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란·상하이문·상하이짬뽕 등 5개 브랜드 연매출 200억원 중식당 체인사업 넘어 중식 메뉴 개발로 ‘벤처 기업’ 인증
"식당 안에 방 딸린 조그마한 중국집을 경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8살 때부터 중식당 경영을 몸으로 느끼며 자랄 수밖에 없었다. 부모를 돕다가 본격적으로 중식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89년 그녀 나이 23살 때였다. "
가족의 피나는 노력으로 1989년 안산 중앙동 오피스텔 건물 11층에 문을 연 70여석 규모의 중식당 ‘중국관’이 파산 직전까지 가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운영을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여 년이 흐른 뒤 그녀는 현재 전국에 200여개의 중식당을 경영하는 외식전문 CEO로 탈바꿈 했다.
브랜드만 해도 뮬란, 상하이문, 상하이짬뽕, 상하이객잔, 상하이델리 등으로 연매출은 2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국내 최대 중식당 체인을 경영하는 (주)아시안푸드의 조미옥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근 아시안푸드는 중식당 체인사업을 넘어 중식 메뉴 개발로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제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
지난 9월 28일 성남 중원구에 있는 그의 회사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월 1500만원 매출 3개월만에 1억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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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 기질이 있다는 것을 언제 느꼈습니까?
-1989년, 제가 23살 때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중국관’을 도우면서 사업가 기질을 발견했습니다. 부모님은 주먹구구식으로 식당을 경영하셨는데 정말 파산직전까지 갔었습니다. 당시 교육가로서의 길을 가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꿈을 접고 중식당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반드시 매장을 살리겠다는 오기가 생길 수밖에 없었지요. 부모님 가게를 도와드리면서 제일 처음 한 것은 수기대장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작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포스가 일상화돼버렸지만 당시에는 손으로 일일이 작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장을 방문한 고객의 정보를 매일매일 시간대별, 메뉴별, 심지어 성별까지 나누면서 분석했습니다. 수익을 분석하며 며칠을 보내니 매장 운영에 대한 문제점과 고객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집어낸 문제점이 바로 메뉴 판매기여도였습니다. 자장면, 탕수육 등 단품 메뉴만 판매가 집중되는 점이 너무도 아쉬었습니다.
▲대부분의 중국집이 자장면, 짬뽕, 탕수육에 주력하지 않나요?
-그게 싫었습니다. 중국집도 서양식처럼 나눠서 먹을 수 있는 요리, 1인이 즐길 수 있는 코스요리가 없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또한 글자만 적힌 메뉴판도 이해할 수 없었구요. 이때 개발해 낸 것이 세트메뉴였습니다. 지금은 일상화됐지만 1989년 당시 안산에서 저렴한 가격에 탕수육과 자장면 세트를 내놓은 곳은 저희 식당밖에 없었습니다.
세트메뉴를 개발하고 선보이다 보니 메뉴판도 고객들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이미지를 넣었고, 한눈에 보기 좋은 메뉴판을 개발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한 달 매출이 1500만원에 불과했던 매장이 세트메뉴를 선보이고 나서 3개월 만에 월 1억원을 넘겼습니다. 3년이 지나면서는 월 2억원 가까이 올랐습니다.
매출이 오르자 저는 고객 사후서비스를 강화하는 측면에서 고객의 휴대전화에 만족도를 체크하는 해피콜 문자 서비스를 실시하는가 하면 포인트 카드를 별도로 만들어 3% 포인트 적립, 상품권 판매 등을 실시했습니다.
당시가 1999년대였으니까 비공식적으로 볼 때 저희가 국내 최초로 이러한 서비스를 실시했다고 자부합니다. 신 메뉴 개발도 꾸준히 해 1996년에는 국내 최초로 수제 딤섬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이 매장은 월매출 1억원을 올리며 안산 중앙동에서 가장 유명한 중식당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싫어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싫어했습니다. 매장이 바빠진 것도 부족해서 식재료를 조사한다고 시장을 이 잡듯 다니고 벤치마킹 한답시고 안 가본 식당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중식에 대한 열정과 자존심이 있었다면 충분히 진행할 수 있는 업무인데 직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직원들을 독려했습니까?
-직원들에게 중식당 근무에 대한 프라이드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전 8살 때부터 해왔던 일이었던 만큼 재미있는 직장을 만들어 주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때 생각한 것이 교육이었습니다. 직원들에게 해외연수를 비롯한 다양한 교육을 지원해 줬고 중식당을 운영하는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스스로 찾게끔 독려했습니다.
▲아시안푸드는 언제 설립했습니까?
-중국관이 자리가 잡히자 사업문의가 많았습니다. 마침 1999년도에 안산에 삼성홈플러스가 오픈하면서 푸드코트 입점문의가 들어왔습니다. 당시 저는 부모님을 도와주는 차원에서 일을 해서 월급을 받지 않아 수중에 3천만원에 밖에 없었습니다.
6평 남짓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푸드코트 사업은 당시 제 경제사정으로는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입점만 하면 월 1500만 원 이상 벌수 있다는 당시 삼성홈플러스 관계자의 말도 솔깃했습니다. 저는 사업초기 당시 포부를 크게 먹자고 다짐을 했고 법인명으로 아시안푸드를 설립했습니다. 목표는 ‘안산점내 1등 매장을 만들자’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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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과 짜장면 합친 ‘짬짜면’ 처음 선봬
▲6평의 법인회사가 탄생했네요. 어떻게 운영했나요?
-당시 안산점 푸드코트 매장의 간판을 ‘뮬란’으로 정했습니다. 부모대신 전쟁터에 나간 여전사 ‘뮬란’의 대담함을 답습받고 싶었습니다. 각오는 좋았는데 문제는 노하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죠. 이때부터 저는 전국 홈플러스 푸드코트를 모조리 조사했습니다. 차별화 전략을 찾기 위해 발품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여기서도 결론을 하나 얻었습니다.
