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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트렌드] 일본 전통주 시장 ‘쁘띠 사치’ 활용 불황 타개

곡산 2023. 4. 5. 07:54
[글로벌 트렌드] 일본 전통주 시장 ‘쁘띠 사치’ 활용 불황 타개
  •  배경호 기자
  •  승인 2023.04.05 07:52

업무용 대폭 감소에 가정용도 하락…1.8ℓ 대용량 대신 우유병 크기·파우치형 출시
희소성 높이고 스토리 입힌 상품으로 부가가치 제고
기발한 해저 숙성주 등장…맛·향 차별화해 한정 판매
스타트업 기획 제조주, 고가격 불구 선물용으로 인기

작은 사치를 즐기는 새로운 소비 방식인 ‘쁘띠(Petit) 사치’가 일본에서 유행하면서 사케 등 일본 전통주 시장에서도 저용량 고가품을 지향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코트라 나고야무역관에 따르면, 일본 전통주 시장 출하량은 2021년 약 40만㎘를 기록했다. 이는 최고점에 비해 3분의 1 이하로 줄어든 규모다. 그동안 일본 전통주 시장은 인구 감소 등으로 지속적인 축소 경향을 보였다. 여기에 코로나가 음주 문화에도 영향을 미쳐 집에서 술을 즐기는 소비자가 늘면서 감소세가 확산했다. 최근엔 적은 비용으로 큰 만족감을 취하는 소비 방식인 ‘쁘띠 사치’가 경기 불황과 맞물려 유행하면서 일본 전통주 시장에서도 대용량 대신 저용량에 고가의 술을 추구하는 변화가 널리 퍼지고 있다.

● “다 마실 수 없다” 수요 감소하는 대용량 술

일본 전통주는 현지에서 1.8ℓ, 720㎖, 360㎖ 등 다양한 용량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720㎖ 사이즈가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으며 1.8ℓ 또한 많이 팔린다. 그러나 시장에서 1.8ℓ 대용량 상품에 관한 관심은 매년 크게 줄어들고 있다. 2002년도 이후 전체 일본 전통주 소비량 감소 폭이 약 50~55%인 것에 비해 1.8ℓ 용량은 80% 가까이 감소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사실 일본 전통주 시장은 소비자 기호가 다양해지고 생활 양식이 변화하면서 장기적인 감소 추세였다. 특히 최근 감소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이는 출하량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업무용 주류 수요 감소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1.8ℓ 병 재이용사업자협의회에 따르면 음식점 영업 자제 및 영업시간 단축, 술 판매 제한이 영향을 미쳤다. 일본 전통주는 밀봉한 병마개를 열면 시간이 지날수록 풍미가 떨어져 오래되면 폐기할 수밖에 없는데, 대용량의 경우 저용량에 비해 손실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가정용 수요도 오랜 기간 감소 경향을 보였다. 가정에서 소비하는 주류가 다양해지고 핵가족화가 되면서 가정 내 일본 전통주 수요도 감소했다. 현지 판매자도 대용량이라고 하면 ‘남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2022년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대용량 주류의 수요도 약간은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손실률을 줄이고 다양한 종류의 술을 즐기고 싶은 소비자의 기호를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수요 저하를 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주조업계는 소용량 제품에 집중하면서 전통주 수요를 끌어올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스이게이’ 브랜드로 알려진 스이게이주조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부터 720㎖ 병 제조와 판매에 힘을 쏟고 있다. 대용량의 출하 비율은 2020년 9월 25%였으나 2022년 9월에는 18%로 감소했다. 판매 전략 변화가 효과를 발휘해 2022년 9월 매출액이 전기와 비교해 20% 증가한 12억 엔으로 역대 최고였다.

호쿠세츠 주조는 2021년 고가의 인기 명품 ‘YK35’라는 다이긴죠를 100㎖ 소형 병 타입으로 발매했다. 720㎖가 950엔인 것에 비해 100㎖는 770엔으로 소형 병은 해외 호텔에서만 출하되고 있었으나 소량을 원하는 소비자의 수요에 대응해 국내 판매를 결정했다고 한다.

