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낙삼 좋은상품연구소장
- 승인 2026.04.06 09:22
3월 중순, 차가운 비가 내리던 날 청와대 앞에서 울려 퍼진 한 양파 농민의 절규는 단순한 가격 하락을 넘어 우리 농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해 같은 시기 kg당 1,800원 수준이던 양파 도매가격이 불과 1년 만에 400원대로 추락했다. 비정상적인 상황이며, 농민들이 정부의 수급 정책 실패를 지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격 변동의 반복, 구조적 원인에 대한 재검토 필요
그러나 이 문제를 온전히 정책의 실패로만 돌리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이번 한 번의 문제가 아니라, 양파에만 국한된 현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의 급등과 폭락은 매년 품목을 달리하며 반복되는 ‘풍년의 역설’이다. 이는 시장 가격 신호에 따라 재배 면적이 급격히 출렁이는 구조적 문제의 결과다. 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해 온 것이 더 큰 문제다.
농산물 시장에서 높은 가격은 곧 생산 확대의 신호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 신호에 대한 대응은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통제되지 않는다.
가격이 오르면 재배 면적이 늘고, 결국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이른바 ‘널뛰기 재배’다. 물량 부족 시 즉각 가동되는 수입이나 저장 물량 출하 같은 대응 수단은 사실상 고려되지 않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올해 양파 가격이 재배면적과 생산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폭락한 원인을 정책 실패로 규정한다. 그러나 저장 물량의 누적, 출하 시기의 집중, 일부 수입 물량 증가 등 복합적인 요인을 함께 살펴야 한다.
수입 증가가 가격 하락을 가속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국내 생산 구조 자체가 가격 변동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지 수급조절 기능 미흡과 생산 의사결정 분산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산지의 수급 조절 기능이 사실상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양파생산자협회가 농협 중심의 계약재배를 30% 이상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지금까지 사전적 생산 조정 기능이 얼마나 미흡했는지를 보여준다.
협회 역시 전국 단위의 생산량 예측과 판매 연계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농가 단위의 산발적인 의사결정과 관리되지 않는 출하 구조로는 급변하는 시장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농업을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DX를 넘어 AX가 거론되는 시대다. 농업은 단순한 생산 활동이 아니라 고도의 경영 전략이 요구되는 산업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가격 하락 이후 정부의 수매와 시장 격리에 의존하는 사후 대응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방식은 단기적인 가격 방어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시장의 근본적인 수급 조절 기능을 왜곡하고 장기적으로는 경쟁력과 교섭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
사후 대응 중심에서 사전적 수급관리 체계로의 전환
필요한 것은 ‘사후 보전’이 아니라 ‘사전 관리’다. 산지 단위에서 재배 면적 상한을 설정하고, 품종과 출하 시기를 분산하는 계획 생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더불어 농협과 생산자 조직을 중심으로 가격 연동형 계약재배를 확대하고, 저장 물량을 사전에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리스크 관리 수단도 다양화해야 한다. 농업재해보험과 수입보장보험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지역 단위 공동 대응 체계를 통해 가격 변동성을 흡수해야 한다. 이는 개별 농가의 문제가 아니라 산지 조직 전체의 경영 역량과 직결되는 과제다.
물론 정부의 역할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는 시장에 개입해 모든 손실을 보전하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자생적인 위험 관리 체계가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지원하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농민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구호는 공감을 얻기 쉽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농가와 생산자 단체 역시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데이터와 전략을 기반으로 한 수급 관리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양파 가격 폭락은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생산 중심 농업’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경영 중심 산업’으로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공방이 아니라 구조의 전환이다.

■ 최낙삼 소장 프로필
- 좋은상품연구소 소장 - 한양대학교 경영컨설팅학과 박사 - 국가직무개발(NCS)전문위원 - 중소기업협회 1인창조기업 멘토(상품기획) - 강서시장 활성화 전문위원 - 어촌뉴딜300〮어촌신활력 사업단 전문위원(해양수산부)
<저서>
홈쇼핑으로 대박터뜨리기(2004/아라크네), MD,WHO&HOW (2008/커뮤니케이션북), 잘나가는 MD(2011/커뮤니케이션북), 아이엠MD(2013/책미래), 써먹는 MBA(2013/라온북), 저성장시대에 상품기획을 잘하는 10가지 방법(2017/새빛), CSV, 기업은 어떻게 공유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2017/커뮤니케이션북스), 대한민국 농가농촌을 위한 상품기획의 정석(2019/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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