서 더 이상 낯선 변방의 상품이 아니라, 독자적인 이름과 이미지를 가진 하나의 식품군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정표다. 라면과 김, 음료와 과자, 만두와 김밥 등 한국인의 일상에서 출발한 식품들이 해외 소비자의 식탁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제는 ‘K-푸드’라는 이름 자체가 구매를 이끄는 브랜드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150억 달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비관세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고, 국가별 식품안전 기준과 환경규제는 한층 까다로워지고 있다. 할랄·비건·친환경 인증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 확대, 물류비와 환율 변동성까지 수출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K-푸드 수출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이 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에 달려 있다.
푸드아이콘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우리 농식품 수출 정책을 실질적으로 집행하고 있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수출식품본부 전기찬 이사를 전라남도 나주 본사 집무실에서 만나 K-푸드 수출 150억 달러 이후의 청사진을 들어봤다. 그 자세한 내용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 주>

전기찬 이사는 150억 달러 달성을 성과의 종착점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수출 규모가 커질수록 특정 품목과 일부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식품안전과 품질, 물류, 인증, 브랜드 신뢰까지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라고 진단했다.
전 이사는 “한 제품이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10년, 20년 계속 시장을 이끌 수는 없다”며 “소비 세대가 바뀌고 국가별 식문화와 유통환경도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라면과 김 다음을 이을 품목을 계속 찾아내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하는 K-푸드 수출의 다음 단계는 단순히 수출액을 더 끌어올리는 데 있지 않다. 품목과 시장을 동시에 다변화하고, 해외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품질과 안전기준을 확보하며, K-콘텐츠와 식문화를 연결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한편, 중소기업이 인증과 통관, 물류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지원체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150억 달러는 세계 식품시장의 주류 진입을 알리는 이정표
전 이사는 150억 달러 달성의 가장 큰 의미를 K-푸드가 세계 식품시장의 주류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데서 찾았다. 과거에는 교민시장이나 한식당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한국 식품이 이제는 대형 유통매장과 온라인 플랫폼, 현지 소비자의 일상적인 식탁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수출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성장 기반까지 자동으로 견고해지는 것은 아니다. 라면과 김처럼 수출을 견인하는 대표 품목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특정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소비 트렌드 변화나 현지 규제, 공급망 충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 주력 품목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동시에, 시장별 특성과 소비자 수요에 맞는 새로운 품목을 지속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전 이사는 “이제는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며 “차세대 수출품목 육성, 글로벌 신뢰 확보, K-콘텐츠와의 융합, 기업 맞춤형 원스톱 지원, 그리고 한국 식문화의 정체성 강화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질적 성장은 화려한 마케팅 기법이나 일시적인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다. 수출 대상국의 기준에 맞는 안전한 제품을 만들고,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며,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 구매하더라도 동일한 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기본 경쟁력에서 출발한다.
전 이사는 “K-컬처가 K-푸드에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 제품의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한류의 열기가 식을 때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안전성과 품질, 맛이라는 기본이 갖춰져야 시장 환경이 바뀌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품목 정하던 방식에서 기업이 시장 설계 방식으로
이 같은 문제 의식 속에서 aT가 새롭게 추진하는 사업이 ‘Next K-Food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정부가 지원 대상과 사업 방식을 미리 정한 뒤 기업을 모집하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기업이 해외시장 전략을 직접 제안하고 정부가 이를 평가해 뒷받침하는 민간 주도형 수출지원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 이사는 “시장과 소비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곳은 기업”이라며 “기업이 정부보다 시장을 더 잘 아는 만큼, 기업이 전략을 만들고 공공부문은 필요한 자원과 제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Next K-Food 프로젝트는 크게 ‘Value Up’, ‘Brand Up’, ‘Start Up’의 세 축으로 운영된다. Value Up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중소기업과 협력해 공동 수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각 기업이 가진 유통망과 제품 경쟁력, 마케팅 역량을 결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Brand Up은 aT 해외지사가 현지 시장에 적합한 중소기업 제품을 직접 발굴해 브랜드 인지도와 유통 기반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Start Up은 수출 경험이 부족한 초보기업이 시장조사와 상품 현지화, 바이어 발굴, 인증과 통관 등 수출의 전 과정을 단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다.
