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신경분리, 그들만의 갑질·잔치 ‘농민은 운다’
같은 일 나눠 핑퐁게임 납품사들 골탕…김병원 개혁행보 ‘힘겨운 날개짓’
이기욱기자(gwlee@skyedaily.com)
기사입력 2016-10-26 00:07:47
▲ 최근 농협하나로유통이 ‘갑(甲)질’ 논란에 휩싸이면서 그 원인을 농협경제지주 전반에 대한 내부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이에 농협 안팎에서는 신경분리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사진은 농업협동조합 중앙회 신관 ⓒ스카이데일리
최근 막바지 단계에 진입한 농협중앙회 경제사업 부문의 경제지주 이관과 신경(신용·경제사업)분리 정책을 둘러싼 경제지주의 부작용 등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협경제지주 자회사를 둘러싼 업무중복과 갑(甲)질 논란, 과도한 자회사 설립 문제, 1억 이상 고액연봉 두배 양산 등 방만한 경영행태라는 지적을 받을만한 각종 사안들이 지속적으로 불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올 초 농협중앙회장 선거 당시 ‘경제지주 폐지’를 강하게 주장했었지만 당선 후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공약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신경분리 정책에 따른 부작용들이 연이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농협 안팎에서는 ‘김병원식 개혁’에 대한 필요성이 재조명 받고 있다.
하나로유통 ‘갑(甲)질’ 논란 뒤 신경분리 및 농협경제지주 설립 관련된 부작용 논란
25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농협경제지주의 100% 자회사인 농협하나로유통의 ‘갑(甲)질’ 논란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13년에 농협하나로유통과 계약을 한 중소납품업체의 상품이 3년 동안 농협계열마트 진열대에 단 한 번도 진열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해당 납품업체는 “농협하나로유통 본사와 계약을 하더라도 농협 계열 마트들과 다시 협상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납품업체 제품이 진열이 되기 위해서는 ‘본사’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하고 나머지 단계를 또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납품업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농협하나로유통 본사는 본인들의 능력치를 벗어난 사안을 계약, 즉 허위계약을 한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들은 또 “사실상 농협하나로유통은 납품업체들을 상대로 ‘갑질’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고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갑질’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보다 근본적인 농협 내부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시선을 모으고 있다. 농협하나로유통 본사와 농협계열 지역마트는 각기 다른 계열사에 속해 있어 어느 한쪽과 계약하더라도 다른 곳이 상품을 진열·판매할 의무가 없어 언제든 갑질 발생 소지가 있는 것이 문제로 꼽히고 있다는 점이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농협하나로유통과 대전유통, 부산·경남 유통 등 농협계열 지역마트들은 각기 다른 계열사가 맞다. 이 때문에 농협하나로유통 본사와의 계약과 지역마트 상품 진열은 사실상 무관한 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메가뱅크 욕심에 탄생 농협경제지주 비대화…업무중복에 1억 이상 연봉자도 두배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고윤석] ⓒ스카이데일리 |
최근 농협 안팎에서도 중소납품업체의 피해 사건은 농협경제지주의 구조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특히 신경분리 과정에서 생겨난 농협경제지주의 복잡한 지배 구조와 이로 인한 비효율적인 업무처리가 사건의 발단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농협 등에 따르면 ‘신경분리’는 농협의 사업들을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으로 양분 한 뒤 2개의 지주사를 각각 설립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금융사업 편중문제 해결, 전문성·경쟁력 강화 등을 목적으로 지난 2012년부터 진행됐다.
그러나 신경분리는 취지와 달리 시행 초기부터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우선 당초 목표였던 2017년 시행을 5년 앞당겨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정거래법과 조세특례제한법 등이 문제가 돼 졸속 정책이라는 논란으로 확산됐다.
