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시사

[식품 판례 여행③] 먹는 물 판매금지 사건-“먹는 물의 판매는 언제부터 허용되었을까?”

곡산 2020. 9. 14. 06:15

[식품 판례 여행③] 먹는 물 판매금지 사건-“먹는 물의 판매는 언제부터 허용되었을까?”

  •  박주봉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0.09.14 01:38

‘수출·주한 외국인용 먹는 물’ 내국인 판매에 과징금 부과 건
대법원, 직업의 자유·행복 추구권 관점서 판결
판매 제한하는 합리적인 이유 내세운 1·2심 판결 번복
수십 년 유지된 생산 판금 폐지…물 산업 기틀 마련

<세 번째 여행의 시작>

△박주봉 변호사

봉이 김선달의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김선달이 한양 상인들에게 대동강 물을 팔아 넘긴 사건으로, 평양 시민들로부터 대동강 물세를 거두려는 상인들을 모두가 힘껏 비웃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 일화는 ‘물’은 공공재 내지는 자유재로서 판매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약 300년 정도가 지난 현재는 어떠한가? 세상이 달라졌다. 물산업 또는 물관리산업은 국가의 주요 산업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물의 용도, 수원(水源), 성분에 따라 다양한 법령과 규제가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먹는 물’의 경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물을 사서 마신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였던것과 달리, 관련 시장규모가 약 1조 원을 훌쩍 넘을 정도의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불과 약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지속된 요청 내지 희망에도 불구하고 내국민은 ‘생수’를 구매하거나 소비할 수 없었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엄연한 현실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내국민의 먹는물을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게 되고, 먹는물산업이 국가의 주요 산업으로 성장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사건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전량수출 또는 주한외국인에게 판매하는 것을 조건으로 먹는물(당시 법령을 기준으로 ‘보존음료수’) 등의 제조를 허락받은 업체에게 해당 제품을 대한민국 국민에게 판매하였음을 이유로 이루어진 영업정지에 갈음하는 과징금 부과처분이 적법한지가 문제된 사안이다.

이에 대해 1심과 2심 법원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보존음료수를 판매하는 것을 제한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음을 가장 주된 근거로 하여 위 과징금 부과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상급심인 대법원은 위 과징금 부과처분을 어떻게 보았을까?

<쟁점>

대한민국 국민에게 보존음료수의 판매를 제한할 적법한 사유가 있는가?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1994. 3. 8. 선고 92누1728 판결>

(직업의 자유 침해 관련) 보존음료수의 국내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직업의 자유를 심하게 제한하고 있다. 보존음료수의 판매 등으로 인한 계측 간 위화감의 방지는 보존음료수의 국내판매를 제한하는 근거가 될만한 정당한 목적이라고 할 수 없다. 보존음료수의 국내판매와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그와 같은 이유만으로 보존음료수를 주한외국인에게만 판매하도록 허용하고 국내판매를 완전히 금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고,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한 필요하고도 적절한 방법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보존음료수의 국내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보존음료수제조업의 허가를 받은 자의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

(행복추구권 침해 관련)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방지한다는 공공의 목적과 보존음료수의 국내판매를 금지함으로 인하여 국민의 행복추구권이 제한되는 결과를 비교하여 본다면, 행복추구권이 제한되거나 침해됨으로 말미암아 국민이 입게 되는 손실이 더 크다. 따라서 이 점에서도 보존음료수의 국내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판결의 의의>

위 판결은 내국민에 대한 보존음료수의 판매를 금지하는 국가의 규제는 보존음료수 제조업자의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고,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선언한 판결이다. 위 판결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먹는 물에 대한 기본법인 「먹는물관리법」이 제정되는 등 관련 법제가 정비되었고, 이를 통해 소위 생수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참고로 위 판결이 선고된 이후 먹는샘물 제조업자 및 수입판매업자에게 (수돗물에 대한) 수질개선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이 적법한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헌법재판소 1998. 12. 24. 선고 98헌가1 결정, 헌법재판소 2004. 7. 15. 선고 2002헌바42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먹는샘물과 수돗물이 구분된다는 이유만으로는 양자에 대한 정책 내지 규제가 완전히 구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일련의 판결 및 결정은, ‘물’이라는 중요 자원의 보호 및 보존을 위한 통일·융화된 법체계를 마련하되, 그 안에서 ‘물’의 용도, 종류 등에 따라 필요한 범위 내에서 개별적인 법령 및 규제가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현행 물산업 내지 물관리산업에 대한 기본적인 법적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세 번째 여행을 마치며>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과징금 부과처분을 끝까지 다퉈보기로 한 일부 업체들의 결단으로 인하여, 국민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생수 판매금지 제도가 마침내 폐지되고 우리나라의 물산업 내지 물관리산업의 기본적인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떻게 보면 마치 선구자로서 그 길을 개척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식품음료업은 규제가 많은 산업이지만, 업계 실무적으로는 부당 내지 과도하다고 판단되는 규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먹는 물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과징금 부과처분을 다퉈보기로 한 작은 결단이 오늘날 1조원이 넘는 거대 먹는물 시장을 일구어 내는 기틀을 마련한 것처럼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비록 작은 목소리지만 식품음료업계의 실무 차원에서 느끼는 불편함에 대한 적극적인 공유와 의견 개진의 형태로 나오는 목소리는 향후 그 산업계의 제도 개선과 식품음료 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큰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