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8일. 시게미쓰 사토시씨와 아야씨의 약혼식 장면. 화려한 금색 병풍 앞에서 시게미쓰 사토시씨가 아야씨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있다. 시게미쓰 사토시씨는 약혼식 직후 “일본으로 일시 귀국해 유이노우(結納)와 입적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Just married”라고 밝혔다. 유이노우는 혼인예물을 교환하고 양가의 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부부가 될것임을 공표하는 자리다. 2013년 8월 컬럼비아대 MBA 과정에 입학했다. 성장 과정이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아 신동빈 회장의 모교인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국적은 일본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 : 시게미쓰 사토시씨 페이스북> 1998년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고향인 울산 둔기리에서 가족들과 찍은 사진. 왼쪽부터 시게미쓰 하쓰코, 신 총괄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아들 정훈, 맏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큰 며느리 조은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 회장의 장녀 규미, 둘째 며느리 시게미쓰 마나미, 신 회장의 장남 시게미쓰 사토시, 차녀 승은. <사진 : 조선일보 DB> |
2015년 5월. 시게미쓰 사토시씨 프로필 사진. 시게미쓰 사토시씨는 일본 황족과 귀족이 들어가는 학교로 잘 알려진 가쿠슈인(學習院)을 거쳐 2008년 게이오 대학을 졸업했다. <사진 : 시게미쓰 사토시씨 페이스북> |
‘데이코쿠 호텔 구자쿠노마(공작홀·孔雀の間)의 대연회’.
2015년 11월 28일 아침, 일본 도쿄 치요다구 우치사이와이쵸(千代田区内幸町)의 데이코쿠 호텔 주변 공기는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아침 일찍부터 경관들이 호텔 주변 교통을 통제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경호원들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VIP가 출전하나?” 도쿄 시민들은 데이코쿠 호텔에서 중요 행사가 열릴 것을 직감했다. 주요 관청들이 밀접해 있고, 일왕이 살고 있는 황거(皇居)와도 가까운 데이코쿠 호텔에선 정·재계 실력자들의 연회가 자주 열린다. 1890년 문을 연 데이코쿠 호텔은 일본의 근대화, 권력과 금력,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초일류 호텔이다. 1950년대 패전으로 궁핍했던 일본 사회에 서양식 뷔페를 처음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2003년 11월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장녀 노리노미야(紀宮) 공주의 결혼 피로연도 데이코쿠 호텔에서 열렸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호텔 입구에는 검은색 대형 승용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낮 12시 10분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였다. 아베 총리는 승용차에서 내려 데이코쿠 호텔의 대연회장인 구자쿠노마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시게미쓰 사토시(愉悦 일본명 시게미쓰 사토시·重光聡·30)씨의 결혼식 피로연이 예정된 곳이다.
일본 공안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피로연 참석 1시간 전 시부야(渋谷)의 단골 미용실인 ‘헤어 게스트(Hair Guest)’에 들러 이발과 면도를 했다”고 귀띔했다.
2015년 ‘데이코쿠 호텔 구자쿠노마의 대연회’... “日 내각을 옮긴 듯”
아베 총리의 도착을 전후해 정계의 거물들이 속속 등장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후생노동장관, 경제산업장관을 지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총무회장도 등장했다.
신동빈 회장은 VIP룸에서 귀빈들을 맞았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전 부총리(민주당 대표), 다케시타 와타루(竹下亘) 전 부흥장관,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郎) 전 재무장관 등과 반갑게 악수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의 아들인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전 외무장관, 도쿄 도지사를 지낸 거물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의 아들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전 환경장관도 470여명에 달하는 길고 화려한 연회 초청자 명단을 빛냈다.
아베 총리는 축사를 하는 등 2시간가량 피로연을 즐긴 뒤 자택으로 돌아갔다. 한 참석자는 “아베 총리는 오랜 친구인 신 회장의 장남 결혼을 매우 기뻐했다.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신동빈 회장이 작년 6월 아베 총리 자택으로 찾아가 직접 초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가의 화려한 결혼 피로연은 일본에서도 화제였다. 현직 총리가 재계 총수 자녀의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하는 일은 정·경 유착의 뿌리가 깊은 일본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다.
일본의 최대 시사 주간지 <슈칸분슌(주간문춘·週刊文春)>은 “아베 수상도 참석한 ‘롯데 시게미쓰가’의 결혼 피로연에 달려간 인사들”이라는 제목의 기사(2015년 12월 10일자)를 통해 롯데가 장남의 화려한 결혼 피로연을 크게 보도했다.