신경분리는 농협의 설립 취지인 농민의 권익 보호 보다는 ‘메가뱅크’ 형성에만 치중돼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특히 경제지주 설립에 관해서는 “금융지주가 생겨나니 그에 맞춰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것이다”며 존속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신경분리 과정에서 다수의 자회사가 생겨난 점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농협하나로유통, 농협유통, 농협충북유통, 농협대전유통, 부산·경남 유통 등 동일 분야에 각기 다른 자회사가 설립돼 업무의 비효율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농협경제지주의 자회사는 16개로 농협금융지주(7개)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과도한 자회사 설립 문제는 방만경영 논란을 낳기도 했다. 늘어난 자회사의 수만큼 늘어난 각 회사의 임원들이 고액연봉을 챙겨가며 ‘그들만의 잔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 5일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농협경제지주의 억대연봉자 수는 64명으로 신경분리 직후(2명)보다 32배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황 의원은 “농협이 방만한 경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체계적인 ‘연봉제’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자회사들의 무리한 영업 행태로 인한 부작용도 끊이지 않았다. 농협 관계자들에 따르면 특히 갑작스럽게 늘어난 자회사들이 각자 경영성과를 내기 위해 영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농협의 영역을 침범하는 문제가 빈번히 발생했다. 일례로 비료, 사료, 농약 등 농자재 사업에 계통구매 명목으로 관여한 후 수수료를 받는 관행이 경제지주 설립 이후 더욱 심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농협 조합장은 “경제지주로 이관된 후 자회사도 독립 경영체가 됐다”며 “경영능력을 평가받게 되면서 자회사 대표들은 지역농협 조합장들을 관리하며 계통구매 제품 이용을 권한다”고 밝혔다.
자회사가 기존에 납품하던 거래처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지역농협은 기존보다 낮은 가격에 물건을 납품해야하는 상황도 만들어졌다. 자회사와 지역농협이 서로 경쟁을 할 경우 피해자는 지역농협이 될 수밖에 없고, 종국에는 ‘소작농’의 처지가 된다는 게 지역농협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농협경제지주 폐지 개혁행보 ‘김병원 회장’ 재조명…개혁날개 꺾여 ‘안타깝다’ 여론
최근 농협경제지주와 관련된 각종 논란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올해 초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주장했던 ‘1중앙회, 1금융지주 체제’가 다시 한 번 농협 안팎의 관심을 받고 있다. 김 회장은 농협중앙회장 선거 공약으로 ‘농협법 개정을 통한 경제지주폐지’를 주장했다. 지역농협과 경제지주 간의 불필요한 경쟁·업무중복 발생 등이 그 이유였다.
▲ 농협경제지주의 부작용들이 지속적으로 불거져 나오면서 농협 안팎에서는 ‘김병원식 개혁’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올해 초 중앙회장 선거 당시 과당경쟁·업무중복 등을 이유로 ‘경제지주폐지’를 주장한 바 있다. 사진은 농협중앙회장 취임식에 앞서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김 회장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하지만 김 회장은 당선 이후 기존 경제사업의 약 70%가 농협경제지주에 이관 완료된 상황, 투자된 공적자금 등을 고려해 공약을 철회했다. 농협법을 5년 만에 다시 개정해야 하는 점도 공약 철회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김 회장의 개혁날개가 꺾인 것은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시선과 함께 ‘안타깝다’는 시선이 많았다.
대신 김 회장은 경제지주폐지가 아닌 체제 개편으로 개혁의 방향을 전환했다. 복잡한 지배구조를 좀 더 단순화 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농협하나로유통은 오는 12월 13일 2892억원 규모의 유산증자를 계획 중이다.
농협경제지주는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농협유통 농협부산경남유통 농협대전유통 농협충북유통 등 유통자회사 지분 100%를 하나로유통에 넘길 예정이다. 농협하나로유통을 유통사업을 거느리는 중간지주사로 전환시켜 업무 효율성을 증대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높아지고 있는 경제지주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이러한 김 회장의 ‘체제개편’에 보다 힘을 실어줄 것으로 전망됐다. 농업중앙회 관계자는 “김 회장의 개혁에 회의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고, 사업 이관이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체제를 개편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잇따라 불거져 나오는 경제지주 관련 논란들이 김 회장의 부족한 명분을 채워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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