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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우유 고난기”…유업계, 사업 다변화에 사활

곡산 2025. 4. 16. 19:56
“K-우유 고난기”…유업계, 사업 다변화에 사활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5.04.16 07:54

원유 생산량 증가 속 소비 감소에 멸균유 수입 급증…분유 재고 쌓여
서울우유, 유가공품 다양화…B2B 원료 사업
매일유업, 성인 영양식·식물성 음료 등 강화
빙그레, 건기식 확장…연세유업, 베이커리 성과
수급 불균형 해소 위한 낙농 개편 목소리 고조
 

국내 백색시유(우유) 시장이 수입 멸균유 급증과 소비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심각한 수급 불균형에 직면한 가운데 생존을 위해 유업계는 사업 다각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남아도는 국산 원유 처리 문제와 값싼 수입 멸균유의 공세 속에서 기존 우유 사업만으로는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원유 수급 상황은 심각하다. 유업계에 따르면 2024년 원유 생산량은 194만2000톤으로 전년 대비 소폭 증가(1만2000톤)한 반면, 같은 기간 음용유 소비량은 164만1000톤으로 오히려 4만9000톤이나 급감했다. 2025년 3월까지 생산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지만 수요는 줄어 원유가 남아도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멸균유 수입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멸균유 수입량은 4만8740톤으로 예상되며, 이는 전년 대비 30% 늘어난 수치다. 불과 4년 전인 2020년(1만1476톤)과 비교하면 4.2배나 급증했다. 특히 2026년 미국, 유럽산 멸균유의 관세 철폐가 예정돼 있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수입 멸균유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유업계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잉여 원유를 처리하고 있다. 유가공 업체들은 가격 인하 등 출혈 경쟁은 기본이고, 남는 원유는 분유로 만들어 보관하지만 이마저도 원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매각하며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 유가공 산업의 경영난이 심화되면 결국 낙농가에게까지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국내 주요 유업체들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A2+ 우유’와 같은 프리미엄 라인을 강화하고, 가공유, 요거트, 치즈 등 유가공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며 본업에 충실하는 한편 수익성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

지난 1월 말 서울우유에서 생산한 우유를 기본으로 병우유, 발효유, 소프트 아이스크림, 자연치즈 등을 판매하는 디저트 카페 사업 ‘밀크홀 1937’의 완전 철수를 발표했고, 본업인 흰우유와 유가공제품 개발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프리미엄 A2 우유를 앞세워 시장점유율을 방어하고, 생크림, 버터 등 B2B 원료 사업 외에도 자체 브랜드 아이스크림, RTD(Ready-to-Drink) 커피 등 소비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디저트 및 음료 제품군을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연세유업은 편의점 채널을 적극 활용한 베이커리·디저트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이를 확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기존 강점인 두유를 기반으로 한 아몬드 음료 등 식물성 음료 포트폴리오 다변화, 다양한 맛과 콘셉트의 RTD 음료 개발 등을 통해 사업 다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편의점 CU와 협업한 '연세우유 생크림빵'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베이커리·디저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업계 일각에서는 연세유업의 사업 다각화 행보와 맞물려 건강식품 전문기업 '이롬' 인수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롬은 '황성주 생식', 두유 등으로 유명한 건강기능식품 및 대체식 전문 기업으로 2023년 말부터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며 인수 후보를 물색하고 있다. 연세유업이 이롬을 인수하게 되면 이롬의 건강식품·대체식 전문성과 브랜드 인지도는 연세유업의 사업 다각화 전략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매일유업은 성인영양식 '셀렉스'와 식물성 음료 '어메이징 오트'를 필두로 건강기능식품과 식물성 음료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HMR(가정간편식) '상하키친', 디저트 '데르뜨' 등도 꾸준히 육성 중이다.

남양유업은 영유아식 구독 '케어비'와 발효유 '불가리스'의 기능성 강화 등 건강기능식품 분야에 집중하고 있으며, '프렌치카페', '초코에몽' 등 기존 음료 브랜드 경쟁력 강화도 병행하고 있다. 또 빙그레는 단백질 전문 브랜드 '더:단백'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비바시티', '기억력엔 Cogniva' 등 건강기능식품 라인업도 강화했다.

유업계의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현재의 심각한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원유 수요에 맞춰 공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낙농 제도를 개편하고, 정부가 생산자(낙농가), 수요자(유업계)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실질적인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업계 한 관계자는 “유가공 산업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 전체의 안정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