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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잼도시’ 대전·‘라면도시’ 구미… 눈길 사로잡아야 발길 이끈다 [심층기획]

곡산 2025. 1. 17. 07:09

‘빵잼도시’ 대전·‘라면도시’ 구미… 눈길 사로잡아야 발길 이끈다 [심층기획]

강은선입력 2025. 1. 15. 06:03
지자체 ‘도시브랜딩’ 전성시대
‘노잼도시’ 불리던 대전, 역발상적 실험
전문가 아닌 시민 주도로 브랜드 구축
유명 빵집 접목 ‘디저트의 도시’로 흥행
‘김천=김밥천국’ MZ세대 인식 반영해
10만여명 몰리는 지역축제 개최 ‘대박’
춘천 ‘도시 에디터’ 양성해 정체성 모색
“기억 남는 도시일수록 더 자주 가게 돼”
지역 소멸 속 관계 인구 형성 해법 각광
외부인 유입·정주 기간 연장 기여 평가
‘노잼도시(대전)는 빵잼도시로, 회색 공업도시(구미)는 라면도시로….’
 
재미가 없어서 재미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는 도시, 기업 생산 제품을 축제 아이템으로 ‘색깔을 만든’ 도시. 역발상을 기조로 한 도시브랜딩이 흥행하고 있다. 인구절벽과 지역소멸 시대, 도시브랜드는 ‘판매’보다 ‘활동’으로 만들어가는 일종의 도시 운영 방향성이자 가치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임기 4년짜리 ‘도시 슬로건’이 도시의 경쟁력과 생존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이다.
 
도시브랜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는 저물었다. 이젠 적극적으로 경험(체험)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도시를 인식하는 활동이자 도시를 만나는 모든 접점이 도시 브랜드다. 최근 많은 지자체가 시민 주도의 도시 브랜딩 구축에 뛰어들고 있다. 도시브랜딩은 도시의 지속가능성과 지역소멸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대전 도시브랜딩의 대표주자인 성심당 빵집 내부. 대전시 제공
 
◆슬로건보다 경험·공감이 도시 브랜드

‘노잼도시’의 대명사였던 대전. 대전은 ‘꿀잼도시’, ‘놀잼도시’, ‘빵잼도시’ 등 활기차면서도 다양한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14일 대전시에 따르면 시는 최근 색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 시민들이 만든 ‘노잼도시’ 이미지가 되레 관광객을 몰고 오는 역발상 도시마케팅 효과를 내자 도시브랜딩 구축에도 역발상적 접근을 했다. 시는 그동안 전문가들이 진행한 도시 브랜딩 구축을 시민에 맡겼다. 도시 슬로건처럼 하향식(top-down) 전달이 아닌, 시민의 경험과 공감을 중심으로 브랜딩하는 상향식(down-top) 방식이다.

대전세종연구원은 지난해 6∼8월 시민들을 도시브랜딩 워킹그룹에 참여시켰다. 11명의 참여자는 대전지역 특성과 각종 지역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있고 실제 기획에 참여했던 지역 청년들이다. 또 로컬콘텐츠를 활용해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 혹은 그룹 활동 경험, 창의적인 로컬 콘텐츠 발굴과 개발 및 상업화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2개 그룹으로 나뉘어 2∼3회 그룹별 심층 토론과 개별 결과물을 제출했다.

도시브랜딩 워킹그룹을 진행한 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시브랜드는 도시에 대한 고유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의 집합이지만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인식·사고 등 이미지, 사물, 자연 등 도시에서 경험되는 문화 그 자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시의 발전방향성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일종의 시민 소통 과정이자 도시브랜딩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대전 성심당 본점 전경. 대전시 제공
 
청년 시민들 참여 결과는 놀라웠다. 이들은 도시브랜딩 아이템으로 ‘디저트의 도시’, ‘근대 문화유산의 도시’ 등을 제안했다. 대전 성심당을 허브로 한 ‘디저트의 도시’로 포지셔닝하고 옛 충남도청사 등 근대건축물과 골목, 옛 시장을 경험할 수 있는 도시 여행 등을 도시브랜딩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워킹그룹 참여자들은 도시 브랜딩의 지속가능성이 시민들의 참여에서 비롯한다고 입을 모았다. 참여단체 ‘대저너(Daejeoner)’의 한 관계자는 “도시를 가장 많이 경험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주체이지만 대저너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브랜딩은 도시의 매력을 반감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와 ‘도시’의 스토리텔링에 대저너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도시브랜딩”이라고 말했다.

◆사람과 도시의 연결… 지역소멸 해법으로

지난해 10월 열린 경북 김천시 김밥축제엔 1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소위 ‘대박’을 쳤다. 김밥축제는 MZ세대(1981∼2010년생)의 언어유희와 김천시의 혁신적인 행정이 결합한 ‘도시브랜드’ 구축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김천시는 도시브랜딩에 앞서 MZ세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김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 ‘김밥천국’이란 의견이 다수 쏟아졌다. 김천시는 김천을 김밥천국으로 인식한다는 조사 결과에 실망하지 않고 이를 축제 아이템으로 기획했다. ‘관계가 없지만 있는’ 축제인 것이다. 이 축제는 첫해 만에 김천시의 도시 브랜드이자 정체성이 됐다.

 

지난 2024년 10월 처음 열린 경북 김천시 김밥축제에 10만명 이상이 몰리면서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김천시 제공
 
2022년 첫 축제를 연 경북 구미시 라면축제 역시 ‘노아이템을 아이템화한 축제’로 이목을 끌며 2년 연속 15만명 이상이 찾는 전국 축제로 발돋움했다.

경북 김천과 구미의 사례는 도시브랜드를 구성하는 요소가 늘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변화하고 유동·유연한 도시 브랜딩은 시민들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상품으로 팔아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것에서 ‘소통’이 도시 브랜딩의 전제가 되고 있다.

강원 춘천시는 아예 도시 브랜드를 구축하는 ‘도시 에디터’를 양성하고 있다. ‘도시 에디터’는 잡지 편집자처럼 도시 구성물을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수정·보완하고 배치하는 시각과 안목을 가진 사람들로 채운다. 이들은 지난해 ‘문화도시 춘천’을 구성하는 각종 취향 기반 장소와 활동을 지도로 제작하는 등 춘천의 도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하고 있다.
경북 구미시 라면축제 모습. 연합뉴스
 
울산시도 대표 자산을 도시브랜딩화하기 위해 도시브랜드 추진단을 운영했다. 울산시는 행정과 도시브랜드 전문가, 시민을 선별해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디자인 선호 의견을 수렴해 도시브랜드 개발에 나섰다.

이런 도시 브랜딩은 지역·인구소멸에서 관계인구를 형성하는 해법이 되고 있다.

주혜진 연구위원은 “어떤 도시에 가서 로고나 슬로건, 대표적인 방문지에 가보면 ‘아 그렇구나’ 하고 지나치기 쉬운데, 실제 사는 사람들의 삶과 정교하게 연계되어 있다면, 브랜드를 확실하게 체감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렇다면 도시를 더 잘 알았다는 느낌이 들고, 매력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오래 기억하게 된다”며 “기억에 남은 도시에 더 자주 가고, 오래 머물며 혹은 거주할 수도 있지 않겠나. 이런 과정이 ‘관계 인구’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도시 특유의 문화와 가치를 반영한 브랜드는 외부 인구 유입과 정주 기간을 늘리는 데 기여할뿐더러 지역 내 공동체 형성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대전=강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