바로 전국의 푸드코트는 냉면, 비빔밥 등 모두 단품메뉴만 판매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중국관의 경험도 있고 자장면+탕수육+딤섬 등의 세트메뉴를 저렴한 가격에 선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짬뽕과 짜장면을 합친 ‘짬짜면’ 등을 고안해 선보였습니다. 짬짜면은 저희 가게가 전국 최초라고 자부합니다.
또한 메뉴에 대한 정보를 보다 쉽게 소개해주고 싶어서 인조 모형물 메뉴를 만들어 전시를 했습니다. 저는 일본 연수를 많이 다녔는데 일본은 웬만한 가게들도 모두 음식물 조형을 설치해 놓았더라구요. 거기서 벤치마킹을 한 건데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조리복도 아기자기한 유니폼을 별도로 고안해 만들었고 오시는 고객들에게 달력 등을 증정했습니다.
▲매출이 나오던가요?
-1500만원을 벌수 있다는 예상을 깨고 월 1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매장 문을 연지 6개월만에 전국 홈플러스 푸드코트 매장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저보다 홈플러스 관계자들이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저의 영향으로 전국 홈플러스 푸드코트에 음식물 조형을 설치하기도 했으니까요.
이때부터 사업에 봇물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홈플러스 간석점에도 입점을 했고 영등포점에도 입점했습니다. 간석점과 영등포점 역시 반응은 안산점과 비슷했습니다. 직원들이 근무하다가 도망을 갈 정도였으니까요.
이 때문에 영등포점을 오픈할 때는 제가 임신 8개월이었는데 출산 5일전까지 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희 아시안푸드는 2003년 홈플러스 우수 관계사로 시상을 받았습니다. 홈플러스 관계자들이 외식기업은 맥도날드에 이어 저희가 두 번째라고 격려를 했습니다.
▲‘뮬란’이란 간판이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다음 사업은 어떻게 이어갔나요?
-푸드코트를 운영하다 보디 대형 매장 운영에도 욕심이 났습니다. 마침 2006년도에 홈플러스 안산점이 대형 매장운영을 제안했고 이때 문을 연 것이 ‘상하이문’이었습니다.
중식당에 패밀리레스토랑 시스템을 도입한 레스토랑인데 지금은 일상화된 중식 패밀리레스토랑이지만 당시에는 저희가 최초였습니다. 매장은 크게 다이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중국과자, 딤섬을 테이크아웃을 해 갈 수 있는 곳을 구분해 한 장소에 문을 열었습니다. 매장은 오픈 주방으로 만들어서 고객 접객력을 높이고 요리는 스몰디쉬에 담아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게끔 구성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상하이문이 좋은 반응을 얻자 부모님이 경영하시는 중국관과 매출 경쟁을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때 상하이문에서는 ‘맛대맛’이라는 프로모션을 열었고 중국관과 상하이문의 셰프들의 ‘맛대맛’ 대결을 열기도 했습니다.
백화점 식품매장 월 1억8천만원 매출
▲입점 전략이 정말 풍부합니다. 백화점에도 입점했죠?
-홈플러스에서만 운영을 하다보니까 식음시설로는 최고의 기업만 들어간다는 백화점 입점이 욕심 났습니다. 홈플러스에서 대박을 냈기 때문인지 신세계백화점이 본점인 명동점에 입점할 것을 선뜻 승낙했습니다.
이 때문에 신세계 백화점을 겨냥한 프리미엄브랜드를 개발했고 2006년 선보였던 브랜드가 ‘상해식품점’이었습니다. 중국식 만두를 테이크아웃해가는 매장이었는데 메뉴를 저렴한 가격인 1500원에 선보였습니다.
정말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월 1억 7천만원을 벌었으니까요. 이후 2008년 신세계백화점 죽전점에도 들어갔는데 여기서는 4평에서 1억8천만원을 벌었습니다. 매장 평수 단위 판매기여도에서 전국 신세계백화점 1위를 달릴 정도였습니다. 죽전점의 경우 저희 매장이 루이비통보다 매출이 훨씬 좋았습니다. 이 때문에 2010년도에 신세계백화점의 우수 고객사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사업 문의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2009년 선보인 브랜드가 바로 짬뽕 전문점인 ‘상하이짬뽕’이었습니다. 자사 메뉴 중 짬뽕을 특화시킨 브랜드였는데 90여개까지 매장을 확장해놓은 상태입니다. 전체 매장수는 직영가맹점 포함 200여개까지 오픈을 했고요.
▲대표님만의 성공철학은 무엇입니까?
-우공이산(愚公移山)입니다.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말로, 남이 보기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의 성공은 무식할 정도의 메모습관입니다. 또한 외식업은 발품이 최고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 저희 회사는 중식 만두를 만드는 제조기업으로서 벤처기업으로도 인증을 받았는데 이러한 결과물들은 열정 없인 만들 수 없다고 자부합니다.
조 대표가 인터뷰 중 보여준 수첩은 정말 빼곡한 글자들로 가득했다. 또 책상 뒤편에는 중식 외에도 전 세계 요리정보를 담은 책과 자료들로 책장이 가득 차 있었다. 깔끔한 업무공간이라기 보다는 우공이산 정신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조 대표에게 앞으로의 각오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세계 제일의 중식당 기업이 되겠다”는 답변을 건냈다. 조 대표에게 “너무 뻔한 대답이 아니냐” 했더니 “뻔한 게 정작 하려면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식당만 주력하는 조 대표가 한식을 했다면 한식 세계화도 쉽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인터뷰였다.
사진= 이종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