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 변질, 부패, 산패 등의 용어와 관련된 보도를 살펴보면 “포장이나 유통기한 표시 등에 문제가 있어 변질, 부패 우려가 있다”, “부패, 산패를 방지, 지연시키기 위해 충전한 질소가 빠져나가 변질 우려가 있다” 등 전문가가 봐도 헷갈리는데, 당연히 일반 소비자들은 “부패, 산패, 변패”의 개념이 혼동스러울 것이다. 게다가 식품의 변질을 항상 나쁜 것으로만 생각하는 반면 발효는 무조건 좋은 것으로만 맹신하고 있는 것 같다.
식품의 변질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식품의 질을 변화시킨 변질은 좋은 것이다. 예를들면, 우유로부터 치즈와 요크르트의 제조, 과일즙으로부터 와인 생산, 곡물로부터 술의 발효, 홍어를 발효시켜 만든 삭힌홍어 등은 식품의 변질이지만 바람직한 변질로서 일반적으로 “발효(fermentation)”라고 한다. 그러나 나쁜 방향으로 변질된 경우에는 단백질의 경우 부패(putrefaction), 지방은 산패(rancidity), 단백질, 지방 이외 탄수화물 등의 성분은 변패(deterioration)라 한다.
“발효”란 식품에 미생물이 작용하여 식품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현상으로, 그 변화가 인체에 유익한 경우를 말한다. 주로 당과 같은 탄수화물로부터 각종 유기산, 알코올 등이 생산되는 것을 말하는데, 삭힌 홍어 등 단백질이 부패된 것인데도 원했거나 바람직한 방향일 때는 발효라고 한다. 식빵, 술, 간장, 된장, 치즈, 요쿠르트 등은 모두 바람직한 변질로서 발효의 원리를 이용한 식품들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변질의 대표격인 “부패”는 한마디로 단백질이 썩은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심한 암모니아 악취가 나는데, 단백질만이 갖고 있는 원소인 질소(N)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단백질 식품이 미생물, 특히 혐기성 세균의 번식에 의해 분해를 일으켜 아민, 암모니아 등이 만들어지면서 악취를 내고 유해성 물질이 생성되는 현상을 말한다. 부패과정을 살펴보면, 단백질(protein)이 팹톤(peptone), 폴리펩타이드(polypeptide), 아미노산(amino acid)으로 분해된 후 황화수소가스(H₂S), 암모니아가스(NH₃), 아민(amine), 메탄(methane) 등을 생성하게 되어 나쁜 부패취를 만들게 된다.
식품을 보존하다 보면 지방이 나쁘게 변질되어 품질이 떨어져 “부적합” 판정을 받거나 폐기하는 경우가 많다. 단백질이 상한 것을 부패라고 하듯이 지방이 상한 것은 “산패(rancidity)”라고 하는데, 이는 “유지(油脂, lipid, fat & oil)”나 “유지식품”이 보존, 조리, 가공 중에 변질되어 불쾌한 냄새가 나고, 맛, 색, 점성, 산가 등의 변화로 품질이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즉, 기름이 공기 중에 오래 노출되면 산화되어 쩔은 냄새 등의 이취가 나고, 튀김류를 만들 때 오래 동안 끓이게 되면 검게 변하면서 점도가 높아져 끈적끈적하게 된다. 자동차 엔진오일을 오래 사용하면 점성이 높아지고 검게 변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유지는 글리세롤(glycerol)에 3개의 지방산(fatty acid)이 결합된 구조인데, 산패되면 지방산의 결합이 끊어져 분리되어 “산가(acidity)"가 높아지게 된다.
변패(deterioration)는 단백질, 지방 이외의 성분을 가진 식품이 변질되는 현상을 말한다. 상추를 몇 일간 보존하다 보면 흐늘흐늘해지는 등 식이섬유가 자가 소화되거나 당질, 탄수화물이 많은 과일 등이 나쁘게 변질되는 것을 말한다.
추석이나 명절 음식 중엔 유난히 변질되기 쉬운 음식이 많다. 한과, 전 등 기름에 튀긴 음식은 산패, 산적과 고기 등은 부패, 껍질을 깎아 놓은 과일이나 채소류 등은 변패되기 쉬우므로 조리 후 바로 섭취하는 것이 좋고, 남은 음식은 항상 냉장/냉동하며, 가능한 산소와 접촉을 피하도록 잘 밀봉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변질된 음식을 먹으면 식중독에 걸린다는 것은 잘 못된 상식이다. 변질된 음식과 식중독의 원인인 병원성미생물이나 독소는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 물론 변질된 음식의 경우, 식중독 원인체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은 높지만 식품이 변질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병원체나 독소가 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식품 변질의 원인은 병원체가 아니라 효소, 부패균, 화학물질, 산소 등이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