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맛있게 매운” 우마카라 열풍…K-푸드 기회
- 식품음료신문
- 승인 2026.08.14 09:54
편의점·가공식품 등 일상식으로 확산…강도보다 감칠맛·풍미가 경쟁력
K-푸드, 맵기 세분화·제품군 확대 등으로 시장 공략 해야
로손·세븐일레븐, 비빔밥·볶음면 등 출시 바람
김치·라면서 스낵·소스·만두 등으로 확장 여지
‘일본인은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라는 통념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이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찌개·볶음·무침·양념 등 음식 전반에 활용하며 매운맛을 일상적인 맛으로 발전시킨 것과 달리 일본 음식은 다시와 간장, 미림 등을 바탕으로 재료 본연의 맛과 감칠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최근 일본 식품시장에서 매운맛의 위상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특히 20·30대를 중심으로 매운맛을 즐기는 소비자가 늘면서 외식에서 시작된 변화가 편의점과 가공식품, 소스, 냉동식품 등 일상적인 식품 소비로 확산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일본의 매운맛 소비가 단순히 ‘얼마나 매운가’를 경쟁하는 방향으로만 발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감칠맛과 향신료의 풍미를 살리면서 적절한 매운맛을 더하는 ‘우마카라(旨辛)’가 새로운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일본 시장을 공략하는 K-푸드 기업에도 중요한 변화다. 기존의 ‘한국 음식=강렬한 매운맛’이라는 이미지를 활용하되 이제는 일본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반복 구매할 수 있는 ‘맛있게 매운 K-푸드’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1만8000개→3만2000개…일본인 입맛이 매워진다
일본의 매운맛 소비 확대는 관련 메뉴 증가에서도 확인된다.
코트라 나고야무역관에 따르면, 매운맛의 정도를 평가하고 공유하는 일본의 매운맛 전문 서비스 ‘카라미터(辛メーター)’에 등록된 매운 메뉴는 2023년 1월 약 1만8000개에서 2026년 7월 말 기준 약 3만2000개로 증가했다. 3년여 만에 70% 이상 늘어난 셈이다.
소비층도 넓어지고 있다. 구루나비가 2026년 20~60대 회원 1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43%가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약 20%는 최근 2~3년 사이 매운 음식 섭취 빈도가 증가했다고 응답했으며 특히 20·30대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과거 일부 마니아가 즐기는 도전적인 음식에 가까웠던 매운맛이 이제는 외식과 간편식에서 일상적으로 선택하는 하나의 맛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제2차 마라 붐’…가공식품 넘어 외식 시장으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마라탕이다.
일본에서는 2019년을 전후해 화자오의 얼얼한 맛을 앞세운 ‘마라 붐’이 일었다. 당시에는 조미료와 컵라면, 스낵 등 가공식품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마라탕 자체가 하나의 외식 카테고리로 성장하고 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일본 내 중화요리점 신규 개업 수는 2022년 1361곳에서 2025년 1059곳으로 감소한 반면 마라탕 전문점 신규 개업은 2024년 47곳에서 2025년 225곳으로 약 4.8배 증가했다.
특히 젊은 여성층의 반응이 두드러진다. SHIBUYA109 lab이 15~24세 여성 619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마라탕은 ‘2025년 트렌드 대상’ 카페·음식 부문 1위에 선정됐다.
마라탕의 인기에는 단순히 맵다는 것 이상의 요인이 있다. 소비자가 채소와 육류, 면, 두부 등 다양한 재료를 직접 선택하고 맵기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취향에 맞춰 한 끼를 구성하는 ‘커스터마이징 음식’의 성격이 강하다.
외식 시장의 인기는 다시 가공식품으로 확산하고 있다. 출시 2년여 만에 누적 출하량 1700만 개를 넘어선 ‘중화방 마라탕’을 비롯해 닛신식품의 ‘컵누들 14종 향신료 마라탕’, 누적 판매량 1000만 인분을 돌파한 Cook Do의 ‘극 마라 마파두부용’ 등 관련 제품이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편의점 매대까지 확산한 ‘우마카라’
일본 매운맛 시장의 또 다른 핵심 키워드는 ‘우마카라’다. ‘맛있다·감칠맛’을 의미하는 ‘우마이(旨い)’와 ‘맵다’라는 뜻의 ‘카라이(辛い)’가 합쳐진 표현으로, 우리말로는 ‘맛있는 매운맛’에 가깝다. 단순히 강한 자극을 추구하기보다 감칠맛과 향, 단맛, 짠맛 등 전체적인 풍미 속에서 매운맛을 즐기는 개념이다.
이 같은 흐름은 편의점 상품에서도 뚜렷하다. 로손스토어100은 ‘너무 매울지도?’를 테마로 우마카라부터 매우 강한 매운맛까지 총 26종의 상품을 선보였으며 전년보다 최고 맵기 단계의 상품 비중도 확대했다.
세븐일레븐은 ‘맛있어! 한국 최애 음식’ 기획을 통해 ‘우마카라의 깊이’를 콘셉트로 비빔밥과 볶음면 등 한국 음식 17종을 내놓았다. 훼미리마트 역시 깊은 풍미와 우마카라를 결합한 중화요리 7종을 선보였다.