전통주를 많이 진열하는 기념품 매장에서도 180㎖ 컵에 든 술 외에도 우유병 크기의 소형 병, 100㎖ 파우치형 등 소용량 상품이 진열돼 있다. 매장 관계자에 따르면, 젊은 사람이나 일본 전통주를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소량 타입이 인기다.

소용량 상품은 일본 전통주 애호가 확대에 일정 부분 효과가 있지만, 주조회사 입장에서는 대용량과 비교해 제조할 때 손이 많이 간다는 의견도 있다. 음식점이나 소비자의 니즈에 부응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술 제조 방식을 확립하는 과제가 주조업계에 남아있다.

 고급화 전략으로 소비자 겨냥

인구가 감소하고 술을 즐기는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자 이전과는 다른 고급화 전략으로 고객을 겨냥한 일본 전통주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다. 수량 확대가 어려운 상황에서 전국의 양조장은 다양한 숙성법으로 희소성을 높인 상품을 개발하거나 와인처럼 고유의 스토리를 제작하는 등 부가가치를 높인 상품을 발매하고 있다. 이러한 신흥 고급 브랜드는 소비자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큰 만족감이나 행복을 취하는 소비 방식인 ‘쁘띠 사치’로 인식되며, 경제 재개 후에도 구입 단가가 상승하는 등 눈길을 끌고 있다.

◇해저 숙성으로 깊은 맛 끌어내

해저에서 장기간 숙성한 일본 술이 주목받고 있다. 이 술은 파도의 진동이나 바닷물의 흔들림 등의 영향을 받아 지상에서 숙성시키는 것과는 다른 풍미를 만들어낸다. 고급스러움과 희소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해당 술은 선물용으로 인기다. 이 술은 Forbul이 작년 12월에 출시한 ‘해저숙성주’다. 기존 고급술 ‘TAKANOME’를 병에 넣은 상태로 미나미이즈의 15m 수심 바다에 반년간 넣어둔 다음 마이너스 5도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 냉암소에 1년 반 정도 저장한다. 약 2년간 숙성한 술을 ‘TAKANOME 해저 숙성’이라는 제품으로 판매한다.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코로나19로 음주문화 바뀌고 있는 일본에서는 작은 사치를 즐기는 새로운 소비 방식인 ‘쁘띠(Petit) 사치’가 확산되면서 사케 등 전통주 시장에서도 희소성 높은 상품을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사진은 해저에서 2년간 숙성해 호화로움과 희소가치를 높인 TAKANOME 해저 숙성주. (사진=TAKANOME)

해저에 저장하면 지상보다 숙성이 더 잘 되고 풍미가 부드러워진다. 이러한 메커니즘에는 여러 이론이 있는데, 조류의 진동으로 생겨나는 일정 주파수가 알코올 내 화학 성분에 작용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바닷속은 지상보다 온도 변화가 적어 천연 저장고의 역할을 한다. 해수 온도가 낮고 흐름이 빠른 겨울철이 숙성에 적합하다.

