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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만족도 떨어지는 기업, 이중 처벌 받는다"

곡산 2008. 2. 17. 09:23

"고객만족도 떨어지는 기업, 이중 처벌 받는다"

미국 미시간대 클래스 포넬 교수 인터뷰

권력이 소비자로 이동하자 자본은 소비자와 동맹 맺어
시장점유율보다 고객 만족이 중요… 만족도 높은 기업이 실적도 좋아
고객이란 자산은 기업의 미래 결정
호경업 산업부 기자 hok@chosun.com
"고객만족도가 떨어지는 기업은 고객이 이탈하는 것은 물론이고, 투자자들도 자금을 회수하기 때문에 이중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

최근 방한한 고객 만족 분야 권위자인 클래스 포넬(Claes Fornell·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소비자들은 이제 자본과 손을 잡고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면서 이는 "경제적 쓰나미(economic tsunami)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자본은 항상 권력을 따른다"고 전제, "권력이 소비자로 이동하니 당연히 자본이 소비자와 '동맹'을 맺게 된다"고 덧붙였다. 경영자로선 정신이 번쩍 들 말이다.

그는 소비자 만족도를 계량화한 미국 고객만족지수(ACSI·American Customer Satisfaction Index)를 지난 1994년 개발했다. 이 지수는 미국의 비슷한 지수 중 대표적인 지수로 꼽힌다.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시행하는 한국의 국가고객만족지수(NCSI) 조사도 포넬 교수의 노하우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보다 고객 만족이 더 중요한 일이며, 경영 목표를 생산성 향상에만 두는 것도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비스업체의 경우 생산성 향상을 인원 감축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고객만족도가 떨어져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포넬 교수는 고객 만족도 추이를 보면 경기나 주가의 향방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만족지수는 경기에 3개월 정도 선행(先行) 한다"면서 "미국의 국가고객만족지수가 작년 하반기 정점을 친 것으로 보아 미국은 이미 경기 둔화 사이클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 클래스 포넬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요즘 소비자는 자본과 손을 잡고 기업을 한층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한국생산성본부 초청으로 한국에 온 포넬 교수를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만났다. 스웨덴 출신인 그는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것으로 미시간대에서 유명 인사다. 그는 강한 제스처를 섞어가며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권력이 소비자로 이동한다고 보는 근거는 뭐죠?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소비자는 점점 더 큰 힘을 지니게 됐어요. 대체재에 대한 정보, 어디서 사야 할지, 어떻게 사야 할지, 누가 무엇을 시장에 내놓았는지 등에 관한 정보를 속속들이 알게 됐다는 말입니다. 전세계에 1억 개의 블로그가 작동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인 거죠. 특정 제품이 맘에 안 들면 소비자는 금세 다른 회사 제품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한 기업은 혹독한 대가를 즉각적으로 치르게 됐다는 말입니다."

―고객만족도가 올라가는 기업이 실제로 실적도 좋습니까?

"고객 만족과 기업 실적 사이엔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독점산업을 제외한다면 분명한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애플·아마존·이베이·구글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미국 고객만족지수조사에서 상위에 올라 있고, 실적도 좋습니다. 노키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청바지 만드는 VF란 회사를 아십니까. 인지도가 비교적 낮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기업은 아니지만, 이곳도 높은 소비자 만족도와 함께 그에 걸맞은 실적을 냅니다. 식품기업 하인즈(Heinz) 역시 두 부분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기업입니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현대차가 매우 흥미로운 사례인데, 소비자 만족이 높아지면서 시장점유율과 재무 성과가 동시에 향상됐습니다."

―그럼 고객만족도가 높은 기업에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저는 실제로 이 방법으로 많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고객만족도를 알면 어떤 기업이 잘 할 수 있는 것인지 예상할 수 있고, 결국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얘깁니다. 고객만족도가 높은 기업들의 주식으로 펀드를 구성했는데, 미국과 유럽에서 이 펀드의 수익률은 매우 높습니다. 지난 2000년 미국 고객만족지수 상위 기업들로 구성된 ACSI 펀드가 출범했는데, S&P500 지수에 한 번도 뒤처진 적이 없습니다. 2007년의 경우 S&P500 지수가 5.5% 상승한 데 비해 ACSI 펀드는 21.8% 올랐습니다. 현재 이 펀드는 7000만 달러 규모지만 더욱 커질 겁니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기업이 고객만족도 역시 높은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그러기도 힘듭니다. 그렇다면 작은 기업들은 뭘로 경쟁을 합니까? 월마트나 맥도널드 등 대표적인 시장 메이저들은 그 시장에서 우월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하지만,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들 기업은 오히려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는 회사입니다.

