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이 판매하는 과자는 중국인에게‘수입과자’가 아닌‘중국과자’로 통한다. <사진: 오리온> 오리온을 상징하는 과자는 초코파이다. 비스킷 사이에 마시멜로를 끼우고 초콜릿으로 감싼 이 파이는 ‘정(情)을 나누는’ 과자로, 또 군인에게 사랑 받는 간식으로 한국인의 정서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제 초코파이는 ‘한국인의 과자’로 부르기 민망한 글로벌 제품이 됐다.
중국에서 초코파이는 ‘좋은 친구’라는 뜻의 ‘하오리요우파이(好麗友派)’로 불린다. 한국인 감성을 자극하던 포장지 위의 ‘정’이란 글자는 중국 인간관계의 바탕인 ‘인(仁)’이 대체했다. 지난해 오리온 중국법인이 초코파이로 올린 매출액은 1870억원, 베트남과 러시아 등 다른 해외 매출을 합친 글로벌 초코파이 매출액은 4030억원에 달했다.
작년 오리온 중국법인 매출은 1조3300억원을 넘어섰다. 중국의 매출 신장에 힘입어 2009년 국내 매출을 앞지르기 시작한 오리온의 해외 매출 비중은 이제 전체 매출의 70%를 바라보고 있다. ‘내수 중심의 식음료 기업’이 명실공히 ‘수출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韓中수교 이전부터 발판 다져
오리온이 해외로 눈을 돌린 건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 보따리상을 통해 한국 과자가 중국으로 흘러가는 양상을 주목하던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1991년부터 중국 현지 답사를 시작했다. 한·중 수교(1992년 8월)가 맺어지기 전의 일이다. 중국 내에서 한국 과자의 성장 가능성을 살피던 오리온은 1993년 베이징에 사무소를 열고 대륙에 첫 발을 디뎠다.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중국 진출에 나섰지만,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은 차분한 접근법이 주효했다. 오리온은 사무소를 기반으로 철저한 시장 조사에 나섰고 초코파이가 중국인에게 호응 받는다는 점을 확인한 뒤인 1995년에야 비로소 사무소를 현지법인으로 전환했다. 초코파이 라인 1개, 5개 영업소, 80명이 채 안 되는 직원이 전부였다. 그러나 ‘통하는 품목’을 확인한 뒤 생산에 나선 덕분에 판매가 순조로웠다. 첫 공장 준공 1년 만에 흑자를 내며 주목 받는 제과기업으로 발돋움을 시작했다.
1997년에는 베이징 인근 허베이성 랑팡에 현지 생산기지를 구축하며 본격적인 중국 공략에 나섰다. 처음에는 랑팡에서 생산한 제품을 베이징 인근에서만 판매했고, 2002년 상하이 공장을 지은 뒤에도 인근지역으로만 시장을 확대했다. 이후 서구식 식문화가 자리잡은 톈진, 셴양, 다롄 등 대도시에 먼저 진입했고 하얼빈과 창천, 시안 등의 지방도시로도 발을 뻗었다. 2010년에는 광저우 지역에 현지 생산기지를 추가로 세우며 중국 남부 지역 생산을 강화했다. 2014년에는 셴양공장 가동으로 동북3성 지역으로 발을 넓혔고 2015년 신장위구르 자치구 베이툰에 스낵 원재료 제조 공장을 세웠다.
성공비결 1
중국인도‘중국 회사’로 인정하는 현지화 전략
오리온은 시작부터 철저히 현지화 전략을 펼쳤다. 오리온의 현지법인 사무실에는 ‘Only Orion, World Class, Chinese Company’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슬로건에 맞게 현지법인 사장은 대만인으로 채용했고, 직원도 최대한 현지인을 채용했다. 주재원은 10년 이상 장기근속 하도록 해 해당 지역의 전문가로 키웠다.
