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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맛의 귀환… 단종식품 재출시의 속사정

곡산 2025. 1. 28. 20:08

아는 맛의 귀환… 단종식품 재출시의 속사정

임온유입력 2025. 1. 27. 08:11수정 2025. 1. 27. 22:27
겉으로는 '보이슈머' 요청에 대한 화답
연구·마케팅 비용↓ 매출 확보 '1석3조'
재출시 열풍 '현재의 저주' 이어질 수도

농심라면(1975), 미노스 바나나우유(1993), 포카칩 스윗치즈맛(2014)….

오래 전 세상에 나와 어마어마한 명성을 얻었지만 끝내 단종된 제품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일종의 '재출시 마케팅'이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로 인한 경기침체에 소비심리가 얼어붙자 식품사들이 연구개발·마케팅비를 최소화하는 길을 택한 결과다. 익숙한 제품에 지갑을 여는 소비자 덕에 출시 초기 안정적 매출 효과도 볼 수 있다. 다만 재출시 열풍이 자칫 신제품 개발 소홀로 이어져 식품사가 '현재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지난 13일 창립 60주년을 맞아 '농심라면'을 재출시했다. 무려 50년 전인 1975년 출시돼 1978년 기존 롯데공업주식회사에서 농심으로 기업 사명을 바꾸게 할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끈 제품이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광고 카피로도 유명하다.

새롭게 출시된 농심라면은 농심 R&D가 보유하고 있던 1975년 출시 당시의 레시피를 기반으로, 최근 소비자 입맛에 맞게 업그레이드했다. 농심은 전통국밥 맛집들이 깊고 깔끔한 국물과 소고기와 쌀밥 전분이 어우러지는 감칠맛에 각종 다진 양념으로 칼칼한 맛을 더하는 특성을 농심라면에 적용했다.

익숙한 것은 맛뿐만이 아니다. 농심라면 패키지도 1975년 출시 당시 디자인을 계승했다. 과거 농심라면을 기억하는 세대에겐 추억을 선물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복고풍의 새로움을 더했다. 농심은 상반기 중 추가로 두 개 제품을 재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서 서울우유도 지난 7일 '미노스 바나나우유' 재출시했다. 1993년 출시돼 오랜 사랑을 받다가 2012년 단종됐던 제품이다. 다시 돌아온 미노스 바나나우유는 국산 원유 함유량 86%에 바나나과즙이 더해져 풍부한 맛을 자랑한다. 특히 원유 함량을 압도적으로 높여 신선하면서도 진한 우유의 맛을 즐길 수 있다. 패키지 역시 1990년대 디자인을 재해석해 소비자 향수를 자극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오리온이 지난해 8월 '포카칩 스윗치즈맛'을 재출시했다. 2014년 출시된 포카칩 스윗치즈맛은 2016년 제품 라인업을 재정비하며 판매 종료된 바 있다. 오리온은 포카칩 스윗치즈맛 이외에도 태양의 맛 썬, 치킨팝, 와클 등도 재출시했다.

잇따른 식품업계 재출시 열풍은 표면적으로는 '보이슈머'의 요구에 화답한 결정이다. 보이슈머란 '목소리(voice)'와 '소비자(consumer)'를 더한 말로, 목소리를 내 자신의 요구를 제품이나 기업 운영 방침에 반영시키는 소비자를 뜻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창구가 늘면서 보이슈머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보이슈머의 요구가 재출시 열풍 배경의 전부는 아니다. 여기에는 경기침체 속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매출은 최대화하려는 식품사 전략도 담겼다. 우선 기존 제품을 재출시하면 연구개발 비용이 대폭 줄어든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레시피에 기반해 품질, 맛을 업그레이드 하는 방식으로 개발되기 때문이다. 패키지 역시 오리지널과 비슷하게 만들기에 디자인 비용 부담 역시 적다. 특히나 재출시라는 사실 자체가 마케팅이 되기 때문에 홍보비용 역시 줄어든다.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과자가 진열돼 있다. 강진형 기자

그러면서도 보다 쉽게 소비자 향수를 자극해 지갑을 열기 수 있어 일정 수준 이상 매출이 보장된다. 기업 입장에선 소비자 요구에 보답하면서 비용은 줄이고, 매출은 보장되는 '1석3조'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경기침체 상황에서 소비자는 맛이 검증된 익숙한 제품을 찾는 경향이 짙다"면서 "제조사 입장에서는 적은 투자로 큰 효과를 누릴 수 있기에 재출시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식품사가 시장을 키우는 신제품 개발에 소홀하면서 단종 제품 재출시에 주력하면 전체 시장이 활력을 잃는 '현재의 저주'에 갇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의 저주란 레드오션이 된 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바꾸기 위한 신제품 개발에 힘쓰는 대신 당장의 비용을 줄이는 데 급급하다 몰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최근 식품업계는 뚜렷한 흥행작이 없다. 농심 신라면툼바 등 인기 끌었지만 기존 제품을 활용한 신제품이었고, 과거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 같은 파급효과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식품사들이 매출액 대비 1%를 밑도는 R&D 비용을 늘려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시장의 활기 되찾을 신제품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산업은 다른 산업 대비 영업이익률이 낮기 때문에 연구개발 투자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도 "내수 시장의 활력을 회복하고 해외에서 K-푸드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쉬운 길로 가기보다는 신제품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임온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