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호텔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시되는 서비스와 고객선호도 등에 대한 평가결과는 어떨까. 전 세계 70여 개국의 호텔·레스토랑을 평가하는 이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저캣 서베이(Zagat Survey)’를 참고했다.
저캣 서베이는 서울에서 신라와 그랜드하얏트, 롯데, 쉐라톤워커힐, 그랜드인터컨티넨탈 등 10여 개의 호텔을 평가하고 있는데, 8년째 신라호텔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매출로는 롯데호텔이, 서비스와 고객선호도는 신라호텔이 ‘국내 최고’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두 호텔은 나란히 30년 역사를 가진 ‘인디펜던트 호텔’(체인에 속하지 않은 독립 호텔을 지칭하는 업계 용어)이다. 서울에는 18개의 특1급(국내 호텔 등급 중 최고 등급: 박스1 참조) 호텔이 있는데, 이 중 해외 유명 호텔 체인이 아닌 인디펜던트 호텔은 신라호텔과 롯데호텔뿐이다.
웨스틴조선, 쉐라톤워커힐, 그랜드인터컨티넨탈은 각각 신세계, SK, GS그룹이 해외호텔의 브랜드를 가져와 운영하는 방식이다. 하얏트나 리츠칼튼 역시 국내업체가 해외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체인 호텔은 해외 본사에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한다. “국내에서 ‘특급호텔 장사’해서 남는 건 하나도 없다”는 한 해외 체인 특급호텔 前(전) 전문경영인의 말처럼, 수익의 대부분은 해외 본사에 돌아간다. 이 가운데 신라와 롯데의 善戰(선전)은 주목할 만하다.
신라와 롯데는 명실공히 국내에서 매출과 선호도 면에서 톱을 차지하고 있는 호텔로, 아시아에서는 일본 도쿄의 ‘오쿠라호텔’이나 홍콩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등이 비슷한 지위를 갖고 있다.
취재 기간 동안 신라와 롯데를 비롯해 서울 시내의 많은 특1급 호텔을 둘러봤지만 규모와 서비스, 식음료업장의 질과 서비스 등 다양한 면에서 신라와 롯데에 비견할 만한 곳은 그랜드하얏트 등 한두 곳에 불과해 보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롯데와 신라 두 호텔이 독립 호텔로 30년 동안 국내 호텔의 자존심을 지켜오고 있는 ‘선의의 라이벌’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호텔 관계자들은 “타깃 고객이 각각 다른 호텔業(업) 특성상 각 호텔을 같은 잣대로 비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우리 호텔이 (분야별로) 상대방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월등하다”고 주장했다.
[1라운드] 영빈관과 반도호텔의 변신
신라와 롯데의 ‘라이벌전’은 30년 전 시작됐다. 1979년 3월, 두 호텔은 이틀 간격(신라 3월 8일, 롯데 3월 10일)으로 문을 열었다. 1914년 문을 연 조선호텔과 1950년대 등장한 대원호텔·금수장호텔 등에 비하면 몇십 년의 차이가 난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그룹인 삼성그룹과 롯데그룹의 서비스업 진출이 꽤 늦었던 셈이다.
그러나 신라와 롯데는 모두 前身(전신)이 있다. 신라호텔은 國賓(국빈) 숙소인 영빈관, 롯데호텔은 국내 최초의 상용호텔인 반도호텔이 그 전신이다. 둘 다 ‘국내 최고, 최초의 숙박시설’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것이다.
1936년 현재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에 문을 연 반도호텔은 지상 8층으로 당시 호텔 중 최대 규모였다. 반도호텔에는 월남의 고딘 디엠 대통령, 미국의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 등 國賓(국빈)과 미국의 록펠러 등 유명인들이 방한했을 때 묵었다. 또 李起鵬(이기붕)과 張勉(장면) 등 당시 정권의 실세들이 반도호텔에서 업무를 보는 등 반도호텔은 ‘권력의 상징’으로 불렸다.
영빈관은 李承晩(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외국 국빈을 위한 숙박시설을 만들라”는 지시에 따라 1959년부터 현재의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에서 공사가 시작돼 朴正熙(박정희) 시절인 1967년 현재의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에 문을 열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관광업 및 호텔산업 육성의 의지를 보인 것은 1970년대. 당시 반도호텔과 조선호텔, 워커힐호텔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호텔은 지금의 여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여서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힘들었다.
정부는 故(고) 李秉喆(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게 “한국의 얼굴이라 내세울 만한 호텔이 없으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호텔을 건설해 달라”고 했다. 또 문을 연 지 5년이 지났지만 경영실적이 좋지 않은 영빈관을 인수해 줄 것도 제안했다. 이 회장은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국제적인 호텔을 세워보자”며 1973년 그룹 내에 호텔사업부를 신설했다. 신라호텔은 5년여의 공사 끝에 1979년 3월 개관했다.
롯데그룹 역시 1973년에 (주)호텔롯데를 신설했다. 이 역시 정부의 요청과 辛格浩(신격호) 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 신 회장은 “세계 어느 호텔에도 비견할 만한 최고급 호텔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호텔롯데는 반도호텔과 반도아케이드를 매입하고, 주변 일대의 부지도 매입했다. 1979년 3월 문을 연 롯데호텔은 지상 38층 규모로 그때까지 국내 최고층 빌딩이었던 삼일빌딩을 누르고 ‘최고층 빌딩’의 자리를 차지했다.

오픈 초기에는 롯데가 더 유명
오픈 초기에는 1000여 개의 객실을 보유한 롯데호텔이 ‘국내 최대’ 호텔로 더 눈길을 끌었다. 또 30년 이상 국내 최고의 호텔로 승승장구했던 반도호텔의 명성 덕에 국내외 고객을 쉽게 끌어올 수 있었다. 특히 개관 후 27일밖에 되지 않은 시기에 제28차 PATA(태평양지역 관광협회) 총회에서 본부호텔 역할을 수행하는 등 국제행사를 다수 유치했다. 또 297.7㎡(90평) 이상의 넓은 로열 스위트룸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어 국빈 숙소로도 자주 이용됐다.
반면에 신라호텔은 오픈부터 쉽지 않았다. 1973년 호텔사업부가 신설됐지만 얼마 되지 않아 석유파동이 터졌고, 1975년에는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공사가 시작된 지 5년이 지난 1979년에야 문을 열었지만, 체인이 아닌 독자 브랜드여서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얏트, 쉐라톤 등 해외 유명 브랜드 호텔들이 전 세계적인 체인망을 강점으로 해외 관광객과 비즈니스 고객들을 끌어들여, 신라호텔은 인지도에서 이에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김정환 신라호텔 서울 총지배인은 “모기업(삼성) 계열사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신라호텔이 최초로 흑자를 낸 것은 오픈 4년이 지난 1983년이었다.
신라호텔이 문을 열 당시 근무한 ‘오픈 멤버’ 중 지금까지 현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 화교 출신의 候德竹(후덕죽) 상무(중식 조리담당)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