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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EU PPWR 쇼크 ①] "맛보다 포장이 먼저"…EU가 K-푸드 수출의 룰을 바꿨다

곡산 2026. 8. 11. 08:04
[핫이슈- EU PPWR 쇼크 ①] "맛보다 포장이 먼저"…EU가 K-푸드 수출의 룰을 바꿨다
  •  김민 기자
  •  승인 2026.08.10 21:06

8월 본격 적용...환경규제 넘어 제품 설계·공급망·시장 진입 좌우하는 신 무역질서로
EU 포장폐기물 연간 7970만 톤…회원국별 지침에서 역내 단일 규정으로 전환
재활용·재사용·감량·유해물질 관리까지 포장 전 생애주기 규율
K-푸드 수출기업, 제품 개발이 끝난 뒤 포장을 고르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K-푸드의 유럽 진출에서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맛과 품질, 가격, 현지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한 제품 개발 능력이었다. 그러나 2026년 8월부터 EU의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PPWR)’이 본격 적용되면 유럽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요소는 제품의 내용물이 아니라 이를 담고 있는 포장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PPWR는 포장재의 재활용 가능성과 재생원료 함량, 중량과 부피, 유해물질, 라벨링, 재사용 체계, 생산자책임까지 포장의 전 생애주기를 하나의 규제 틀 안에 묶은 제도다. 지금까지 기업이 제품을 개발한 뒤 디자인과 유통 편의에 맞춰 포장을 선택했다면, 앞으로는 포장 단계에서 규정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제품의 맛과 품질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EU 시장 출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PPWR를 단순한 친환경 정책이나 플라스틱 감축 규제로만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은 포장을 매개로 제품의 설계와 생산, 유통, 소비, 폐기, 재활용을 하나의 순환 체계로 연결하려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업이 사용하는 소재와 생산 방식뿐 아니라 수출 계약과 공급망의 책임 구조까지 다시 설계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포장이 환경정책의 대상에서 시장 진입을 좌우하는 무역규범으로 이동한 셈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2026  농식품  수출이슈조사' 사업으로 진행한 EU 포장 및 포장폐기물규정(PPWR)과 식품포장 트렌드 분석 보고서를 토대로 그 자세한 내용을 살펴본다.

■ 폐기물 감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유럽의 포장 문제

EU가 포장 규제를 전면 개편한 배경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포장폐기물이 있다.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EU에서 발생한 포장폐기물은 약 7970만 톤으로, 주민 1인당 연간 177.8㎏에 달했다. EU 전체 플라스틱 사용량의 약 40%가 포장재에 투입되고 있으며, 해양쓰레기의 절반가량도 포장재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자상거래 확대와 간편식 소비 증가, 소형·개별 포장 선호가 맞물리면서 포장재 사용량은 재활용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빠르게 늘어났다.

EU의 포장폐기물 재활용률은 2023년 평균 67.5%로 높아졌지만, 이 수치만으로 포장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플라스틱 포장재의 재활용률은 전체 평균보다 낮은 데다 회원국별 수거·선별·재활용 인프라의 편차도 컸기 때문이다. 같은 재질의 포장이라도 어느 국가에서는 재활용되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상황이 반복됐고, 국가별로 다른 표시와 분리배출 기준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혼란을 초래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존 정책이 폐기된 포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집중했을 뿐, 애초에 얼마나 많은 포장이 시장에 투입되고 어떤 구조로 설계되는지를 충분히 통제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복합소재, 실제 내용물보다 지나치게 큰 포장, 불필요한 이중 구조와 완충재, 회수 체계가 없는 일회용 포장이 계속 시장에 공급되는 상황에서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폐기물 증가를 막기 어려웠다.

EU가 PPWR를 통해 ‘폐기물 관리’에서 ‘포장 설계와 발생 예방’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긴 것도 이 때문이다. 포장이 폐기된 뒤의 처리 방법만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처음 설계하는 단계부터 재활용 가능성을 높이고 소재 사용량을 줄이며 반복 사용을 확대하도록 시장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 ‘지침’에서 ‘규정’으로…기업 대응의 차원이 달라졌다

PPWR는 1994년 제정된 기존 ‘포장 및 포장폐기물 지침(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Directive·PPWD)’을 대체한다. PPWD도 포장폐기물 감축과 재활용 확대를 목표로 했지만, ‘지침’이라는 법적 성격상 각 회원국이 이를 자국 법률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적용 기준과 시기, 집행 강도에 차이가 발생했다. EU 단일시장 안에서도 국가별 규정이 달라 기업들은 여러 제도를 동시에 관리해야 했고, 역내 공통 목표를 일관되게 달성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PPWR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러한 지침을 EU 회원국에 직접 적용되는 ‘규정’으로 바꿨다는 데 있다. 회원국별로 따로 법률을 만들지 않아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므로, 유럽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은 어느 한 국가의 규정을 충족하는 수준을 넘어 EU 전체에 통용되는 공통요건을 갖춰야 한다.