편의점은 일본 소비자의 일상 식생활과 밀접한 채널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매운맛이 일부 마니아의 영역에서 도시락·면류·반찬 등 일상적인 한 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얼마나 맵나’보다 ‘어떻게 맛있게 맵나’
이러한 변화는 K-푸드 기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최근 일본의 매운맛은 감칠맛과 향신료, 단맛, 크림·치즈 등 다양한 풍미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경쟁의 중심이 ‘얼마나 매운가’에서 ‘어떻게 맛있게 매운가’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K-푸드에 유리한 요소다. 한국의 매운맛은 고추의 자극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추장에는 발효에서 비롯된 감칠맛과 단맛·짠맛이 함께 존재하고, 고춧가루도 마늘·파·참기름·간장·된장 등 다양한 양념과 결합해 복합적인 풍미를 만든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한국 제품이니까 맵다’라는 이미지를 넘어 ‘한국식 양념이기 때문에 맛있게 맵다’라는 방향으로 K-매운맛의 가치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제품 개발에서도 단순히 한국 제품의 매운맛을 낮추는 방식보다는 소비자가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맵기를 세분화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마일드에서 우마카라, 핫으로 이어지는 제품군을 구성하면 K-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
여기에 다시·간장 등 일본 소비자에게 익숙한 감칠맛이나 참깨·된장·마요네즈·치즈·크림 등을 한국식 매운 양념과 조합하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크림이나 치즈, 로제 등을 활용한 ‘부드러운 K-매운맛’은 신규 소비층을 끌어들이는 입문 제품으로 활용할 수 있다.
라면 넘어 소스·냉동식품으로…B2B도 기회
제품 카테고리도 넓힐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K-매운맛은 여전히 라면과 김치, 고추장 등이 대표적이지만 매운맛이 일상화될수록 스낵과 조미 소스, 냉동만두, 볶음밥, 도시락, 닭고기 요리, 반찬류 등으로 확장할 여지가 크다.
특히 소스는 K-매운맛을 일상 식생활로 확장할 수 있는 유망 품목이다. 하나의 소스를 라면이나 볶음밥뿐 아니라 육류·튀김·샐러드·나베 등에 활용하도록 제안하면 특정 한식 메뉴를 넘어 일본 가정식과 K-매운맛을 연결할 수 있다.
현지 기업과의 공동개발도 주목할 만하다. 자가리코 불닭맛이나 WILDish 고추참치 볶음밥처럼 일본 소비자에게 익숙한 브랜드와 제품에 한국의 맛을 접목하면 새로운 맛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
중소기업이라면 완제품 수출에만 머물 필요도 없다. 고추장·소스·시즈닝 등을 ‘K-매운맛 솔루션’으로 개발해 일본 식품기업의 스낵, 냉동식품, 간편식 등에 공급하는 B2B 시장도 공략할 수 있다.
한류로 생긴 관심, ‘체험→구매’로 연결해야
마케팅에서는 한류를 통해 형성된 관심을 실제 구매로 연결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일본 소비자들은 드라마와 영화, SNS를 통해 한국 음식을 접한 뒤 한국 여행이나 일본 내 한식당에서 직접 맛을 경험하고 관련 제품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나고야 지역의 한국 식품 유통 관계자는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소비자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한국의 매운 음식에 관심을 갖고, 최근에는 한국 여행과 한식당 방문을 통해 직접 맛본 뒤 관련 제품을 찾는 경우가 더욱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단순히 상품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식품전과 팝업스토어, 음식 축제, 시식 행사 등을 통해 소비자가 직접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접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SNS 역시 한국에서의 유행을 알리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일본에서 어디에서 구매하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까지 연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제품 출시 전에는 팝업스토어나 소규모 테스트 판매 등을 통해 맵기와 감칠맛, 가격, 패키지 등에 대한 현지 반응을 확인하고 이를 제품 개발에 반영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K-매운맛, ‘더 맵게’보다 ‘더 자주 먹게’
일본의 매운맛 시장 확대는 K-푸드에 분명 기회다. 김치와 고추장, 떡볶이, 매운 라면 등을 통해 이미 형성된 ‘한국=매운맛’이라는 이미지는 상당한 시장 자산이다.
다만 제2차 마라 붐과 우마카라의 확산은 일본 소비자가 원하는 매운맛이 단순한 강한 자극에서 복합적인 풍미와 ‘먹는 즐거움’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K-푸드 기업도 ‘더 맵게’ 경쟁하기보다 ‘더 맛있게, 더 다양하게, 더 자주 먹을 수 있게’ 만드는 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일본인이 매운맛을 먹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매운맛을 좋아하기 시작했는가’다.
마라가 향신료와 얼얼함으로 일본의 매운맛 시장을 넓혔다면 K-푸드는 고추장과 고춧가루, 발효와 양념 문화에서 비롯되는 특유의 감칠맛을 경쟁력으로 삼을 수 있다. ‘극강의 매운맛’을 넘어 일본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다시 찾는 ‘맛있게 매운맛’으로 자리 잡는 것이 K-매운맛의 다음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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