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서영 기자
- 승인 2026.02.11 07:53
코카콜라, 위스키 출시 이어 유유·커피 체인 진출
펩시코, 탄산수 제조기에 건강식품 ‘시에테’ 인수
롯데칠성 ‘주류·음료 솔루션 기업’으로 체질 개선
매일유업, 성인용 단백질·식물성 음료 성장 동력
광동제약 약식동원 현대화…‘휴먼 헬스케어’확장
“우리는 더 이상 탄산음료 회사가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음료 시장을 호령해 온 코카콜라와 펩시코가 잇달아 던진 화두다. 2026년 현재, 식음료(F&B) 업계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 그리고 산업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다.
단순히 목을 축이는 ‘음료(Beverage)’를 넘어 커피, 주류, 건강기능식품, 심지어 가전 영역까지 넘나드는 이른 바 ‘종합 웰니스 기업’으로의 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업 다각화를 넘어 인구 구조 변화와 취향 파편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 방정식으로 풀이된다.

‘음료 순혈주의’를 고집하던 코카콜라(Coca-Cola)의 변신은 파격적이다. 코카콜라는 알코올 음료 전담 자회사인 ‘레드 트리 베버리지(Red Tree Beverages)’를 설립하고, ‘잭 다니엘(위스키)’이나 ‘앱솔루트(보드카)’ 같은 글로벌 주류 명가와 손잡고 ‘잭앤콕’ ‘앱솔루트 & 스프라이트’ 등 RTD(Ready To Drink) 제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금기의 영역’이었던 주류 시장 빗장을 과감히 풀었다. 이는 자체 제조의 리스크는 줄이되,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결합해 마진율이 높은 주류 시장을 단숨에 장악하겠다는 영리한 ‘브랜드 동맹’ 전략으로 풀이된다.
비(非)탄산 부문에서는 ‘기술력’을 앞세워 웰니스 시장을 공략 중이다. 코카콜라가 인수한 프리미엄 우유 브랜드 ‘페어라이프(Fairlife)’는 특수 여과 공법으로 단백질 함량은 높이고 당은 줄여, 연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하는 ‘메가 브랜드’로 성장했다. 더불어 영국 1위 커피 체인 ‘코스타 커피’ 인수 후에는 오프라인 매장 확대보다는 무인 커피 머신과 RTD 유통에 집중하며, 소비자가 눈을 뜨고 잠들 때까지 마시는 모든 액체를 코카콜라의 포트폴리오로 채우겠다는 ‘토탈 베버리지(Total Beverage)’ 야심을 현실화하고 있다.
경쟁사 펩시코의 행보는 더욱 광폭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단순한 식음료 제조사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관리 기업’으로 재정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홈 탄산수 제조기 기업 ‘소다스트림’과 웨어러블 디바이스인 게토레이 ‘Gx 스웨트 패치’다. 이는 완제품을 일방적으로 공급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직접 음료를 제조하는 경험을 팔거나 땀 손실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식이다. 즉 펩시코는 이제 마시는 물건이 아니라 소비자의 주방과 운동장을 점유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건강’과 ‘유흥’이라는 상반된 키워드를 동시에 공략하며 포트폴리오를 대대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주류 유통을 위한 별도 자회사 ‘블루 클라우드’를 통해 알코올이 함유된 ‘하드 마운틴듀’를 유통하며 술자리까지 파고드는 한편, 지난 2024년 말에는 멕시코계 프리미엄 건강 식품 브랜드 ‘시에테 푸드(Siete Foods)’를 약 1.6조 원(12억 달러)에 인수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는 콜라와 스낵으로 굳어진 ‘정크푸드 제조사’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젊고 힙한 웰니스 식문화 브랜드를 수혈해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고도의 브랜드 희석 전략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영토 확장을 위해 울타리를 넘었다면, 국내 기업들은 ‘인구 절벽’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생존을 위해 울타리를 부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음료’와 ‘주류’라는 두 사업 부문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된 ‘웰니스(Wellness)’ 가치를 제공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그 신호탄인 제로 슈거 소주 ‘새로’는 출시 7개월 만에 1억 병 판매를 돌파하며, 헬시 플레저 트렌드가 음료를 넘어 보수적인 주류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과당을 뺀 깔끔한 맛과 투명한 병 디자인으로 MZ세대를 사로잡은 ‘새로’의 성공은 단순한 히트 상품의 탄생을 넘어, 롯데칠성이 만년 2위 꼬리표를 떼고 시장 주도권을 쥐게 한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롯데칠성은 ‘종합 주류·음료 솔루션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제주 서귀포에 대규모 위스키 증류소 건립을 추진해 단순 수입 유통을 넘어 ‘K-위스키’ 생산자로서의 도약을 준비 중이며, 2022년 인수한 자회사 ‘빅썸바이오’를 통해 건강기능식품 소재를 기존 음료 제품에 결합하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이는 탄산과 소주라는 안정적인 캐시카우에 안주하지 않고, 고부가가치 영역인 ‘프리미엄 주류’와 ‘기능성 헬스케어’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재편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유업계 중 가장 먼저 ‘탈(脫)우유’를 선언한 매일유업의 변신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자 가장 성공적인 피보팅(Pivoting·사업 전환) 사례로 꼽힌다. 저출산으로 분유를 먹을 아기가 사라지자, 매일유업은 50년간 축적한 유아식 제조 기술을 중장년층에게 돌리는 역발상을 감행했다. 2018년 론칭한 성인용 단백질 브랜드 ‘셀렉스’는 “분유는 아기만 먹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출시 3년여 만에 연 매출 1000억 원 규모의 ‘메가 브랜드’로 성장했으며, 이를 통해 국내 단백질 시장의 타깃을 운동 마니아에서 ‘액티브 시니어’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수익성이 낮은 흰 우유의 빈자리는 ‘식물성 음료’로 빠르게 채워가고 있다. 한국인의 유당불내증 특성을 파고들어 ‘아몬드 브리즈’와 자체 브랜드 ‘어메이징 오트’를 잇달아 히트시키며, 우유가 아닌 ‘곡물 음료’를 회사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장착했다. 이는 매일유업이 더 이상 단순한 유가공 업체를 넘어 전 생애 주기를 아우르는 ‘토탈 뉴트리션(Total Nutrition) 기업’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광동제약은 전체 매출의 60~70%가 식음료 부문에서 창출되는 독특한 수익 구조를 가진 만큼,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제주삼다수’ 판권 재계약 리스크를 해소하고 독자적인 생존 기반을 다지는 것이 지상 과제다. 이에 제약사의 신뢰 이미지를 F&B에 이식하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의 현대화’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경쟁사들이 맛과 청량감을 앞세운 ‘제로 슈거’ 전쟁에 몰두할 때, 광동제약은 옥수수수염차(붓기·이너뷰티), 헛개차(숙취해소), 쌍화(활력) 등 효능이 직관적으로 연상되는 제품군을 통해 편의점 냉장고를 사실상 ‘간이 약국’으로 탈바꿈시키며 차별화된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단순 음료 제조를 넘어 전 생애 주기를 아우르는 ‘휴먼 헬스케어’ 기업으로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수면 질 개선이나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주는 개별인정형 원료 기반의 기능성 음료를 잇달아 선보이는가 하면, 대표 브랜드 경옥고의 기술력을 적용한 반려견 영양제 ‘견옥고’를 론칭하며 펫 헬스케어 시장까지 진출했다.
이 같은 흐름의 기저에는 세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 주력 소비층의 이동(Demographic Shift)이다. 탄산과 우유를 주로 소비하던 1020세대가 줄어들면서, 구매력 있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커피, 건기식, 주류로의 타깃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둘째, 수익성 방어(Profitability)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유통 마진 압박 속에서, 박리다매형 음료보다는 고부가가치인 기능성 음료나 주류가 수익 보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셋째, 플랫폼 전략(Platform Strategy)이다. 소비자는 이제 단순히 ‘맛있는 음료’가 아니라 ‘나의 건강과 라이프스타일을 케어해주는 브랜드’를 찾는다.
결국 2026년의 음료 기업들은 ‘마시는 것’을 파는 제조사를 넘어 소비자의 건강과 즐거움을 설계하는 ‘콘텐츠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경계가 사라진 전장에서 누가 먼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선점하느냐가 향후 10년의 패권을 가를 것이다.
음료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어떤 음료를 더 많이 팔까’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소비자의 24시간 중 우리가 점유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인가’를 고민한다”며 “내수 시장의 인구 절벽이 현실화된 시점에서 카테고리 확장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도피처이자 돌파구”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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