이는 수출기업 입장에서 규제가 단순해졌다는 의미와 동시에, 예외나 국가별 차이를 활용할 여지가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특정 국가의 포장 규정과 유통 관행에 맞춰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포장재의 설계부터 적합성 평가와 기술문서, 라벨링, 생산자책임까지 EU 공통기준을 전제로 제품을 준비해야 한다.

PPWR는 2025년 2월 11일 발효됐으며, 일반 적용일은 2026년 8월 12일이다. 다만 모든 의무가 같은 날 한꺼번에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식품접촉 포장재의 특정 유해물질 제한과 기본적인 적합성 의무는 2026년부터 적용되고, 통일된 분리배출 라벨과 포장 감량, 재활용 가능성 등은 2028년과 2030년을 전후해 단계적으로 강화된다. 따라서 기업에는 대응할 시간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포장재 개발과 성능시험, 생산라인 검증, 공급업체 변경에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준비 기간은 길지 않다.

■ PPWR의 표적은 플라스틱이 아니라 ‘선형경제’

PPWR를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으로 이해하면 정책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식품 포장에서 플라스틱은 가볍고 내구성이 높으며 수분과 산소를 차단해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포장재를 무리하게 줄이거나 기능성이 낮은 소재로 대체하면 식품의 유통기한이 짧아지고 파손과 변질이 늘어나 오히려 식품폐기물과 물류 부담이 증가할 수도 있다.

EU가 문제 삼는 것은 특정 소재의 존재 자체라기보다, 자원을 채취해 포장재를 만들고 한 번 사용한 뒤 버리는 ‘생산-소비-폐기’ 중심의 선형경제다. 이에 따라 PPWR는 플라스틱을 비롯한 모든 포장재에 대해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사용 후에는 재활용하거나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며, 회수된 자원을 새로운 포장재 생산에 재투입하는 순환구조를 요구한다.

이러한 방향은 기업의 포장 선택 기준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과거에는 가격과 디자인, 차단성, 생산속도, 소비자 편의가 주요 판단요소였다면 앞으로는 여기에 재활용 공정에서의 분리 가능성, 재생원료 사용 여부, 포장 중량과 빈 공간 비율, 회수와 재사용 가능성, 유해물질 관리, 환경표시의 입증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포장이 단순한 용기에서 규제와 기술, 마케팅, 물류가 만나는 복합적인 플랫폼으로 변하면서 식품기업 내부의 업무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연구개발 부서가 제품의 내용물만 설계하고 구매 부서가 포장재 가격을 비교하며 마케팅 부서가 디자인을 결정하는 기존의 분절된 방식으로는 PPWR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제품 개발 초기부터 연구개발, 품질관리, 구매, 생산, 수출, 법무, 마케팅 부서가 함께 포장 적합성을 검토하는 통합체계가 필요해진다.

■ 제품 하나가 아니라 ‘포장 시스템 전체’를 본다

PPWR의 규제 범위는 소비자가 매장에서 접하는 1차 포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러 제품을 묶는 집합포장, 운송 과정에서 사용하는 상자와 팔레트, 전자상거래 배송용 포장, 테이크아웃 용기까지 제품의 이동과 소비 과정에 사용되는 다양한 포장이 포함된다. 식품기업이 제품의 봉지나 병만 교체한다고 해서 대응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출고돼 EU의 유통창고와 매장,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 전체를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K-푸드는 수출 과정에서 국내 유통보다 더 많은 포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장거리 해상운송 중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외포장과 완충재, 소량 다품종 주문에 대응하기 위한 집합포장, 현지 온라인 판매를 위한 택배 포장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이들 포장의 중량과 빈 공간, 재사용 여부까지 규제 대상이 되면 식품 제조기업뿐 아니라 수출대행사와 물류회사, 현지 수입·유통업체도 공동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책임 주체 역시 거래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 기업이 EU의 수입자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일반적인 B2B 거래에서는 현지 수입자가 생산자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한국 기업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EU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면 한국 기업이 생산자에 해당할 수 있다. EU 내 지점을 두고 있더라도 별도의 법인격이 없다면 PPWR상 수입자나 유통업자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어, 자회사 설립 또는 공인대리인 지정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PPWR 대응은 친환경 포장재를 구매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기업이 EU 공급망에서 제조업체와 생산자, 수입자, 유통업자 가운데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파악하고, 적합성 선언과 기술문서 작성, 생산자 등록, 분담금 납부, 정보제공 의무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 계약 단계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 K-푸드에 새로운 비관세장벽 가능성

PPWR는 EU 역내 기업과 수입제품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법률상 차별은 없지만, 규제 변화에 대한 정보 접근성과 포장재 조달 기반, 시험·인증 인프라에서 역외 기업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가능성은 크다.

