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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베이다황, 중국 넘어 아시아 식량창고 되나

곡산 2009. 9. 5. 19:40

[르포]베이다황, 중국 넘어 아시아 식량창고 되나

2009 08/25   위클리경향 839호

ㆍ1950년대부터 황무지 개간 ‘세계 3대옥토’로 불리는 땅…
ㆍ선진기술과 녹색식품으로 브랜드 인지도 업

베이다황의 드넓은 녹색 경작지에 유기농비료를 항공기로 뿌리고 있다. <베이다황농업책임유한공사 제공>
“백리 안에 사람도, 정오의 밥 짓는 연기도 없고 황야를 바라보니 황량하기만 하구나.(百里無人斷午煙 荒原一望杳無邊)”

우리에게는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의 무대가 된 북만주 벌판, 즉 베이다황(北大荒)을 묘사한 시구다. 베이다황이라는 이름은 중국 동북 지방의 북부를 이루는 쑹넌평원과 싼장평원을 본디 인적이 닿지 않은 북쪽의 큰 황무지라는 뜻에서 중국인들이 붙인 것이다. 대초원이 펼쳐져 있고, 온갖 야생화가 만발했으며, 소수의 유목민과 그들이 기르는 말·양 등 가축과 승냥이를 비롯한 각종 들짐승이 공생하던 지역이다. 중국 헤이룽장 기슭의 바크하룬 초원에서 태어난 중국의 원로작가 메이지민은 1979년 발표한 자전적 문학작품 <베이다황>에서 베이다황의 원시적 아름다움을 빼어난 글솜씨로 기술해 전 세계 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몽둥이로 노루 잡고, 바가지로 물고기 퍼내며 들꿩이 밥솥에 날아드는 곳”이라며 옛 베이다황을 묘사한 노래도 유명하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중국 정부는 베이다황을 방치했다.

그런 베이다황이 지금은 비옥한 세계 3대 옥토지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중국 정부가 반세기, 몇 대에 걸친 힘든 분투와 개발을 거쳐 이룬 성과다.

베이다황은 청나라 강희제 때 러시아인의 침입이 잦자 국경 수비 차원에서 군대와 많은 인민을 파견하면서 개간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개간은 1950년대에 이뤄졌다.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북동부 개발정책에 따라 이곳에 집단적이고 정책적인 대이주가 이뤄진 것이다. 1947년 퇴역군인들이 처음 들어온 후 1955년 마오쩌둥 주석은 이곳에 10만 명의 전업군인들을 투입했다. 또 같은 해 8월 20만명에 이르는 지식청년들을 이곳에 내려 보내 개간사업에 뛰어들게 했다. 지식청년들의 이같은 이동은 당시 중국에 불어 닥친 상산하향(上山下鄕 :산촌과 농촌으로 내려간다) 운동과 관계가 깊다.

특히 1968년부터 1978년까지 10년 간 약 1200만명의 지식청년들이 북으로는 헤이룽장성, 서쪽으로는 티베트·신장성·산시(山西)성, 남쪽으로는 윈난성 등 변방 지역의 농촌으로 파견됐다.

이 가운데 헤이룽장성 베이다황에만 1969년부터 1976년까지 모두 54만명의 지식청년들이 들어와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지식청년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중·하층 빈농의 재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당시 이들은 군대와 같은 막사에서 생활하며 농기술 교육과 사상교육을 받았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일이 반복됐다. 1976년까지 이곳에서 영양실조와 사고, 천재지변 등으로 희생된 이들이 무려 1만명에 이른다.

식량난 해결 위해 군인·지식청년 투입
1970년대에 미국의 현대화된 농기계 구입을 시작으로 과학적 방법의 경작이 이뤄졌다. 쌀, 콩, 팥, 밀, 감자, 옥수수 등이 주로 재배됐다. 당시 이곳에는 우익 문화예술인도 대거 투입됐다. 이때 반제 반봉건 투쟁으로 중앙에서 오지인 이곳으로 축출된 이들에 의해 ‘베이다황 판화’가 탄생되기도 했다. 베이다황 판화는 대자연과 싸우며 옥토를 건설하는 힘찬 모습을 유성 잉크의 점도 높은 끈끈함으로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베이다황의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고 있다.

