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열전

[그때 그 광고]"일요일은 오뚜기 카레"…57년째 가족 식탁 지키다

곡산 2026. 7. 20. 07:28

[그때 그 광고]"일요일은 오뚜기 카레"…57년째 가족 식탁 지키다

정혜인입력 2026. 6. 28. 13:01
1969년 어린이날 창립과 함께 출시…카레 불모지 개척
'행복한 가족의 일요일' 이미지로 카레 대중화 선도
분말에서 비건·글루텐프리까지…분말카레 점유율 1위 유지
[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야, 일요일이다~" 개구쟁이 같은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터지면서 흑백 화면이 환해진다. 너른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에서 호스를 든 아빠와 물뿌리개를 쥔 누나가 화단에 물을 주고 있다. 막내는 넘칠 듯한 양동이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종종걸음으로 뛰어온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이어진다. "일요일이 되면 아빠랑 꼬마들이 제 일을 도와준다고 야단이에요. 저는 오뚜기 카레로 보답을 한답니다."

그때 아빠가 발로 호스를 밟는다. 물이 뚝 끊기자 고개를 갸웃하며 호스 끝을 들여다보는 순간 발이 떨어지면서 물줄기가 얼굴로 쭉 쏟아진다. 가족들이 배를 잡고 웃는다. 웃음이 채 가시기 전에 장면은 식탁으로 바뀐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카레를 떠먹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카레 그릇과 함께 익숙한 로고송이 흘러나온다.

일요일은 오뚜기 카레~

'일요일 요리'하면 요즘은 유명 짜장 라면을 먼저 떠오르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 짜장 라면 광고가 나오기 전인 1970년대에 먼저 '일요일'을 강조한 광고가 있었습니다. 바로 국내 분말카레 시장 부동의 1위인 오뚜기입니다. 오뚜기는 아직 카레라는 음식이 낯설던 시절 카레를 '가족을 위한 음식'으로 강조하면서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만들었습니다.

카레와 함께 하는 스위트 홈

오뚜기가 카레를 처음으로 출시한 1969년만 해도 카레는 한국인에게 낯선 음식이었습니다. 인도에서 건너와 일본을 거쳐 들어온 카레는 일부 가정에서만 접할 수 있는 생소한 식재료였죠. 오뚜기 창업자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은 여기에서 가능성을 봤습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면서 매콤한 맛을 즐기는 한국인의 입맛에 카레가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하네요. 오뚜기 연구팀은 20여 가지 향신료의 배합 비율을 찾는 실험을 수없이 반복해 향신료가 서로 어우러지도록 숙성하는 기술까지 개발했습니다.

특히 카레는 1969년 오뚜기가 창립하면서 처음으로 선보인 제품입니다. 창립 첫 제품이 카레였던 건 온 가족이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스위트홈'의 의미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창립기념일을 어린이날로 정할 만큼 어린이와 가정을 중시했던 함 명예회장의 철학이 첫 제품 선택에도 담긴 거죠.

이렇게 제품은 완성했지만 인지도가 문제였습니다. 카레가 뭔지조차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생소한 음식을 알릴 방법이 필요했죠. 함 명예회장이 택한 건 당시로선 파격적인 TV 광고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신생 기업이었던 오뚜기는 자금이 넉넉지 않았는데요. 막대한 비용이 드는 TV 광고를 선택한 건 과감한 결정이었습니다. 오뚜기는 큰 비용을 들이지 못하는 대신 방영 시간대를 철저히 계산했다고 하는데요. 토요일과 일요일 어린이 프로그램 전후를 집중 공략한 겁니다. 

 

TV 시청 외에 여가를 즐길 수단이 부족하던 시절, 공휴일 낮 시간대는 시청률 대비 광고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했다고 합니다. 적은 비용으로 어린이와 부모를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묘수였죠.

오뚜기 카레의 첫 TV 광고가 하필 '일요일'을 내세운 데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주 5일 근무가 당연하지만 1960~70년대엔 토요일도 학교와 직장에 나가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날은 일요일이 거의 유일했죠. 일요일은 그 자체로 '가족'의 동의어였던 셈입니다.

광고 속 너른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도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서민 가정이 쉽게 누릴 수 없던 풍요로운 삶의 풍경을 상징하는 장소였습니다. 오뚜기는 그 화목하고 여유로운 가족의 일요일 풍경 한가운데 카레 한 그릇을 올려뒀습니다. "오뚜기 카레가 있는 우리 집 일요일은 정말 행복해요"라고 강조하는 광고 속 내레이션도 이런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행복한 가족이 여유로운 일요일에 즐기는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준 겁니다.

가족의 식탁엔 언제나

이후 오뚜기 카레의 광고들도 같은 코드를 변주했습니다. 정원에서 헬멧을 쓰고 럭비를 즐기는 아이들, "엄마 일요일이에요~"라고 외치는 목소리, 그리고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일요일은 오뚜기 카레'라는 CM송까지, 장면은 매번 달랐지만 일요일에 온 가족이 함께하는 풍경이라는 뼈대는  이어졌습니다.

오뚜기는 이후 시대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카레 제품을 내놨습니다. 첫 제품인 분말 제품 외에도 현재도 오뚜기를 대표하는 '3분 카레' 제품이 1981년 출시됐고요. 자녀를 위해 건강한 재료를 따지는 부모를 위해 강황 함량을 높인 '백세카레', 채식을 선택하는 소비자를 위한 비건 카레, 글루텐 프리 '비밀카레'까지 라인업이 확장됐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며 가족의 입맛이 다양해질수록 오뚜기 카레도 그 옆자리를 채웠습니다. 현재 국내 분말카레 시장에서 오뚜기의 점유율은 83%로 출시 이래 한 번도 1위를 내준 적이 없습니다.

 

오뚜기는 지난 2024년 55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과거의 '일요일은 오뚜기 카레' 광고 카피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때 선보인 건 '엄마의 카레'와 '아빠의 카레' 두 편의 광고였는데요. '엄마의 카레' 편은 자취 중인 딸을 찾아온 엄마가 말없이 카레를 끓여 냄비째 두고 가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아빠의 카레' 편은 서툰 손으로 카레를 끓이며 딸을 응원하는 아빠의 모습이었고요. 1969년 광고 속 일요일 정원의 풍경이 2024년 달라진 가족의 부엌으로 옮겨 온 셈이었죠.

이제 카레는 특별한 일요일 음식이 아닙니다. 커다란 냄비에 끓여 둔 카레를 온 가족이 며칠씩 나눠 먹는 풍경이 일상이 됐죠. 오뚜기가 57년 전 가족의 식탁에 올려두고자 했던 그 음식이 어느새 한국인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겁니다. 일요일은 오뚜기 카레라는 CM송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낯설지 않은 건 그래서일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