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공식품만 죄인인가? 정치 논리에 무너지는 국내 식품 가격 정책-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439)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6.06.08 07:46
원인 해결 않고 식품 기업만 압박은 보여주기식 정책
품질 저하·연구개발 축소 등 초래…소비자 신뢰 잃고 산업 경쟁력 약화
K-푸드를 전략 산업으로 인식…공급망 전체 보는 균형 감각 필요
최근 식당과 급식업계의 한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쌀값은 오르고, 축산물 가격은 치솟고, 채소·수산물 가격까지 줄줄이 상승하면서 현장의 원가 부담은 이미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급식업체들은 제한된 식단 단가 안에서 계약을 유지하기조차 버거워하고 있으며, 외식업계 역시 메뉴 가격 인상 압박 속에서도 소비자 눈치를 보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결국 소비자는 ‘밥상 물가’라는 이름으로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지금의 식품 물가 불안은 특정 품목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독 한 산업만 반복적으로 정부 압박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바로 가공식품업계다.
라면, 빵, 음료, 장류, 과자 등 식품기업들은 원재료 가격 상승은 물론 물류비·인건비·에너지 비용 증가까지 동시에 견디고 있음에도, 가격을 올리면 곧바로 ‘물가 상승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반면 정작 원재료 공급 단계인 농수축산물 가격 상승에 대해서는 시장 논리라는 이름 아래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가 유지된다. 과연 이것이 균형 잡힌 가격 정책이라 할 수 있는가?
식품산업은 단순히 원재료에 마진만 붙여 판매하는 산업이 아니다. 농축수산물이라는 불안정한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저장·가공·유통해 국민 식생활을 유지하고 시장을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국가 기반 산업이다.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면 가공식품 가격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밀가루 가격이 오르면 빵값이 오르고, 돼지고기 가격이 오르면 햄과 소시지 가격이 오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산업 원리다.
최근에는 국제 정세 불안과 이란 전쟁 여파로 비닐·플라스틱·알루미늄 등 포장재 가격까지 급등하고 있다. 여기에 전기·가스 요금 인상과 환율 부담까지 겹치면서 식품기업들의 제조 원가는 전방위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급 단계의 가격 상승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으면서, 최종 소비재 가격만 억누르려 한다. 이는 마치 상류에서 물을 무한정 흘려보내면서 하류에만 범람 책임을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격 상승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마지막 단계인 가공식품 기업만 압박하는 방식은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정책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방식이 산업 전체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가격 억제 압박이 지속되면 기업은 결국 품질 저하, 용량 축소, 연구개발 축소 등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식품업계에서는 제품 중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이 반복되고 있으며, 중소 식품기업들은 원가 부담을 견디지 못해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생산 중단이나 사업 축소까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가격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소비자 신뢰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약화시키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외식업과 급식업은 이제 사실상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
급식 단가는 공공기관이나 학교 계약 구조상 쉽게 올릴 수 없는데 식자재 가격은 계속 상승한다. 결국 급식 품질 저하나 사업 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외식업 역시 인건비와 임대료, 배달 수수료 부담까지 겹쳐 이미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가공식품 가격만 인위적으로 억누르려 한다면 이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책임 전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제는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물가 안정은 특정 산업 하나를 압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공급망 전체를 보는 균형감각과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농·축·수산물 수급 안정 대책, 유통구조 개선, 물류 효율화, 에너지 비용 지원, 식품 제조 기반 안정화 등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병행돼야 한다. 가격 상승의 원인을 방치한 채 최종 식품기업만 압박하는 방식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무엇보다 정부는 글로벌 K-푸드 경쟁력을 떠받치고 있는 국내 식품산업을 단순한 ‘관리 대상’이 아니라 ‘국가 전략산업’으로 바라봐야 한다.
식품산업은 농업과 소비자를 연결하고 국민 먹거리를 책임질 뿐 아니라, 수출과 고용을 창출하는 대표적인 미래 산업이다. 실제로 K-푸드는 이제 반도체·배터리 못지않게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핵심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원가 상승을 감내하면서도 무조건 가격을 억누르라는 요구만 반복된다면 산업의 체력은 급속히 소진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미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구호에 가까운 가격 통제가 아니라 시장 전체를 바라보는 냉정하고 현실적인 정책 설계다. 물가를 잡겠다는 명분 아래 가장 만만한 가공식품업계만 압박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건강한 식품 생태계를 만들 수 없다.
소비자도, 식당도, 급식업체도, 식품기업도 함께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물가 정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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