시장점유율과 고객 만족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전 고객 만족을 고르겠습니다. 수많은 조사를 통해 높은 고객 만족이 높은 시장점유율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객 만족을 추구하면 향후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 만족에 성공하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가격을 내리거나 마진을 줄이는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 시장에서는 시장점유율이 높은 기업이 고객만족도 역시 1위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런가요. 그렇다면 굉장히 특이합니다. 그럼 한국의 중소기업은 어떻게 경쟁을 합니까. (중소기업들은) 고객 만족에서 이길 수 없다면 가격으로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럼 미국에서 작은 기업이지만 고객만족도가 높은 회사는 어디지요?

"사우스웨스트항공을 들겠습니다. 이 기업은 미국의 항공회사 중 규모가 큰 곳이 아닌데도 지난 14년간 관련 산업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항상 1위 였습니다. 다른 항공사들이 적자를 낼 때 좋은 실적을 내고 있고요.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은 별개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지요. 이 기업은 요즘처럼 유가 상승 등의 시련이 닥친다 해도 고객 만족을 유지하는 한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동차산업을 보죠. GM은 시장점유율 1위였으나 고객만족도는 처졌습니다. 반면 도요타는 시장점유율은 낮은 대신 고객 만족은 상위권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수년간 이어지면서 결국 도요타의 시장점유율은 올라가고 GM은 고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는 어떻습니까?

"현대차는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현대차는 처음엔 품질도 좋지 않고 가격도 낮았습니다. 가격정책으로 밀고 나간 거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 경영정책을 바꿨습니다. 품질 수준을 올리고 워런티(품질보증) 기간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늘리는 등 소비자들에게 드라마틱하게 변한 모습을 보인 거지요. 그 뒤 고객만족지수의 급반전이 1999년부터 2001년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미국에서 그 어느 기업도 현대자동차만큼 빠르게 소비자 인식을 바꿔 놓은 기업도 없습니다. 고객 만족이 순식간에 올라간 거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동력을 지속시킬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너무 빨리 변화하다 보니 최근엔 소비자 기대만큼 부응하지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현재는 고객만족도가 보통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고객 만족을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왜죠?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이 있다는 얘깁니다. 생산성 향상은 소비자 만족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종업원 10%를 해고하면서도 생산량은 그전과 동일하다면 생산성이 올라갔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적은 인원으로 고객 서비스를 하다 보면 예전과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란 분명히 힘들어집니다. 특히 서비스산업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2006년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최근 10년 간 가장 낮았습니다. 하지만 고객만족지수는 12년 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시 기업 이익은 매우 좋았고,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실업률도 낮았고 주가는 강세를 보였습니다."

―교수님은 고객과의 관계가 바로 중요한 기업 자산이라고 강조합니다. 자산은 대차대조표에서 수치화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요즘 기업 가치는 회계 장부만 보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회계 장부에 없지만 가장 중요한 기업 가치는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항상 나오는 얘기지만 원숭이가 무작위로 찍은 주식과 전문가들이 선정한 주식을 놓고 1년 후 주가를 비교하면 항상 원숭이가 무작위로 찍은 주식의 상승 폭이 더 컸습니다. 그 이유는 대차대조표만을 분석하면 주가 향방을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주식 전문가들은 기업의 진정한 자산인 고객이란 자산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고객 자산은 기업의 장기 성장 여부를 결정하는데도 말입니다."

―고객만족지수를 보면 경기를 알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고객만족지수는 경기를 3개월 정도 선행합니다. 미국의 고객만족지수 추이를 보면 1990년대 중반 추락했고, 2004년 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얘깁니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선 경기 침체(recession)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고객만족지수 추이만 보고도 경기를 내다볼 수 있는 셈입니다. 반면 한국의 국가고객만족지수는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한국이 선진국 기준에서 보면 높다고 할 수 있는 4% 이상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력 : 2008.02.15 2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