담 회장이 화교 출신이라는 점 역시 자국 국민에 우호적인 중국의 공략에 이점으로 작용했다. 대리점 업무, 주문과 판촉, 디스플레이 등 제품의 유통 과정도 현지인이 대다수인 중국 현지법인이 주도하고 있다. 물류회사는 국제적으로 지명도 있는 업체를 쓰지만, 해당 물류회사에 대한 평가는 현지 대리점이 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도 현지화에 큰 역할을 했다. 가령 초코파이의 상징과 같던 파란색 포장지는 중국 진출과 함께 중국인이 선호하는 붉은색으로 바꿨고 제품 이름에도 현지 정서를 최대한 반영했다. 초코파이는 ‘좋은 친구’라는 뜻의 하오리요우파이로, 예감은 ‘감자의 꿈’이란 뜻의 슈위엔, 고래밥은 ‘물고기가 많다’는 뜻의 ‘하오뚜어위’로 이름을 바꿔 출시하는 식이다. 끊임없는 연구와 조사를 통해 중국인의 입맛을 파악하고 제품 자체를 현지화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중국에서 파는 초코파이는 한국 초코파이보다 우유향이 더 강한 편이다. 오감자의 경우 중국 소비자를 위해 토마토, 스테이크 등 색다른 맛의 시즈닝을 더한 제품을 출시했다. 그 밖에 소학교 설립, 재해지역 지원 등 여러 공익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현지인에게 우호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다.
성공비결 2
확실히‘될 만한’상품으로 승부한다
오리온은 여러 제품군을 한 번에 펼치는 대신, 한 번에 한 가지의 확실한 브랜드로 승부하는 전략을 펼쳤다. 처음 중국에 진출할 때 꺼내든 제품은 초코파이 한 가지였다. 초코파이가 중국 소비자 사이에서 확실한 제과브랜드로 자리를 잡은 뒤 후속 제품인 껌(2001년), 초코송이(2004년), 고래밥(2005년), 오감자(2008년), 예감(2009년) 등을 차례로 출시했다. 이런 전략은 오리온의 법인별 제품 현황을 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2016년 현재 국내에서 판매하는 오리온의 각종 과자 브랜드는 51개인 데 반해 중국에서 판매하는 브랜드는 15개, 베트남은 12개, 러시아는 3개에 불과하다.
그 결과는 연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메가브랜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2015년 오리온 중국법인이 판매한 과자 가운데 메가브랜드에 오른 제품은 초코파이(1870억원), ‘오!감자(呀!土豆·야투도우, 2370억원)’, ‘예감(薯愿·슈위엔,1780억원)’, ‘고래밥(하오뚜어위·好多魚, 1760억원)’, 자일리톨껌(1410억원), ‘큐티파이(Q帝派, 1120억원)’ 등 6종이다. 오리온은 차기 메가브랜드 가능성이 높은 제품으로 스윙칩(好友趣·하오요우취), 초코송이(磨高力·모구리) 등을 꼽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중국의 한 식품매장 과자 코너에 진열된 프리토 래이의 슈슈, 오리온이 판매하는 슈위엔. 언뜻 보면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모양새지만 슈위엔 판매량엔 큰 변동이 없었다.
성공비결 3
현금결제, 품질 관리… 정공법으로 다진 신뢰 관계
오리온은 중국 현지 파트너들과 돈독한 신뢰관계를 쌓기 위해 우직한 정공법을 택했다. 대리점 역할을 하는 경소상(經銷商)과 거래할 때 현금결제 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제품을 먼저 떼어준 뒤 나중에 판매 대금을 회수하는 외상(어음)거래가 일반적이던 중국 시장에서는 파격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지 않던 초반에는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오리온은 우직할 정도로 품질 관리에 힘을 쏟았다. 오리온이 중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던 1995년, 중국 남부 지역에서 판매된 초코파이가 더운 날씨 때문에 녹아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 진출 초반에 닥친 최대 위기였다. 그해 9월 오리온은 10만개에 달하는 초코파이를 중국 내 매장에서 전량 수거해 소각처리했다. 품질 관리에 대한 도매상과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결정이었다. 확실한 품질에 대한 믿음을 쌓은 도매상과 소비자들은 기꺼이 현금을 주고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정공법은 이후에도 오리온이 판매대금 회수에 대한 우려 없이 영업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지난해 미국 리글리에 이어 중국 제과 시장 2위 사업자로 부상한 오리온의 중국 공략은 현재진행형이다. 2018년 매출 목표는 100억위안(약 1조8000억원)이며 2021년에는 중국 내 제과업계 1위 등극을 목표로 삼았다. 이미 탄탄한 고객층을 갖춘 메가브랜드 6종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동시에 마켓오, 닥터유 등의 제품군으로 중국 내 프리미엄 제과 시장을 개척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