유럽 식품기업들은 입법 단계부터 규정의 변화를 지켜보며 포장 공급업체와 공동으로 대응해 왔고, EU 기준에 맞는 식품접촉 포장재와 재생원료, 재활용 설계 기술도 현지에 집중돼 있다.

반면 국내 중소 식품기업은 EU 수출 물량이 많지 않아 별도의 포장재를 개발하기 어렵고, 소량 주문을 받아줄 공급업체를 찾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포장 변경에 따른 금형과 인쇄판, 생산라인 조정, 유통기한 및 안전성 재검증 비용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이 포장재는 내용물보다 변경이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품의 품질과 직결된다. 라면과 스낵, 조미김, 소스처럼 산소와 수분 차단이 중요한 제품은 복합필름 의존도가 높고, 냉동·냉장식품은 운송 중 내구성과 온도 변화에 견딜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유리병이나 금속캔으로 대체하면 재활용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중량과 운송비, 탄소배출이 증가할 수 있으며, 종이 포장 역시 식품접촉 안전성과 차단성, 재활용 과정에서의 코팅 분리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결국 기업은 플라스틱을 종이로 바꾸는 식의 단순한 소재 대체가 아니라 제품 특성과 유통환경, 규제요건, 포장재의 실제 재활용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어느 소재가 친환경적인가보다 해당 제품에 필요한 기능을 유지하면서 EU의 순환경제 체계 안에서 회수·선별·재활용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 ‘2030년의 규제’를 지금 준비해야 하는 이유

PPWR의 주요 의무가 단계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은 기업에 준비 시간을 제공하지만, 대응을 미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포장재 한 종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소재를 탐색하고 공급업체를 선정한 뒤 시제품을 제작해 충전과 밀봉 적합성을 확인해야 하며, 제품의 안전성과 유통기한, 운송 안정성을 다시 검증해야 한다. 디자인과 라벨을 바꾸고 기존 포장재 재고를 소진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여러 국가에 같은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은 선택이 더욱 복잡하다. EU 전용 포장을 별도로 운영하면 생산과 재고 관리 비용이 늘어나고, 모든 수출제품을 PPWR 기준에 맞춰 통합하면 아직 동일한 규제가 없는 시장에서도 원가 상승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대기업은 시장별 포장 전략을 세울 수 있지만, 다품종 소량생산이 많은 중소기업은 포장 단순화와 공용화, 공동구매, 정부 지원과 같은 산업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

특히 포장 설계와 관련한 세부기준은 앞으로 위임법과 시행법, 기술표준을 통해 구체화될 예정이다. 기업은 최종 기준이 모두 확정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현재 사용 중인 포장재의 구성과 중량, 재활용성, 유해물질, 공급업체 정보를 먼저 데이터화하고, 규제 적용 시점과 교체 우선순위를 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PPWR의 대응 속도를 좌우하는 것은 규정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자사의 포장 정보를 얼마나 정확히 보유하고 있는가다. 필름 한 장에 어떤 수지와 접착제, 코팅제가 사용됐는지, 각 구성요소가 분리될 수 있는지, 공급업체가 적합성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다면 규제기준이 확정돼도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어렵다.

■ 포장은 더 이상 제품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PPWR가 K-푸드 업계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친환경 포장을 사용하라’는 데 있지 않다. 유럽이 요구하는 것은 제품을 만든 뒤 포장을 덧붙이는 기존의 개발 순서를 바꾸고, 처음부터 포장의 재활용성과 자원순환을 고려해 제품과 공급망을 통합 설계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K-푸드의 세계화는 한국적인 맛과 문화적 매력, 빠른 제품개발 능력을 앞세워 성장해 왔다. 그러나 시장이 성숙하고 각국의 환경·안전 규제가 촘촘해질수록 제품의 경쟁력만으로 수출을 확대하기는 어려워진다. 라면과 김, 소스, 음료가 현지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과 그 제품이 유럽의 시장 규칙을 충족해 계속 판매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PPWR는 포장을 비용으로 바라보던 기업과 이를 수출 인프라로 관리하는 기업의 격차를 빠르게 벌릴 가능성이 크다. 규제 시행 직전에 포장재를 교체하려는 기업은 공급처와 비용, 시험기간에 쫓기겠지만, 지금부터 제품별 포장 구조를 진단하고 포장재 업체 및 EU 바이어와 공동 대응에 나서는 기업은 규제를 시장 선점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유럽이 바꾸려는 것은 포장재 하나가 아니다. 자원을 사용하고 제품을 생산해 소비한 뒤 버리는 산업의 오래된 방식을 포장을 통해 다시 설계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K-푸드 기업이 준비해야 할 것도 새로운 소재 하나가 아니라 제품 개발과 조달, 생산, 수출, 회수를 연결하는 새로운 경영체계다.

맛보다 포장이 먼저 평가받는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