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계는 지난해 중국 조선업체인 후둥중화(호東中華)가 대형 액화석유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인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크게 술렁였다. 기술력이 낮아 주로 벌크선 등을 만들던 중국 조선업체들이 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 본격 진입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레인콤 등 국내 MP3플레이어 기업들은 기능과 디자인 차별화로 중국 기업의 저가(低價) 공세를 이겨냈지만, 대신 2006년 미국 애플발(發) 위기에 휘청거렸다. 조용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주력산업이 활동하는 시장이 레드오션(경쟁이 치열한 시장)이 되면서 한국 경제도 글로벌 경기 여건에 매우 취약한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韓-中 100대 수출상품 중 29개 중복… 기술 턱밑 추격
日도 제조업 설비투자 증가율 6.8%서 21.3%로 급증
환경-에너지 등 新성장산업 통해 ‘샌드위치’ 뚫어야
○ 한국 제조업, 샌드위치 위기
경제 전문가들은 지난 10년간 ‘한국을 먹여 살려 온’ 반도체, 정보기술(IT), 조선, 자동차 등 효자산업에서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거의 사라지는 ‘재앙 수준’의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100대 수출상품 중 중복 품목 수는 1995년 20개에서 2005년 29개로 늘어났다. 2010년 통신장비, 디지털TV, 냉연강판 등 부문에서 중국의 기술 수준이 한국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있다.
최근 일본과 독일 등 제조 선진국의 약진도 위협적이다.
일본 제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2005년 6.8%에서 2006년 21.3%로 급증했고, 독일도 첨단산업 등의 연구개발(R&D) 투자액을 2010년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종갑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은 “일본 독일과 달리 한국은 제조업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줄고 있어 큰 문제”라며 “한국은 서비스업 가운데 제조업 관련 분야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제조업의 위기는 곧 한국 경제 전체의 위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시장 창출형 투자가 시급한 과제
삼성전자는 1987년부터 1992년 사이 반도체 매출액의 39.8%를 반도체 설비투자에 쏟아 부었다.
세계 반도체 기업 평균(매출액의 20.5%)의 2배 가까운 과감한 투자 덕분에 1990년 반도체 불황에도 불구하고 세계 1위로 뛰어오를 수 있었다.
액정표시장치(LCD)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 등이 1990년대 중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시장에 진입한 이후 LCD는 2001∼2006년 국내 명목GDP 성장기여도가 5.2%에 이를 정도로 효자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이 같은 투자 열기는 최근 10년 새 크게 꺾였다.
설비투자 증가율이 1988∼1997년 평균 10.4%에서 1998∼2007년 4.8%로 반 토막 났다.
R&D 투자가 선진국 수준으로 늘어났으면서도, 이를 실제 사업 성과로 이끌어 내는 능력이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점은 더욱 큰 문제로 지적된다.
재정경제부는 지난해 “한국 R&D 투자의 경제성장 기여율이 10.9%로 미국의 40.2%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기업들의 투자 의욕이 크게 꺾인 데는 각종 규제의 영향이 컸다는 지적이 많다.
통신기업인 KT는 인터넷TV(IPTV) 사업을 수년간 준비해 왔지만,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는 방송 규제로 인해 투자를 현실화하지 못했다.
13조 원대 투자가 예상되는 하이닉스반도체의 경기 이천공장 신증설 건은 수도권 규제에 묶여 1년 4개월째 진척이 안 되고 있다.
이지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10년간 기업 투자가 부진한 것은 이전의 과다한 투자의 조정 측면도 있지만 친(親)기업적이지 않은 정부의 영향도 크다”며 “새 정부는 규제를 과감히 풀어 기업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장 바꿀 미래산업 탄생시켜야
LG전자는 미국 내 모든 디지털TV가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디지털방송 수신 표준 기술(VSB·Vestigial Side Band)을 확보해 미국에서 TV가 한 대 팔릴 때마다 약 5달러씩의 로열티를 받고 있다.
현재 연간 1억 달러(약 940억 원) 수준의 로열티 수익은 미국에서 디지털TV 전환이 의무화되는 2009년 이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을 먹여 살릴 효자산업을 만들기 위해선 짧은 기간에 잘 팔리는 ‘히트 상품’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수십 년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신(新)성장 사업’과 이를 대표하는 ‘메가 상품’을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인텔의 헬스 케어, 제너럴일렉트릭(GE)의 환경사업, 일본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샤프의 태양전지, 핀란드 노키아의 음원사업 및 내비게이션 등 해외 일류 기업들도 미래 메가 상품 발굴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성장산업으로는 IT와 생명공학기술(BT), IT와 나노기술(NT) 등의 융합기술 산업과 신재생 에너지, 헬스 케어 및 제약, 하이브리드카 등이 유망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휘성 한국IBM 사장은 “미래는 기술의 범용화(汎用化) 시대”라며 “기술과 같은 핵심자원의 패러다임이 소유 중심에서 활용 중심으로 바뀌는 데 맞춰 기술과 창조를 결합한 혁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뚝심의 R&D투자 기업
▼LG생명과학- 12년 투자 결실… 신약기술 이전료 2820억 받아
포스코- 15년 만에 ‘파이넥스 공법’ 개발… 원가 85% 절감▼
LG생명과학의 주가는 지난해 약 2배로 뛰었다.
주식시장 여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LG생명과학이 지난해 미국 제약사인 길리아드와 일본 제약사인 다케다(武田)에 각각 간 질환 치료제와 비만 치료제를 기술 이전한 영향이 컸다.
당시 LG생명과학이 받은 기술이전료는 모두 3억 달러(약 2820억 원). 복제 약을 생산하는 데 급급한 국내 제약업계에서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회사 측은 “간 질환 치료제는 꼬박 12년 동안 연구개발(R&D)에 매달린 끝에 탄생시켰다”며 “매년 매출의 20% 이상을 R&D에 투자해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말했다.
일부 국내 기업은 최소한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우직한’ R&D 투자로 효자 상품을 만들고 있다.
글로벌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R&D로 성장 동력을 발굴해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겠다는 판단에서다.
경기 화성시 장덕동 현대·기아자동차 기술연구소 연구원들은 내년 ‘하이브리드카’ 상용화를 앞두고 막바지 R&D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카는 휘발유 또는 디젤 엔진과 전기모터를 함께 갖춘 친환경 자동차로, 2020년이면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절반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1990년대 초부터 환경친화적인 차세대 자동차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은 올해 R&D에 3조5000억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가 지난해 상용화한 ‘파이넥스 공법’도 대표적인 R&D 성공 사례다.
회사는 15년에 걸쳐 가루 형태의 석탄과 철광석을 사용해 쇳물을 만드는 ‘파이넥스 공법’ 개발에 매달려 제조 원가를 85% 이상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이나 호주 등 세계 각국의 철강업체들도 앞 다퉈 차세대 제철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한 바 있다.
삼성물산의 건설기술연구소에는 박사급 인재 30여 명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삼성물산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짓는 세계 최고 높이(800m·160여 층)의 빌딩인 ‘버즈두바이’에 적용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세계 처음으로 지상 배관을 통해 452m의 높이까지 콘크리트를 쏘아 올리는 기술과 초속 50m나 되는 풍속을 견디기 위해 건물을 약간 흔들리도록 설계한 기술 등도 건설기술연구소에서 나왔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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