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홈플러스 살리겠다며 손발은 묶어둘 건가

지난 7일 홈플러스가 영업을 재개했다. 정치권이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을 압박해 자금 지원을 끌어낸 덕이다. 정치권은 같은 날 국민에게 “국민의 힘으로 일으켜 세운 홈플러스를 다시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비록 정식 재개장 전 ‘가오픈’이며 상품 입고율도 30% 수준에 불과했지만, 홈플러스는 하루라도 영업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틀 뒤인 9일에 상당수 점포가 의무 휴업일을 맞기 때문이었다.
대형 마트는 주말 매출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 현금 한 푼이 급한 홈플러스가 토요일 영업마저 놓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기업을 살리겠다며 자금 지원과 소비를 독려하면서도 정작 영업을 제약하는 규제는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은 홈플러스가 처한 모순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홈플러스를 향한 정치권의 관심이 일관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홈플러스의 유동성 위기와 긴급운영자금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됐지만 6·3 지방선거 국면에서 사태는 사실상 정치권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 사이 경영 상황은 더 악화했고, 결국 홈플러스는 회생 절차 폐지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렸다.
운영 자금을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홈플러스를 살리겠다고 나선 것은 수만명의 노동자와 협력업체, 입점업체 등 파산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개입은 더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졌어야 했다.
홈플러스가 꺼내든 ‘트레이더조 모델’ 역시 골든타임을 놓친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복층 매장을 단층 중심으로 줄이고, 식품·생필품·자체 브랜드(PB) 위주로 상품을 압축해 재고와 운영비를 낮추겠다는 구상은 미래 성장을 위한 혁신보다는 부족한 자금으로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발버둥에 가깝다. 조금만 더 일찍 정상화의 실마리를 찾았다면 홈플러스에 지금보다 많은 선택지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홈플러스 한 곳을 살린다고 대형 마트 업계가 처한 구조적인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정말 홈플러스를 비롯한 대형 마트의 생존을 걱정한다면 개별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압박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대형 마트가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이 유통산업발전법상 의무 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규제다. 2012년 도입된 이 규제는 대형 마트의 영업을 제한하면 소비가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논리에 기반했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지금 경쟁 구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은 365일 주문을 받고 새벽·당일 배송을 제공한다. 대형 마트들은 전국 점포를 온라인 주문과 배송을 위한 물류 거점으로 활용해야 하지만, 의무 휴업일과 영업 제한 시간에는 이마저 제약을 받는다.
특히 신선식품과 장보기 배송은 하루라도 물류 흐름이 끊기면 고객 경험과 재구매율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영업의 연속성이 경쟁력과 직결된다. 2012년 만들어진 규제를 2026년의 유통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정말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길인지 다시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기업 하나가 무너질 때마다 관계자를 불러 자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 될 수 없다. 홈플러스를 정말 살리고 싶다면 국민에게 장을 봐달라고 호소하는 것보다, 먼저 대형 마트가 이커머스와 제대로 경쟁할 수 있도록 손발을 묶고 있는 제도부터 손봐야 한다. 정부가 놓친 홈플러스의 골든타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같은 일이 또 반복되지 않도록 경쟁 환경을 바꾸는 일은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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