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소주회사 ‘무학’의 질주가 이어지고 있다. 그간 소주 시장은 ‘참이슬’ 하이트진로와 ‘처음처럼’ 롯데칠성 등 강력한 양강 아래 무학을 비롯해 선양(충남)·대선주조(부산)·금복주(대구·경북)·보해(전남) 등 여러 업체들이 각 지역에서 ‘군웅할거’를 해왔다. 그러나 최근 무학이 빠른 속도로 시장점유율을 키우며 사실상 3강 체제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3월 5일 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소주 시장 규모는 출고량 기준 1억1370만9000상자로 집계됐다. 병수로 따지면 34억1127만 병이다.
이 중 무학의 시장점유율은 13.3%에 달했다. 부동의 1위인 하이트진로의 48.3%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2위인 롯데의 14.8%와는 불과 1.5% 포인트 차다. 출고량 역시 1515만8000상자로, 롯데의 1684만3000상자에 바짝 따라붙었다. 아직 수도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지 않았음에도 거둔 놀라운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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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은 성숙 시장인 소주 시장에서 눈에 띄는 고성장을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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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유율, 2위 롯데와 1.5% 포인트 차
소주 업계 시장점율은 이들 ‘3강’을 이어 금복주(7.6%, 868만9000상자)·보해(5. 5%, 627만6000상자)·선양(3.5%, 393만3000상자)· 대선주조(3.4%, 391만60 00상자)순으로 나타났다. 아직 꽤 차이가 있다.
그간 국내 소주 시장은 하이트진로의 뒤를 롯데가 추격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최근 이런 구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작년 기준 하이트진로는 2011년보다 시장점유율이 1.2% 포인트 늘어났다. 롯데의 시장점유율은 전년 대비 0.8% 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무학은 전년 대비 시장점유율이 1% 포인트 늘어났다.
무학이 끌어올린 시장점유율 1%는 성장률로 치면 한 해에만 12.9%나 늘어난 것이다. 소주 시장은 이른바 성숙 시장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시장점유율이 크게 변하지도, 그렇다고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학은 달랐다. 이 회사는 지난 4년간 6.6%나 시장점유율을 늘렸다. 시장점유율 확대는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무학의 매출액은 연평균 11.7%, 영업이익은 12.5%씩 늘어났다.
무학의 성장 비결은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 즉 저도주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소비자들은 독한 술을 찾지 않는다. 위스키 시장이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주류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위스키 출고량은 212만2748상자(500㎖들이 18병 기준)로 2011년 240만667상자보다 11.6% 줄어들었다. 위스키 소비는 2009년을 기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서 4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양주는 물론이고 소주와 맥주 기업들은 점점 더 ‘도수 낮추기’에 나섰다. 1998년 전까지 대부분의 소주 알코올 도수는 25도였다. 이 해를 기점으로 1998년 23도로 낮아졌고 2001년에는 다시 21도로, 2006년에는 20.1도로 떨어졌다.
이 가운데 무학은 저도주 트렌드를 이끌어 온 회사다. 무학은 1998년 처음으로 23도짜리 소주 ‘화이트’를 만들었다. 또 2006년 16.9도짜리 국내 최저 도수인 ‘좋은데이’ 소주를 내놓은 것도 무학이다.
좋은데이는 말 그대로 트렌드를 이끌며 대히트를 쳤다. 이후 다른 소주 업체들이 알코올 도수를 17도 이하로 낮춘 저가 소주를 앞다퉈 생산하고 있지만 좋은데이는 현재 저도소주 시장에서 90% 이상의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좋은데이는 무학의 근거지인 경남 지역을 넘어 인구가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도시 부산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부산은 원래 ‘C1’으로 유명한 대선주조가 ‘맹주’였다. 하지만 현재 부산·경남을 통틀어 ‘톱’은 무학이다. 키움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무학의 부산지역 시장점유율은 60%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저도주 트렌드는 주류 회사에 ‘행운’이다. 도수가 낮으면 소비자들의 섭취량이 늘어난다. 똑같이 마셔도 덜 취하기때문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판매량 증가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도수가 낮으면 주정도 적게 들어간다.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정이 덜 들어가면 영업 이익률은 더 올라간다.
서영화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1년 무학의 주정 매입액은 매출원가의 39%를 차지했다”며 “16.9도 소주는 기존의 19도 소주보다 주정이 11.1% 적게 들어가 원가 개선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공략 성공 여부 ‘주목’
또 지난해 말 국내 소주 업체들이 출고가를 8% 정도 인상했다. 무학도 마찬가지다. 우원성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소주 판매가 인상에 따른 매출 및 영업이익 증가 효과는 연간 150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무학이 ‘재테크’에도 밝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여유자금 1000억 원 정도를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하고 있다. 무학은 2011년 ELS 운용으로 1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 회사는 이를 재투자했는데 2012년에 만기가 돌아온 상품이 별로 없어 수익이 미미했다. 하지만 올해는 코스피 시장의 전망이 좋아 이 자금이 조기 상환되며 꽤 높은 수익이 기대된다는 것. 무학 측은 “ELS 기초 자산이 대부분 지수형이어서 큰 위험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무학이 소주 업계의 ‘군계일학’으로 거듭나다 보니 주가도 꾸준히 상승세다. 2010년 3월 초 4000원대에 불과하던 무학의 주가는 2013년 3월 7일 기준 최고가인 1만5200원까지 올랐다.
증시 전문가들은 무학의 주가가 대형 주류 관련주 대비 저평가돼 있고 성숙기에 놓인 소주 시장에서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 매력이 크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가치주 투자에 능통한 KB자산운용은 2월 27일 무학 지분율을 10.01% 까지 늘렸다고 공시했다. 또 이 회사의 주가수익률(PER)은 아직도 8.2배(2013년 예상 실적 기준)에 불과하다.
물론 무학의 성장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유는 유통 및 마케팅의 힘이 큰 소주 업계의 특성상 하이트진로와 롯데의 벽을 넘으며 최대 시장인 수도권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하이트진로가 충청권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에서 보듯 영업 지역 확대를 추진하는 ‘톱 2’가 ‘안방’을 쉽게 내줄 것처럼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서영화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학의 수도권 진출은 성공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 애널리스트는 그 이유로 “영남권 인구가 지속적으로 수도권으로 유입되고 있고 좋은데이가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납품이 시작됐다”면서 “좋은데이는 17도 미만의 주류로 TV 광고까지 가능해 인지도를 이른 시간 안에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