Forbul의 해저 숙성주는 산미나 향 등에 따라 5종류로 나뉘며, 300병 한정으로 판매한다. 숙성시킨 장소와 기간은 같아도, 파도의 진동이나 부딪히는 모양이 다르므로 맛에 차이가 생긴다고 한다. 720㎖의 가격은 3만3000~6000엔으로, 숙성 전 제품인 ‘TAKANOME(180㎖)’를 세트로 구입해 맛을 비교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5가지 종류의 술은 다양한 요리와 잘 어울린다는 점을 판매 전략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Sea of Clouds(운해)’라고 하는 브랜드는 입에 머금으면 파인애플과 같은 향이 퍼지고 산뜻한 산미와 단맛이 특징인데, 소금간이 된 흰살생선 요리와 잘 맞는다고 한다. 작년 12월에 먼저 발매한 2개의 브랜드는 이미 완판됐고 2019년 발매한 ‘TAKANOME’는 Forbul의 홈페이지에서 매주 수요일에 주문받는데 5분이면 완판된다. 이 회사는 앞으로도 나무통에서 숙성하는 등 다양한 숙성법에 관한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기후시에 있는 노포 주조, 시라키코우스케 상점은 2013년부터 해저 숙성에 몰두했다. 미나미이즈의 수심 15~20m에 주력상품 ‘다루마 마사무네’를 병째로 잠기게 해 11월부터 다음 해 6월에 걸쳐 숙성시킨다. 병에는 조개껍데기가 붙는데 그것을 그대로 매년 7월경에 판매한다. 가격은 720㎖에 8250엔이다. 주요 구매 층은 30~40세의 남성이다. 맛의 변화뿐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자연의 촉감을 즐길 수 있어 특별한 선물로 사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매년 완판되고 있으며, 대만 등 해외에서도 거래 문의가 많다고 한다.

◇콘셉트와 스토리를 통한 판매 전략

오래된 주조회사도 고급 제품을 지향하는 흐름에 발맞춰 와인처럼 자신들만의 콘셉트를 구축하거나 스토리를 내세우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SAKE HUNDRED’는 2013년 창업한 스타트업 Clear가 운영하는 일본 술 브랜드다. 회사 측에서는 맛 또는 향기 등의 콘셉트를 기획해 전국의 주조회사에 위탁하면 주조회사에서 양조하는 형식으로 제작한다. 산지 또는 쌀, 제법 등을 엄선하며 총 7개의 브랜드가 있다. 대표 브랜드인 ‘백광’을 포함해 가격대는 2만~22만 엔 대로 고급 와인이나 위스키와 비슷하며 30~40대를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다. Clear에서 평균 구입 단가는 2022년 10월에 3만7348엔으로, 2020년 10월과 비교해 27% 상승했다. 이 회사 대표는 “한 번 구매했던 고객이 자신을 위해 보다 높은 가격대의 상품을 소비하는 것 외에도 선물 용도로 구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도쿄 롯폰기에는 1666년 창업한 ‘야에가키 주조’가 2018년에 창업자명을 붙여 발매한 최고급 브랜드 ‘하세가와에이가’를 개발하기 위한 안테나숍이 자리 잡고 있다. 다실처럼 은은한 조명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공간에 하루 3그룹의 한정 예약을 받아 손님들이 술과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5가지 종류의 술과 일류 요리사가 요리한 제철 안주를 1만1000엔에 제공하며 점원이 술의 원료나 제조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쌀은 효고현의 특정 지역에서 엄선해 재배된 야마다니시키, 물은 이보강의 복류수, 제법은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서 짜는 방식이다. 방문한 고객은 '브랜드의 탄생 경위 및 토지 배경을 살린 주조 방식에 스토리를 이해하며 한층 더 맛을 즐길 수 있다.’고 만족해 한다. 이러한 제조 기술이나 기후, 토지와 같은 특징을 반영한 스토리는 인기 와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다케노카와 주조의 대표 브랜드 ‘코묘 데와산산’은 야마가타현의 주조용 쌀을 원료로 만드는데 정미 배합이 1%이다. 통상 50% 이하의 정미 배합인 쥰마이다이긴죠를 더욱 극한까지 갈고 닦아낸 것이다. 1병에 130만 원이 넘는 가격이지만 일본 현지와 해외 부유층의 문의가 잇따른다고 한다.

한편, 무역관은 최근 일본에서는 인구 감소와 단체 회식 문화 감소 등으로 주류 시장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건강 지향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소량의 술을 즐기는 것을 중시하면서 시장은 브랜드화, 소형화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한류가 확산되면서 한국 주류에 대한 관심과 수요도 많이 증가했는데, 우리 업체가 수출을 희망한다면 건강을 지향하고 소수의 인원으로 다양한 것을 즐기는 일본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