베이다황 박물관에는 당시 이곳에서 일한 이들에게 강조된 ‘베이다황 정신’이 소개돼 있다. ‘어려움을 참아내어 분투하고, 용감하게 개척하고, 전체적 상황을 고려하고, 내 개인을 없애고 봉사하자’는 내용이다. 왕위란 하얼빈사범대학 부총장은 “베이다황의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명인 베이다황에 비해 ‘베이다황’이라는 브랜드와 ‘베이다황 그룹’은 대중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베이다황’ 세 글자가 상표등록된 것은 1965년이다. 그리고 1998년 중국 국무원 비준을 거쳐 헤이룽장 컨(墾)구가 정부·기업 분리를 원칙으로 베이다황 그룹으로 설립됐다. 이로부터 2008년까지 베이다황 그룹은 당해년 영업수입이 464억위안(약 8조5840만원)을 실현하고 중국 500대 기업순위에서 96위까지 올랐다.

이 뿐 아니라 세계 브랜드실험실이 발표한 2009년(제6차) ‘중국 500 으뜸가치브랜드 순위 차트’ 중 베이다황 그룹의 베이다황 브랜드는 103억3700만위안(1조8606억원) 가치로 65위를 기록했고, ‘쌍백돌파’(브랜드 가치 100억위안 돌파, 브랜드 순위 100위 내 진입)의 관문을 통과함과 동시에 이 순위차트에서 농업브랜드로 1위를 거머쥐었다. 이는 지난해와 비교할 때 브랜드 가치는 1년간 58억900위안(1조456억원) 증가했고, 순위는 95위나 오른 것이다. 또 헤이룽장성 농간총국상무국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베이다황그룹의 대외무역 총액은 8억400달러(1447억원)에 달해 지난해 동기 대비 84.5%나 증가했다. 하얼빈시에 있는 그룹 본부의 산하에는 9개 지사와 104개 농목장, 1136개 공업·상업·운송업·건설업·서비스업의 기업이 있다.

베이다황그룹이 펼치는 사업 중 특히 농업 분야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베이다황 농업이 이뤄지고 있는 헤이룽장 컨구는 전체 헤이룽장성 토지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성의 3분의 1의 양식(연 8000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한다. 그 중 상품 양식은 전 성의 2분의 1을 점유하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은 지난 6월 26~28일 헤이룽장성을 시찰하면서 “적극적으로 현대화 대농업을 발전시키고, 국가가 믿을 수 있는 큰 식량창고를 건설하라”며 헤이룽장성 개간 구의 미래 발전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브랜드 쌍백 돌파·농업브랜드 1위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기 위해 1969년부터 1976년까지 모두 54만명의 지식청년들이 베이다황에 들어와 활약했다. <베이다황박물관 제공>
베이다황그룹의 농업분야 회사인 베이다황농업책임유한공사는 2002년 3월 상하이증권거래소에서 증권거래를 시작했다. 이 공사가 생산하는 농산물은 기본적으로무공해·녹색·유기농 식품이다. 현재 경지 62만4000헥타르, 황무지 24만 헥타르가 있다. 이 가운데 녹색식품으로 인정된 면적은 17만4400헥타르, 유기식품으로 인정된 면적은 4만7600헥타르다. 연 양식 종합생산능력은 400만 톤 이상이다. 이 가운데 녹색식품이 100만 톤 이상, 유기식품이 20만 톤 이상으로 농산품의 상품률이 90%에 이른다. 이 때문에 현재 한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중국 농산물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이곳 베이다황 농산물에 대해서만은 어느 정도 거둬들여도 될 것으로 보인다.