신 회장 장남의 결혼 피로연에는 한·일 롯데 그룹의 경영권을 쥔 일본 롯데홀딩스와 12개 일본 롯데 계열사들의 고위 임원들이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지켰다. 신동빈 회장을 지지해 롯데그룹 경영권 다툼에서 신 회장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72)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 고바야시 마사모토(小林正元·67) 일본 롯데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롯데캐피탈 사장도 얼굴을 비췄다. 한국 재계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참석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에 이어 일본과 한국의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후계자임을 공식 선언하는 자리 같았다”고 했다.
<슈칸분슌>은 “아키오(신동빈 회장의 일본명 重光昭夫) 회장의 부름에 일본 정치의 거물들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한국에서는 롯데가 일본 기업이냐 한국 기업이냐는 논란이 있었고, 신동빈 회장은 한국 기업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피로연 내빈들의 면면을 보면 (일본 기업이란)의혹의 목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이번 호화 피로연이 (롯데그룹)경영권 다툼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썼다.
1985년 ‘시게미쓰가의 대피로연’…
전·현직 총리 3명 등 정계 거물들 총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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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8월 일본에서 롯데 야구단의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사진 : 스포니치 캡처> |
롯데가의 일본 정계 인맥은 일본 재계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일본 재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재일 한인 고학생 출신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편견을 딛고 일본에서 대그룹을 일으킬 수 있었던 비결은 거미줄처럼 넓고, 강철같이 단단한 정치 인맥 덕분”이라고 했다.
사실 작년 11월 신동빈 회장 장남의 결혼 피로연에 참석한 일부 인사들은 30년 전 신동빈 회장의 결혼식을 떠올렸다.
신동빈 회장과 시게미쓰 마나미(57·重光真奈美)씨의 결혼식은 1985년 6월 일본 도쿄 번화가의 아카사카(赤坂)프린스 호텔 신관에서 열렸다. 일본 전통 혼례 방식으로 진행된 결혼식과 성대한 피로연은 7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결혼식 주례는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가 맡았다. 현직 총리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會根康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 등 전·현직 일본 총리 3명이 나란히 참석, 화제를 모았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하토야마 기이치로(鳩山紀一郎), 가와모토 도시오(河本敏夫) 등 거물 정치인들도 대거 등장했다.
일본 유력 주간지인 <슈칸신쵸(週刊新潮)>는 당시 결혼식을 ‘시게미쓰가의 대피로연(重光家の大披露宴)’이란 제목으로 크게 다뤘다. <슈칸신쵸>는 “결혼식 하객들의 면면은 일본 내각과 참의원, 중의원을 그대로 옮긴 듯했다”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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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시게미쓰 아야씨 프로필 사진. 노무라증권에서 일하a다 시게미쓰 사토시씨와 2013년 12월에 혼인신고를 했다. <사진: 시게미쓰 아야씨 페이스북> |
롯데가의 일본 정계 인맥의 시작은 신격호(일본명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 총괄회장이 롯데를 설립한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재일 한국인 가운데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로 꼽히지만, 회사 설립 초기 일본인들의 노골적인 민족 차별에 설움을 겪었다.
신 회장은 결국 정치적 배경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라는 당대 일본 정계의 실력자와 운명적인 인연을 맺는다.
두 사람이 누구를 통해 인연을 맺었는지는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최근 <슈칸분슌(2015년 9월 3일자)>은 “기시 총리를 신격호 총괄회장과 연결한 인물은 마치이 히사유키(町井久之 · 한국명 정건영 · 鄭建永, 1923~2002)씨”라고 보도했다. ‘긴자의 호랑이’로 불린 마치이씨는 재일 한국인 실업가로, 부관페리 회장, 재일민단 중앙본부 고문을 지냈다. 마치이씨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도 친분이 깊어 한·일 국교 정상화에 기여한 ‘한국과 일본의 막후 연결 고리(フィクサー·Fixer)’로 알려져 있다.
