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판례 여행①] ‘양파’는 식품인가?
-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0.08.18 01:34
대법원 엇갈린 판결…양파, 식품위생법상 38년 만에 식품 인정
첫 번째 판결, 영업허가 받지 않아 기소된 사람 ‘무죄’
두 번째선 산업 발전·식습관 등 종합적 고려 식품 판단
이번 호부터 법무법인 율촌의 ‘식품 판례 여행’을 연재합니다. 식품 산업 관련 법적 이슈에 대해 가장 중요한 논거 중 하나는 대법원 판례입니다. 그 동안 식품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는 체계적인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칼럼은 식품위생법을 비롯해 식품 산업 전반에 대해 내려진 대법원 판결을 중심으로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판례를 쉽게 해설합니다. 시리즈는 율촌의 식품산업팀 소속 변호사들이 돌아가면서 집필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 첫 번째 여행의 시작
△강선주 번호사
“식품”이란 무엇일까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질문으로 첫 번째 식품산업 판례여행을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식품”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 수 있고, 또 그런 생각들이 일반적으로 타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법은 오묘한 면이 있어서, “식품”과 “식품이 아닌 것”의 경계를 반드시 판단하여야만 하는 순간이 옵니다.
바로 우리 식품산업의 가장 기본적인 법인 식품위생법은 “식품”으로 인하여 생기는 여러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식품이 아닌 것”과 관련하여 생기는 문제는 식품위생법으로 처벌할 수가 없게 됩니다.
1962년 제정된 식품위생법은 만들어진 이후 줄곧 “식품”이란 “모든 음식물(의약으로 섭취하는 것은 제외)”을 말한다고 규정해 왔습니다.
김치, 밥이 식품이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면 김치의 재료인 배추, 밥의 재료인 쌀도 식품인 것일까요?
너무나 간단한 문제인 것 같지만 “식품”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법원은 2건이나 되는 판결을 남겼습니다. 그것도 모두 “양파”를 통해서입니다.
과연 “양파”는 “식품”일까요, 아니면 “식품이 아닌 것”일까요?
● 쟁 점
양파가 식품위생법상의 식품일까요?
<첫 번째 대법원의 판단-대법원 1979. 4. 24. 선고 79도33 판결>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음식물 관념 내지 일반적인 식생활 상황에 비추어서 양파 그 자체가 바로 음식물에 해당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양파는 식품위생법 소정의 식품이라 볼 수 없고, 따라서 동법 제23조, 제22조의 영업허가 대상인 식품이 될 수 없다.
<두 번째 대법원의 판단-대법원 2017. 1. 12. 선고 2016도237 판결>
식품위생법 제2조 제1호는 “‘식품’이란 모든 음식물(의약으로 섭취하는 것은 제외한다)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위 식품에는 가공 및 조리된 식품뿐 아니라 ‘자연식품’도 포함된다.
그런데 자연으로부터 생산되는 산물이 어느 단계부터 자연식품으로서 식품위생법상 ‘식품’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식품으로 인한 위생상의 위해를 방지하고 국민보건의 증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식품위생법의 입법 목적(식품위생법 제1조), 식품위생법 및 그 시행령 등 식품위생법령과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식품산업진흥법, 농수산물 품질관리법 등 관련 법령의 규정 체계, 식품의 생산·판매·운반 등에 대한 위생 감시 등 식품으로 규율할 필요성과 아울러 우리 사회의 식습관이나 보편적인 음식물 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식품위생법상 ‘식품’의 개념은 식품 관련 법령의 개정 및 식품 관련 산업의 발전, 식습관의 변화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과거에는 식품위생법상 ‘식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평가되었던 것도 현재에는 식품위생법상 ‘식품’에 해당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식습관 및 보편적인 음식물 관념상 가공·조리되지 않은 양파는 식품으로 받아들여져 왔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가공·조리되지 않은 상태로 판매되고 있으므로, 가공되지 않은 양파를 식품으로 취급하여 위생을 감시할 필요성이 있는 점, 양파가 식품위생법상 식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국민들의 식습관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식품안전관리체계에도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양파는 그 자체로 현행 식품위생법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식품에 해당한다.
첫 번째 대법원 판결은, 식품관련 법령의 개정 및 우리 사회의 식습관이나 보편적인 음식물 관념의 변화에 따라 식품위생법상 ‘식품’에 관한 해석이 달라지기 이전의 사안으로 이 사건에 원용하기 적절하지 않다.
● 판결의 의의
1979년에 대법원은 처음으로 “양파”에 대해 판단하면서, 양파는 “식품”이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당시 우리의 식습관 등에 비추어 보면 양파는 생으로 섭취하기 보다는 주로 요리의 재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양파 자체를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물” 즉 “식품”으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후 두 번째 대법원 판결은 2017년에 내려졌습니다. 이 두 번째 대법원 판결을 통해 양파는 드디어 “식품”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무려 38년간 양파는 식품위생법상 “식품”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대법원의 판결을 흔히 “판례”라고 합니다.
위 양파 판결들을 통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점은 바로 앞으로 계속 살펴볼 “판례”의 어마어마한 힘입니다. 식품위생법상 “식품”의 정의는 1962년 이후 실질적으로 변한 적이 없는데, 대법원은 그 의지로 양파를 식품이 아닌 것으로 보기도 하고, 식품이라고 판단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럼 대법원이 양파를 식품이 아니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 동글동글한 양파가 식품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일까요?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양파와 관련하여 영업허가를 받지 않아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이 1979년에는 첫 번째 판례에 따라 결국 무죄가 되었습니다.
● 첫 번째 여행을 마치며
우리가 식품산업에 종사하면서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모든 국가 행위의 최종적 판단은 결국 법원 그리고 법원 중에서도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한다는 점입니다.
양파에 대한 위 두 가지 판결을 통해 우리는, 식품위생법의 가장 근본적인 개념인 “식품”조차 대법원은 스스로 그 범위를 결정할 수 있고, 그 자신의 과거 판결조차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대법원 판례들을 이해하는 과정이야말로 어떠한 분쟁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38년만에 드디어 “식품”이 된 “양파”, 볶을수록 달콤해지는 양파처럼, 우리 대법원 판례도 여러 번 음미할수록 깊은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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