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환율전쟁> ①요동치는 환율

곡산 2008. 3. 16. 18:50

<환율전쟁> ①요동치는 환율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03.16 05:53 | 최종수정 2008.03.16 05:53


< ※편집자주 = 원화가 세계적 약세 통화로 전락한 달러화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이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의 증시 이탈과 경상수지의 적자 전환 가능성 등 원화 약세 요인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새 정부가 수출을 중시하는 환율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되면서 원.달러 환율의 네자릿수 복귀가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환율 급변동의 배경과 전망, 주요 국가들의 환율 정책, 국내 기업들의 대응방안 등을 다각도로 점검해 본다. >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기자 = 미국 달러화가 유로화는 물론 아시아 통화들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이는 등 기축통화로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원화의 가치는 달러화에 대해서도 약세를 나타내면서 2년2개월만에 달러당 1천원선 복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 원화의 약세는 세계적 신용경색 현상과 달러화 수급 변화 등에 따른 것이지만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새 정부 들어 외환정책이 변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환율정책에 있어 `매파'로 간주되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차관이 외환당국의 수장으로 부임하면서 '세계 환율 전쟁'에 수년간 비켜 서 있던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참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환율 상승은 수출에 호재가 될 수 있지만 세계 경제의 급속한 둔화로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개선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물가 불안을 부추기고 금융시장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 달러, 주요 통화중 '최약체'로 전락 =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체면이 구겨지고 있다. 달러화가 최근 세계 주요국가 통화중 최약체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뉴욕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한때 99.77엔을 기록하면서 서방 선진7개국(G7)의 `플라자 합의' 여파로 10년간 하락하며 87엔선까지 떨어졌던 1995년 이후 12년여만에 처음으로 100엔 아래로 떨어졌다.

엔.달러 환율은 작년 6월 중순 달러당 124엔대였지만 작년 하반기 불거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로 달러화 약세가 가속화되면서 9개월간 수직 하락하고 있다.

달러화는 유로화와 중국 위안화 등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유로화 환율은 지난 14일 1유로당 1.5651달러까지 급등하면서 1999년 1월 출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0.82달러선까지 떨어졌던 2000년 10월에 비해서는 7년여동안 달러화에 대해 47.4%나 절상됐다.

중국 위안화 기준환율도 14일 사상 최고치인 7.0882위안을 기록했다. 달러화 연동제를 폐지한 2005년 7월21일 이후 14.5%나 오른 셈이다.

최근 달러화의 약세는 미국 경제 침체와 이를 막기 위한 금리인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위험자산 기피 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저금리 통화인 엔화 등을 차입해 고금리 국가인 미국 등에 투자한 캐리 자금이 속속 청산되면서 미국 정부의 대외불균형 해소 의지를 반영해 2003년부터 시작된 세계적 달러화 약세가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 원화, 달러화에 조차 약세 = 우리나라 원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기피 통화로 전락한 달러화에 조차 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원.달러 환율은 997.30원으로 거래를 마치면서 2006년 1월18일 이후 26개월만에 990원대로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은 2004년 10월 이른바 `최중경 라인'으로 불리던 1천140원선이 무너진 이후 근 3년간 하락세를 보이면서 작년 11월2일에는 장중 800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여파로 국제금융시장에 위험자산 기피 현상이 확산되자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근 넉 달새 100원 가량 치솟았다.

이에 따라 달러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 엔화와 유로화, 중국 위안화 등에 대한 원화의 약세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원.엔 환율은 최근 10거래일새 무려 100엔당 115원 가까이 폭등하면서 3년1개월만에 100엔당 990원대로 진입했다.

◇ 대외여건.수급.정책, 환율상승에 우호적 = 원화가 주요 통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는 것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의 확산에 자극받은 외국인들이 원화자산에 투자한 자금을 빼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 이후 이달 13일까지 약 4조3천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한 외국인들이 달러화로 바꿔 본국 송금에 나서면서 국내 주가와 원화 가치를 추락시키고 있다.

달러화 수급 면에서 10년간 이어진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흔들리고 있는 점도 환율 급등을 초래한 요인이다.
지난 1월 경상수지가 11년만에 최대폭 적자를 기록하면서 두달간 적자를 이어가고 있으며 무역수지는 지난달까지 3개월간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기획재정부 장.차관의 취임일인 지난달 29일 이후 급등세를 지속하고 있는 데는 외환정책의 변화 가능성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자칭, 타칭 `환율주권론자'인 강 장관과 2004년 1년여간 1천140원을 방어하며 `최틀러'란 별칭을 얻은 최 차관의 복귀로 내수와 물가보다는 수출과 성장을 우선시한 환율 정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 역내.외 시장 참가자들이 달러화 사모으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처럼 대외 여건과 수급, 정책 모두 환율 상승에 우호적인 상황이어서 환율이 한동안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삼성선물 전승지 연구원은 "최근 환율 급등세는 외환정책의 변화를 예상한 투기적 달러화 매수세도 가세한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며 "현 추세로라면 단기간에 1천원선 진입이 가능한 상황이며 당국이 묵인할 경우 1천60원대 상승도 가능해 보인다"고 예상했다.

◇ 수출 약효 제한적..물가.외환시장 불안 우려 = 환율 상승은 수출기업의 채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세계 경제의 둔화 전망으로 수출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 결과 2002~2006년 원화는 달러화에 대해 연평균 6.9% 절상됐지만 수출은 교역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세 확대 효과 등으로 연평균 17.4%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난 데서 알 수 있듯 수출에는 환율보다 세계 경제 동향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히려 원화의 `나홀로' 약세가 물가 급등을 부추겨 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올 1월 3.9%로 3년4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 달에도 3.6%로 당국의 올해 전망치 3.3%를 크게 웃돌았으며 생산가물가는 고유가의 여파로 지난달 6.8% 급등하면서 3년3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소비자기대지수가 석달만에 하락세로 돌아서는 등 물가 상승의 여파로 소비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는 시점에서 환율 급등은 소비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당국의 목표치를 넘어선 채 올라가고 있는 물가가 환율 상승의 영향으로 추가 급등할 것이 우려된다"며 "장기간 진행된 환율 하락의 조정은 필요하지만 단기간에 낙폭을 만회하려 할 경우 시장 불안과 외국인 이탈 등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시장 스스로 균형점을 찾도록 맡겨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나 2004년 사례처럼 정부의 일방적 환율 정책이 투기세력에게 악용될 경우 금융시장 혼란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금융연구원 송재은 연구위원은 "환율이 수출에는 도움을 주지만 수출용 원자재 조달 비용의 상승으로 기업의 채산성이나 대외 불균형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당국은 원화의 초약세 현상과 환율의 단기 급변동 등 불안정한 시장 상황을 진정시키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