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가격인하"는 '한국'기업만 하나요
반면 글로벌 프랜차이즈는 릴레이 가격 인상
결국 국내 기업들만 피해보는 구조 된단 지적

가격 내렸다
최근 들어 몇 년에 한 번 볼까말까했던 소식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유통·식품업계의 가격 인하 발표입니다. 원재료 가격이 오를 때는 1년에도 몇 번씩 가격을 올리는 우리 업계지만, 그 이후 원재료 가격이 정상화됐다고 가격을 내리는 건 거의 본 적이 없는데요. 요즘은 하루가 멀다하고 가격 인하를 선언하는 기업들이 나타납니다.
가장 먼저 가격을 내린 건 밀가루·설탕 업계였습니다. 제당사들은 지난해 7월과 11월, 올해 1월 등 세 차례에 걸쳐 가격을 내렸습니다. 밀가루를 만드는 제분사들 역시 올해 들어 가격을 내렸죠. 물론 자발적인 건 아니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들의 담합을 조사했고 강력한 처벌에 나서면서 가격을 내리게 됐습니다.

다음은 생리대였습니다. 이번엔 인과관계가 더 명확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말 공정위 업무보고에서 생리대 가격이 비싸다고 지목했습니다. 시장도 곧바로 반응했습니다. 유한킴벌리와 LG애니참, 깨끗한나라 등 생리대 제조사들이 일제히 '반값 생리대'를 출시했고요. 다이소, 쿠팡 등은 개당 100원 안팎의 초저가 생리대를 내놨죠.
다음은 제과·제빵입니다. 밀가루와 설탕 가격이 내렸으니 밀가루와 설탕이 주원재료인 빵과 과자도 가격이 내려가는 게 합당하지 않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등 대표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이 곧바로 빵 가격을 100~1000원 내렸습니다. 해태제과도 일부 과자 가격을 소폭 내렸죠.
지난주엔 '라면' 차례였습니다. 라면 4사가 일제히 일부 제품 가격을 5~15% 내린다고 발표한 겁니다. 뿐만 아니라 식용유업계도 주요 제품 가격을 인하했습니다. 이제 끝일까요? 업계에선 제과·빙과업계가 다음 수순일 것으로 전망합니다. 사실상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물가안정 간담회'가 이미 예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까지 가격 인하에 나선 기업만 나열해도 CJ제일제당, 대상,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삼양사, 동원F&B, 롯데웰푸드, 사조대림, 해태제과, SPC, CJ푸드빌, 대한제분 등 국내 내로라하는 식품 기업들이 모두 등장합니다.
눈치게임의 승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가격을 올리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지난주엔 KFC가 치킨과 버거 등 23종의 가격을 200~300원 올렸습니다. 맘스터치도 지난 1일부터 주요 제품 43개의 가격을 인상했죠. 대표 메뉴인 싸이버거는 4900원에서 5200원으로 6.1% 올랐습니다. 버거킹도 마찬가지입니다. 7200원이던 와퍼가 7400원으로 2.8% 올랐습니다. 맥도날드 역시 35개 메뉴가 평균 2.4%, 100~400원 인상됐죠.
공교롭게도 모두 패스트푸드 외식 브랜드인데요. 그렇다고 모든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가격을 올린 것은 아닙니다. 롯데리아나 노브랜드버거,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모두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며 선을 긋고 있죠. 특히 교촌에프앤비, 다이닝브랜즈그룹(bhc), 제너시스BBQ, 파리크라상, CJ푸드빌, 롯데GRS, 비알코리아 등 주요 외식 브랜드들은 공정위와 가격 인상 1주일 전 인상 계획을 알리기로 하는 협약을 맺기까지 했습니다.

가격을 올린 브랜드와 가격을 내리거나 안 올리겠다고 약속한 브랜드들 사이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실적이 악화돼서", "원가 압박이 강해서"일까요. KFC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습니다. 한국맥도날드는 연초 김기원 대표가 "30분기 연속 성장"을 자랑하며 3년 내 매출 2조원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죠. 버거킹 역시 가장 최근 실적인 2024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냈습니다. 결코 '시장이 어려워서 눈물을 머금고' 가격을 올린 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사실 그보다 더 명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정부의 눈치를 보는 '국내 대기업'이냐 아니냐는 점이죠. 실제로 가격을 올린 4개 패스트푸드 외식 브랜드 중 3개 브랜드는 해외에 본진을 둔 외국 브랜드입니다. 나머지 하나인 맘스터치도 상대적으로 정부의 규제에 덜 예민한 사모펀드가 최대주주입니다. 즉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은 중장기적인 규제나 정책 방향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내 대기업에만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말 잘 듣는 놈만 손해본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가격을 내리면 수익성이 훼손됩니다. 특히 이번처럼 내부 요인이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해 가격을 내리는 건 이익분을 그대로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국내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은 가격을 내려 수익성이 훼손되고, 글로벌 프랜차이즈는 가격을 올려 수익성을 극대화하게 되는 셈입니다.
물론 가격을 내려서 더 많은 소비자가 찾고, 그렇게 매출이 늘면서 수익성도 개선되면 좋은 일이죠. 가격 인하의 선순환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특히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생필품·식품류는 가격을 올리든 내리든 수요가 크게 요동치지 않습니다. 맥도날드는 가격을 올리고, 롯데리아는 내렸다고 해서 빅맥을 먹던 사람들이 불고기버거를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기업들이 그간 무차별적인 가격 인상으로 엄청난 수익을 거둬 왔다면 모르겠지만, 사실 국내 식품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민망한 수준입니다. CJ제일제당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전년 대비 0.8%포인트 하락한 4.9%입니다. 같은 기간 롯데웰푸드는 이익률이 3.9%에서 2.6%로 감소했습니다. 오뚜기 역시 영업이익률이 4%대에 그쳤습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은 2024년 영업이익률이 1.5%였는데요. 지난해엔 이보다 더 낮은 이익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환율이 치솟고 생활물가가 날로 오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물가 단속은 필요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기조에 맞추고 국민들의 밥상 물가 부담을 덜기 위해 동참한 가격 인하가 오로지 '피해'로만 돌아온다면 기업들로서는 달가울 수 없습니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건 장기적으로 국가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가격 인하에 동참하는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거나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당근'도 필요할 겁니다. 우리 경제는 하나가 살면 하나가 죽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살 길을 찾아야 하는 '협동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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