이는 수출정책의 무게중심을 정부 중심에서 시장과 기업 중심으로 이동시키려는 시도다. 특히 이미 해외 유통망과 브랜드 파워를 갖춘 기업과 우수한 제품을 보유하고도 수출 경험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개별 기업 지원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차세대 주자는 하나가 아니다”…시장별로 다른 K-푸드 육성
라면과 김 다음을 이을 차세대 수출품목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전기찬 이사는 특정 제품 하나를 지목하기보다, 여러 품목이 시장별로 동시에 성장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세계 식품시장이 거대해지고 소비자 취향이 세분화된 상황에서 하나의 스타 품목이 모든 시장을 이끄는 방식은 한계가 있으며, 국가별 소비문화와 소득 수준, 유통환경에 맞춰 다양한 품목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신선농산물 가운데서는 포도와 딸기, 참외 등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포도는 품질관리와 안정적인 물량 공급을 기반으로 수출 확대가 기대되고 있으며, 프리미엄 딸기는 싱가포르와 홍콩, 태국 등 고급 유통시장을 중심으로 콜드체인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참외 역시 주목할 만한 품목이다. 베트남 수출길이 열렸고, 일본에서는 젊은 소비층을 중심으로 관심이 확대되면서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신선농산물 기대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참외의 감마아미노낙산(GABA) 성분을 활용한 기능성 표시가 이뤄진 사례는 우리 농산물이 단순한 신선식품을 넘어 건강과 기능성을 결합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 이사는 “참외는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품종이고, 크기도 1~2인 가구가 소비하기에 적합하다”며 “맛과 외형뿐 아니라 기능성과 스토리까지 갖추면 충분히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가공식품의 외연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과자와 음료를 넘어 김치, 소스, 즉석밥, 냉동김밥, 떡볶이 등 한국인의 평범한 일상식이 해외 소비자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는 외국인이 한식을 특별한 날 경험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집이나 직장에서 손쉽게 조리해 먹는 일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특히 할랄 한우는 새로운 전략 품목으로 꼽힌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수출에 성공한 데 이어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를 보유한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현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할랄 인증과 유통 기반을 확보하는 작업도 병행되고 있다.
전 이사는 “특정 스타 품목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외부 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는 시장별 소비 특성과 성장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해 다양한 차세대 품목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제품의 기능성과 지역성, 브랜드 스토리를 함께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끝난 시장이 아니라 공략 방식이 달라진 시장
전 이사는 중국 시장에 대해서도 단순한 낙관론이나 비관론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과거보다 둔화됐고 현지 식품기업의 경쟁력도 높아졌지만, 온라인 유통이 성숙하고 건강기능식품과 간편식, 신선농산물 등 새로운 수요가 형성되면서 K-푸드에 또 다른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티몰과 징둥, 더우인 등 주요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국 식품관과 역직구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냉동김밥과 건강기능식품, 미니 파프리카와 포도 등 과거와 다른 품목들이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 제품을 평가할 때 국내에서 어느 유통채널에 입점했는지를 확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은, 제품 자체뿐 아니라 플랫폼의 신뢰도가 해외시장에서도 브랜드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한국 식품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모방상품과 위조상품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aT는 상표권 출원과 등록을 지원하고, 온라인 플랫폼과 협력해 유사 디자인이나 모방상품을 탐지하는 한편, 현지 소비자에게 정품 식별 방법을 알리는 캠페인도 추진하고 있다.
전 이사는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 함께 가장 중요한 수출시장 가운데 하나”라며 “예전과 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을 뿐, 온라인 플랫폼과 새로운 소비층, 건강과 편의성을 중시하는 수요를 정확히 읽는다면 충분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수출액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10년을 버틸 구조
K-푸드 수출 150억 달러는 분명 축하할 만한 성과다. 그러나 전기찬 이사의 시선은 이미 그 이후를 향하고 있었다. 라면과 김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 품목을 발굴하며, 기업이 주도적으로 시장을 설계하고, 안전성과 품질이라는 기본기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쌓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가 말하는 K-푸드 수출의 질적 전환은 바로 이 세 가지에서 출발한다.
세계 식품시장에서 K-푸드라는 이름이 일시적인 유행으로 소비될지, 오랜 시간 살아남는 글로벌 식품산업으로 자리 잡을지는 앞으로 어떤 품목을 더 많이 수출하느냐보다, 지금의 성장을 지탱할 기반을 얼마나 탄탄하게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
<다음 회 예고> ②편에서는 중동·인도·아프리카 등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는 지역별 전략과 미국·EU·중국의 비관세장벽에 대응하기 위한 aT의 현장형 지원체계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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