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러시아, 포장지를 벗어나 개인 그릇으로

곡산 2020. 6. 24. 07:47

러시아, 포장지를 벗어나 개인 그릇으로

김해나 sunrise@at.or.kr  

모스크바사무소 alenky@a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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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확진자 추세가 안정화 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러시아는 지난 3월 25일 대통령의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일주일간의 유급 휴무 기간을 선포했다. 하지만, 4월 2일 두 번째 담화에서 휴무 기간을 4월 말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QR코드(대용량 정보 수납 바코드)를 활용한 통행증을 소지하고 병원, 약국, 식료품점 방문 및 기타 긴급 상황에만 이동이 가능하다. 형식상 자발적 격리지만 당국이 이행을 강제하고 위반할 경우 행정 처벌 등이 가해지는 사실상의 의무격리에 해당하는 조치다. 하지만 격리 중에도 확진자가 연일 4-5천 명씩 늘어나며 4월 28일 기준 누적 확진자가 9만 3천명을 넘어서며 격리 기간이 5월까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격리가 의무화가 되며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 3요소인 의, 식, 주를 한 장소에서 해결하게 되었는데, 그런 러시아인들의 식탁에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 러시아 식탁의 오늘과 내일
  옛날부터 러시아인들의 주식은 감자를 활용한 요리였고, 혹독한 추위를 견뎌 내기 위해 집에서 고열량의 음식을 섭취하고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90년대 들어서 러시아에 맥도날드가 생기고 식당에서 피자와, 일식 메뉴를 배달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 러시아 최대 외식 서비스 Delivery Club이 본격적인 배달 서비스를 도입 후 소비자들의 식탁은 직접 만든 요리가 아닌 배달 음식이 올려졌다. 단순히 패스트푸드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춘 건강식 메뉴를 직접 조리하고 배달해주는 업체가 생겨나며 사람들은 부엌에서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대통령령으로 일주일 휴무가 선포되었던 3월 말, 은행, 약국, 병원, 마트를 제외한 식당 폐쇄로 e커머스를 통한 식료품 구매가 확산되었다. 근린상가를 포함한 대형마트, 창고형 할인마트, 친환경 식료품점에서 비축형 지출이 크게 늘었다. 주요 품목은 세정제, 휴지, 메밀, 쌀, 설탕, 통조림 및 병조림 등 앞서 언급한 주요 식재료와 다른 장기 저장 가능 식품이 주를 이뤘다. 닐슨 러시아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3월 말 기록적인 매출을 세운 메밀, 쌀, 마카로니 등 장기 저장 가능 식품이  현재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며 멈춰섰다.



  당시, 상황이 곧 진정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직접 조리해 먹는 식사보다 간편식 위주로 이용했다면, 휴무 기간 연장이 선포된 4월 초, 자가격리가 장기화되자 직접 식사를 준비하는 형태의 재료 구매로 변화했다. 4월 6일부터 12일까지 전년도 대비 이스트(효모)(148%), 바닐라 향 향료 바닐린(80%),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첨가물(76%), 밀가루(42%), 빵믹스(55%) 등의 품목 매출이 증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러시아 대표 종합 포털 서비스 기업 중 하나인 Mail.ru에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5명 중 1명에 해당하는 22%는 자가 격리 기간이 식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대답했다. 예를 들어, 56%는 집에서 더 자주 요리한다, 12%는 먹는 양을 줄였다, 14%는 건강에 좋은 식품을 메뉴에 추가했다고 한다. 또한 러시아인 5명 중 1명 꼴로 시민 43%가 식료품 소비 지출이 증가했다고 한다. 응답자의 거의 절반(49%)이 매장에 갈 때마다 1,000루블에서 3,000루블(약 1만6천원~4만9천원)을 지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식탁이 현재 어떤 음식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가금류(80%), 스프(75%), 야채샐러드(69%), 달걀요리(67%), 러시아죽 카샤(64%)등의 비율로 가장 많이 꼽았다. 현 상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로 시민들은 직접 조리해 먹기 시작했다.

▶ 소비자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트렌드
  2018년 7월 스위스의 금융 기업 UBS에서 ‘주방이 사라진다(Is the kitchen Dead?)’ 라는 타이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내용인 즉 슨, 더 이상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시대가 아니라 만들어진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당연해지는 세상이 온다는 얘기다. 러시아 소매업, e커머스, 마케팅 관련 뉴스, 비즈니스 사례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이트 New-retail에서 진행된 설문에서, 러시아인들 또한 몇 가지 이유로 음식 배달을 이용한다고 대답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31%가 식사 준비가 번거롭다 라고 응답했다. 가정 내에서 조리하기 까다로운 특정 음식이 먹고 싶다 또는 어떤 모임에 있어서 라는 응답은 각각 30%와 18%를 차지했다. 평균적인 음식배달에 지출하는 비용은 1250루블(약 2만6000원)정도라고 한다. 러시아인들이 장을 볼 때 지출하는 평균 비용보다는 적지만 배달음식이 1회성임을 감안했을 때 음식값이 적지 않은 금액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가 격리 시기 배달 업체는 한 달 간 3백만건의 주문을 달성하는 등 배달 업계가 성황이다. 하지만, 간편식에 질려 다양함을 이유로 찾은 배달음식 또한 길어지는 격리에 부담이 되고, 건강이 생존의 문제임을 확인했는지 소비자들이 가정식, 건강식에 해당하는 식재료 소비가 높아지는 걸 보며, 소비자들의 식사에 대한 관점이 변화한 것을 볼 수 있었다.

▶ 시사점
  코로나 사태 이전 식품 산업의 트렌드는 ‘주방이 사라진다’였다. 부엌에 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간편식이나 배달음식을 자주 찾는다. 건강을 생각하면서도 직접 조리하고 먹고 뒷정리까지 들이는 시간을 봤을 때 다른 일 대비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서 건강식으로 직접 조리해서 집까지 배달해주는 업체도 알아본 적이 있다. 현재, 자가 격리로 모든 활동을 집에서 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라면 같은 간편식, 격리가 길어지며 배달음식의 다양함을 찾았으나 재정적인 부담을 느껴 배달음식에 의지를 덜 하고 간단하게 라도 직접 조리해 먹으려고 한다. 필자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트렌드는 결국 모든 소비자들이 현 상황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따라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후 소비자들의 식문화 변화에 맞춰 식품, 배달 산업도 전략을 수정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변화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 참고 및 이미지 출처
1. 그래프출처
-https://www.nielsen.com/ru/ru/insights/article/2020/covid-19-pokupki-v-karantine/
-https://fedstat.ru/indicator/31346
2. 참고기사 및 영상
-https://tass.ru/ekonomika/8256015
-https://www.yna.co.kr/view/AKR20200428180500080?section=news
-http://www.ttimes.co.kr/view.html?no=2020041413547792909&ref=face&fbclid=IwAR25ESDezKPZYopm6cQx0NzI9nfpjTMCfhjoVgG_KW2fsbF9e2AiBvHl9K0
-https://www.ubs.com/global/en/investment-bank/in-focus/2018/dead-kitchen.html
-https://youtu.be/1jixPRfafkc
-https://new-retail.ru/novosti/retail/issledovanie_pochti_polovina_rossiyan_zakazyvayut_edu_na_dom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