공사는 요우이, 치싱, 856, 친더리 등 16개 농업지사를 관할하고 있다. 친더리 농장의 기술책임자는 “이곳에서 주로 재배하는 것은 ‘공육(붉은 벼)131’인데 위도가 높아 일모작밖에 가능하지 않아 미리 모를 키운 후 농민에게 분양하고 있다”면서 “기본적으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생물퇴비를 비료로 쓰는 방식으로 무공해 녹색식품으로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최근 중국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농업구조 및 생산체제 조정을 통해 영농 규모를 확대하고 전업농 육성을 통해 국내외 시장에서 중국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여 새로운 평가를 받겠다는 계획과도 일맥상통한다.

이곳 농민들은 공사로부터 땅을 임대받아 경작을 한다. 땅에 무엇을 심을지, 농약과 비료는 무엇을 사용할지 등은 공사와 상의해 이뤄진다. 땅 사용료를공사에 내는 대신 수확물에 대한 판매 이익은 농민이 갖는다. 물론 손실에 대해서도 농부 개인이 책임진다. 그래야만 식품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에 따라 적게는 100무(3000평)에서 많게는 1200무(3만6000평)까지 땅을 임대받아 경작할 수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거주하는 부자가 공사로부터 경작지를 임대받아 다른 이를 통해 농사를 짓는 것도 가능하다.

베이다황 농업의 또 다른 특징은 과학적인 경작 방식이다. 농업장비로는 농업용 비행기 30대, 농업용 중형 트랙터 24151대가 있어 수준이 높은 편이다. 

수확기는 물론 인공강우를 위한 로켓과 고사포도 준비돼 있다. 중국의 인공강우는 양적으로 세계 최대이며, 거의 2000개 현 단위 행정구역에 인공강우를 유도하는 장치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농업종합기계화 정도는 92%에 이른다.

고사포를 제외하고 트랙터 등 일반 농기계는 개인 소유이다. 그러나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국가가 구입비의 3분의 1을 보조한다. 여럿이 공동구매하는 일도 있다. 베이다황의 또 다른 농장으로 4만명의 농민이 거주하는 치싱의 기술책임자는 “기계는 개인 소유이지만 기계 관리는 공사가 일괄적으로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농민들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후 트랙터 등 각종 농기계는 농장의 한 공간에 나란히 보관돼 있다.

CJ제일제당과 합작 ‘베이다황CJ’설립
베이다황CJ식품과학기술유한회사의 쌀 단백질 생산을 위한 공장 건설 현장. 김종훈 총경리(왼쪽)가 CJ북대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손문상>

베이다황의 이같은 노력과 성과에 힘입어 해외 합작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CJ제일제당이 베이다황과 손을 잡았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베이다황그룹과 곡물 가공사업 합자법인인 ‘베이다황CJ식품과학기술유한회사’(베이다황CJ)를 하얼빈에 설립하고 해외 곡물자원 확보와 글로벌 식품시장의 본격적인 진출을 선포했다. 베이다황CJ의 지분 참여율은 베이다황 51%, CJ제일제당 49%이다. 총경리 등 주요 경영진은 CJ제일제당에서 맡고 있다. 양사가 합작법인 설립에 들인 투자액은 322억원이다.

CJ베이다황은 중국 헤이룽장성 지역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원료로 미강 단백질, 현미유, 식이섬유 등을 연간 1만4000톤 생산하는 것을 비롯해 콩·옥수수 등 기타 작물의 재배나 가공사업에도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올 12월까지 쌀미강 처리 생산공장을 완공하고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현미유는 올 10월 말 첫 생산이 이루어지고 미강단백질은 공장이 완공된 후 본격 생산될 예정이다. 김장훈 베이다황CJ 총경리는 “대두 단백질에 비해 쌀에서 추출되는 미강 단백질은 소화율이 100%에 이르고 알레르기가 없으며 GMO가 없는 장점이 있다”면서 “어린이 이유식, 시리얼 등 각종 단백질 강화 제품에 활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CJ베이다황에서 생산하는 현미유나 미강단백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는 일본, 한국, 홍콩의 고소득층을 겨냥해 판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헤이룽장성·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