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전반

전쟁은 식탁까지 흔든다① : 이란·미국 충돌과 식품산업의 위기와 기회-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440)

곡산 2026. 6. 22. 12:09

전쟁은 식탁까지 흔든다① : 이란·미국 충돌과 식품산업의 위기와 기회-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440)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6.06.22 07:45

에너지·공급망 충격에 식품 안전관리 흔들
구조적 리스크…산업 구조 재편 기회
산업 재정의…식량안보 등 전략 필요
소비자 충격 완화·안전관리 고도화를

국제정치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이란과 미국 간 군사적 긴장과 같은 지정학적 충돌은 곧바로 우리의 식탁과 연결된다. 현대 식품산업은 원재료, 물류, 에너지라는 세 개의 축 위에 구축된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 축 가운데 하나만 흔들려도 산업은 ‘혁신’보다 ‘생존’을 먼저 고민하게 된다.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가장 먼저 나타나는 충격은 에너지다. 중동 리스크가 확대되면 국제 유가는 즉각 반응한다. 문제는 식품산업이 대표적인 에너지 집약 산업이라는 점이다. 세척, 가열, 살균, 냉동, 건조, 저장, 운송까지 식품 생산의 거의 모든 과정은 에너지에 의존한다.

결국 유가 상승은 제조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소비자 가격 인상이나 기업 수익성 악화로 연결된다. 최근 세계 각국이 경험했듯 식품 물가는 단순한 경제지표가 아니다. 사회 불안과 민생 위기를 촉발하는 가장 민감한 변수 가운데 하나다.

두 번째 충격은 공급망이다. 전쟁은 항로를 바꾸고, 물류를 지연시키며, 특정 원재료의 수급을 단절시킨다. 곡물과 식용유는 물론 식품첨가물, 포장재, 사료 원료까지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식품 원료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조달 리스크가 곧 생산 리스크다. 평상시에는 효율로 보였던 글로벌 분업 체계가 위기 상황에서는 가장 취약한 고리로 드러난다.

그러나 진짜 위험은 세 번째, 즉 식품 안전에서 시작된다.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지만 가장 치명적일 수 있다. 원가 압박과 공급 부족이 동시에 발생하면 기업은 급하게 대체 원료를 찾고 새로운 공급선을 확보하려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검증되지 않은 원료나 관리 수준이 낮은 생산 환경이 유입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공급망이 불안해질수록 안전관리의 여유도 사라진다. 그리고 여유가 사라지는 순간, 식품 안전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실제로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는 식품 부정행위(food fraud), 원산지 위조, 저품질 원료 혼입, 미생물 관리 부실과 같은 문제가 동시에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전쟁은 단순한 국제정치 문제가 아니라 식품 안전 리스크를 증폭시키는 촉매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 냉정하게 말하면 위기와 기회, 두 가지를 동시에 봐야 한다.

비용 상승, 수급 불안, 품질 리스크라는 위협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산업구조를 재편할 기회도 열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값싸고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 중심 전략은 더 이상 절대적 해법이 아니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이다.

첫 번째 기회는 공급망 재편이다. 특정 국가나 특정 지역 의존도를 낮추고 다변화된 조달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단순히 공급처 숫자를 늘리는 수준이 아니라, 위기에 견딜 수 있는 ‘위험 분산형 공급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비용은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그 비용은 비효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는 식품안전관리의 고도화다. 이제 식품 안전은 규제가 아니라 경쟁력이다.

원료추적시스템, 공급망 데이터 통합, 실시간 모니터링, 미생물 제어 기술과 같은 과학 기반 관리 체계를 갖춘 기업만이 위기 속에서도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특히 병원성 미생물과 생물막(biofilm) 제어 기술 같은 미시적 안전관리 역량이 결국 거시적 공급망 리스크를 차단하는 핵심기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는 식품산업의 재정의다.

식품산업은 더 이상 단순 소비재 산업이 아니다. 에너지, 농업, 물류, 환경, 바이오 기술이 결합된 국가 전략산업이며 동시에 식량안보의 핵심 인프라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식품산업을 ‘가격 경쟁 산업’ 정도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제 정책의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전략 원료비축시스템, 국가 차원의 공급망 관리, 식량안보 투자 확대와 같은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기업의 대응 역시 달라져야 한다. 위기 대응은 선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우선 원료 다변화와 재고 전략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후 공급업체 검증체계를 서류 중심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 실시간 관리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도 식품안전 기준을 낮추지 않는 내부 통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결국 위기 때 무너지는 기업과 살아남는 기업의 차이는 ‘비용’이 아니라 ‘관리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전쟁은 총성과 함께 시작되지만 그 여파는 조용히 식탁 위에 도달한다. 소비자는 대개 그 변화를 먼저 가격으로 느끼고, 나중에 안전 문제로 체감한다.

식품산업이 해야 할 일은 이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을 먼저 통제하고, 소비자가 체감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 식품산업이 감당해야 할 새로운 책임이다.

지금의 이란·미국 갈등은 단순한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구조적 리스크의 신호에 가깝다.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이번 위기’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 반복될 ‘다음 위기’다.

그리고 그 준비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식품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