기시 전 총리는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총리(56·57대)를 지낸 일본 정계의 실력자였다. 1926~89년을 뜻하는 쇼와(昭和) 시대 전 기간 동안 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 ‘쇼와의 요괴(昭和の妖怪)’로 통했다. 만주국 차관을 지냈으면서도 일본 패전 후 처벌 받지 않고 승승장구, 총리 자리에 올랐고 1987년 사망할 때까지 일본 정계를 주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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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2일. 생일을 맞은 시게미쓰 사토시씨는 컬럼비아대에서 함께 공부하는 외국인 친구들과 조촐한 파티를 했다. 시게미쓰 사토시씨는 농구, 야구 등의 스포츠 관람도 즐기는 것으로 전해진다. 2014년 4월엔 뉴욕 연고 프로 야구팀인 양키스의 홈구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사진: 시게미쓰 사토시씨 페이스북> |
기시 전 총리는 1960년대 일본 정계의 대표적인 ‘친한(親韓)’ 인사로, 일본 롯데의 한국 진출을 돕기도 했다. 일본 롯데가 일본의 프로 야구단을 인수할 때도 정계, 재계, 스포츠계의 반발을 무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 기시 전 총리의 비서관이 롯데 야구단 구단주로 취임했다. 기시 전 총리의 사위는 아베 신타로(安倍晉太郎) 전 외무장관이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일본 총리(97대)가 외손주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71·72·73대)와 신격호 회장의 친분도 유명하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동향(울산)인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나카소네에게 물적, 인적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1983년 방한 당시 신라호텔이었던 숙소를 롯데호텔로 바꾸도록 지시하는 등 롯데와의 친분을 숨기지 않았다. 롯데월드와 부산 롯데호텔 개관식 등 롯데의 주요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 신 총괄회장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2014년 4월 12일. 시게미쓰 사토시씨와 아야씨가 뉴욕 치프리아니 월스트리트 호텔에서 갈라 파티를 즐기고 있다. 두 사람은 2015년 3월 하와이에서 결혼했고, 11월 28일 일본에서 성대한 피로연을 개최했다. 시게미쓰 사토시씨가 언제 롯데그룹 경영에 참여할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장남 시게미쓰 사토시씨를 비롯해 장녀 규미(28)씨와 승은(24)씨 등 두 딸을 두고 있다. 사실상 시게미쓰 사토시씨가 가장 유력한 차기 오너 경영인 후보다. 2013년 시게미쓰 사토시씨가 촬영한 뉴욕 풍경. 시게미쓰 사토시씨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대학 경영대학원에 입학, 뉴욕에 거주했다. 시게미쓰 사토시씨는 훤칠한 키에 스포츠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시게미쓰 사토시씨 페이스북>
일본 정계 흔든 ‘록히드스캔들’… 신격호 총괄회장 중재로 후쿠다, 오히라 총리 탄생
도쿄 도지사를 지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뒤를 잇는 우익 정치인이다. 자민당 내 파벌 중 하나인 ‘세이란카이(青嵐会)’ 출신으로, 전설적인 야구 선수 출신으로 롯데 오리온스 감독을 지낸 가네다 마사이치(金田 正一)와도 친분이 깊었다.
신동빈 회장 결혼식의 주례를 선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67대)는 1986년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당시 “이 사람을 초대하면 저 사람도 초대해야 하다 보니 성대한 결혼식이 돼버렸다”고 했다. 1987년 일본 대형 출판사 분게이슌주(文藝春秋)가 발간한 <재일의 영웅 롯데 신격호전>에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 이름인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라고 적힌 명함과 한국 이름이 적힌 두 가지 명함을 늘 가지고 다녔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록히드스캔들’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일본 정계 인맥의 깊이와 폭을 보여주는 일화로 두고두고 회자된다. 1976년 2월 미 상원 외교위원회 공청회에서 젠니쿠(全日空) 항공의 항공기 기종 선정과 관련, 미국 록히드사(社)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전 총리 등 일본 고위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폭로하면서 일본 정계 전체가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가 수사에 착수, 같은 해 7월 총리 재직 시절 뇌물을 받은 혐의로 다나카 전 총리를 구속, 국민의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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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시게미쓰 사토시씨 페이스북> |
록히드스캔들로 일본 정계는 산산조각이 났다. 다나카 전 총리의 뒤를 이어 미키 다케오(三木武夫)가 66대 일본 총리에 올랐지만 자민당(自民党) 정권은 붕괴 위기를 맞았다. 1955년 이후 장기 집권한 자민당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워낙 컸다.
이케다 총리 비서 출신으로 유명 정치평론가였던 이토 마사야(伊藤昌哉)는 <실록 자민당 전국사(自民党戦国史-권력의 연구, 1982년 발간)>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이 자민당 파벌의 두 거두였던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와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의 회담을 중개, 자민당 정권의 안정에 기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후쿠다의 밀명을 받은 신 총괄회장이 오히라에게 접근, ‘후쿠다-오히라 회담’을 성사시켰고, 이를 계기로 두 거물 정치인이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는 분석이다. 이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는 1976년 67대 일본 총리에 올랐고,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는 후쿠다 총리의 뒤를 이어 68·69대 일본 총리가 됐다.
1985년 노무라증권 사원이었던 신동빈 회장의 결혼식은 신 총괄회장의 일본 인맥을 과시하는 자리였다. 30년 뒤인 2015년 11월 피로연은 아버지와 형을 누르고 회장에 오른 신동빈 회장이 일본 정계의 거물들 앞에서 치른 대관식과 같았다.
2014년 4월 10일. 시게미쓰 사토시씨는 아야씨와 함께 양키스 홈 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했다. 맨 왼쪽 모자쓴 이가 아야씨. <사진: 시게미쓰 사토시씨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