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지방, 몸무게 속이지 마!!
지금은 다소 잦아들었지만 한동안 방송언론매체에서는 트랜스지방 관련 뉴스로 들끓었다. 트랜스지방 관련 뉴스를 지켜보면서 참 궁금했던 건, 트랜스지방이 유해하다는 뉴스가 나자마자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업계에서 금방 트랜스지방을 저감하고 ‘트랜스지방 0’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을까 하는 것이었다. 문제가 있자마자 금방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은 뭔가 미심쩍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식약청의 자료들과 공청회 등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트랜스지방이 최근 반년 새에 급조하듯 만들어진 이슈가 아니라는 것이다.
식약청에서는 2003년부터 트랜스지방을 저감하기 위해 식품을 모니터링하고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산업체에 간담회를 제안하고, 저감화 기술을 지원하는 등 물밑작업을 지속해왔고, 그 결과 본격적인 규제를 하지 않았는데도 트렌스지방 함량을 줄이는데 성공하였다. 이에 힘입어 과자업계와 제빵업계 등에서 일제히 트랜스지방 제로를 홍보하고 나섰고 그 열기가 과다해지자 지난 2월에는 식약청장이 직접 나서 트랜스지방 제로 표시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이르렀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트랜스지방 저감화 사업은 일정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트랜스지방 0.5g은 수학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일반인들은 영양표시에서 "0"이라는 표기를 전무(全無)의 의미로 이해하기 쉽지만, 영양표시 내 "0"표기는 정량한계, 식품 내 함량, 인체에 미치는 생리적 영양학적 영향 등을 고려한 “무의미한 수준”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식품에서 "0kcal"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면 칼로리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 5kcal 미만을 함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보통 칼로리의 일일권장기준을 2000kcal라고 할때 1/400 수준이다. 그러나 트랜스지방은 다르다. WHO에서는 2003년 트랜스지방 권장기준치를 하루 2.2g 이하로 상정했고, 이것은 0.5g 미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 트랜스지방 0 표시 제품을 5~6회 분량만 먹어도 쉽게 기준을 넘을 수 있는 수치다. 더욱이 1회 분량이라는 것도 소비자의 인식과는 차이가 있어 제품의 포장 총량이 아닌 기업이 임의로 정한 비스킷 2개가 1회분량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도 있어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둘째, 기업의 임의적인 판단 하에 제품 홍보수단이 되고 있다.
현재 '트랜스지방 0'를 선언하고 있는 제품의 근거는 미국의 트랜스지방 0 표시 기준으로 1회 분량당 0.5g 미만에 준하여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국 수준으로 할지 캐나다 수준(0.2.g)으로 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고, 검증절차도 마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임의로 미국의 기준에 근거, 자사의 제품이 '트랜스지방 0'이라고 표시하며 안전성을 강조하고 있고, 지난해 첨가물 문제 이후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의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이 임의로 표기를 하게 되면, '제품에 특정 성분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표기를 하지 않는다'는 표기의 원칙에 따라 트랜스지방 0 표시를 하지 않은 제품이 오히려 트랜스지방이 전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다.
셋째, 기준마련의 합의도출이 선뜻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업의 임의적인 표시에 따라 일반시민이 혼란을 겪고 있음에도 식약청에서는 기준을 정하는데 망설이고 있다. 최근 식약청에서 실시한 영양표시관련 국민인식도 조사(2007.3.20-23, 2,026명 대상)에 의하면 75.5%의 국민이 트랜스지방 0가 실제로 0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으며 97.1%가 트랜스지방 표시를 소수점 첫째자리까지 표시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에 반해 기업에서는 당연히 완화된 규제 형태인 미국식을 선호하고 있다. 공청회에서 기업은 있는 실측값 표기가 외국업체와 경쟁하는데 장애가 되고, 주요판매처인 대형마트에서 트랜스지방 제로 제품이 아니면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트랜스지방 0표시를 사수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측의 이러한 주장은 외국업체 제품도 국내에 수입되어 판매하려면 국내의 법을 따라야 하고, 모두가 0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상품을 구비해 놓아야 하는 대형마트가 업체의 제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억지처럼 보인다. 또 소수점 이하로 표시할 경우 트랜스지방 저감화의 노력을 더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더욱 근거가 희박하다.
식약청의 결론.. 우려할 수준 아니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트랜스지방 모니터링 결과를 두 차례 정도 발표했다. 첫 번째 모니터링의 경우 미국의 가공식품 트랜스지방 함량과 비슷한 정도로 심각했으며 특히 초콜릿가공품의 경우는 미국보다도 높은 수준이었다. 아이들이 트랜스지방의 위험에 더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약청은‘우리의 식생활로 인해 지방의 섭취량이 미국, EU등 보다 훨씬 적어 직접적으로 소비자의 건강상 나쁜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두 번째 모니터링 발표 역시 전제품을 새롭게 모니터링한 것이 아니라 이전의 모니터링 결과에 새롭게 저감된 제품의 시험 결과를 수정해 내놓으며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등 트랜스지방에 대한 경각심을 흐리고 있다.
소비자가 잃은 권리
기업을 바꾸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정부의 규제와 소비자 불매가 그것이다. 식약청은 트랜스지방 저감을 위해 기업을 이끌면서 최대한 기업을 보호하려 애쓰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 소비자는 정부가 결론 내린 정보와 기업의 설레발 홍보를 통해 건강한 소비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왜곡되게 받아들이고 있고, 건강하지 않은 식품을 먹지 않을 권리를 잃고 트랜스지방 저감 과정의 제품을 열심히 소비하고 있다. 식약청에서는 이번 4월에도 또 한차례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모니터링 결과가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대부분 안전하다는 결론을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평소 안전성이 의심되었던 식품들의 홍보가 우리 귀를 시끄럽게 할 것이다. 식약청은 국민의 건강을 위해 시작했던 트랜스지방 저감화사업이 어떻게 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식약청은 트랜스지방 저감을 위해 기업의 편에서 연착륙을 시도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국민의 편에서 국민이 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합리적인 표기를 위해 애써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그렇지 않고 기업의 입장에서 표기제도가 시행된다면 식약청은 트랜스지방 0 표시가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열심히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조만간 학교 교과 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음 중 0 표기를 할 수 있는 것은? ① 열량 5kcal 미만 ② 나트륨 5mg 미만 ③ 트랜스지방 0.5g 미만 :
모든 국민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데, 그 비용대비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과연 그런 정도의 국민교육을 할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식품 등의 표시기준」제 1조를 보면‘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공정한 거래의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현재 임의로 통용되고 있는 트렌스지방 0 표시는 과연 소비자에게‘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공정 거래를 확보’하고 있는가 식약청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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