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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 ‘장유유서’ 유훈 남겼다지만…

곡산 2008. 10. 29. 15:42

‘화목’, ‘장유유서’ 유훈 남겼다지만…
[기획시리즈-②범두산家]"돈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다?"
2008년 10월 15일 (수) 08:59:37 이연춘 기자 lyc@newsprime.co.kr

[프라임경제] 112년의 역사를 지닌 두산그룹은 그간 ‘형제경영, 가족경영’의 대명사로 국내 굴지의 여타기업보다 두산가의 위계질서는 엄격하기로 유명했다. 이 같은 이면에는 두산그룹의 가풍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박승직 창업주는 ‘화목’을, 초대회장인 박두병 회장은 ‘장자를 중심으로 한 인화’라는 유훈을 남길 정도였다.

장유유서가 원칙이 철저하다는 것. 그래서였을까. 지난날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은 다른 그룹의 경영권 분쟁보다 상처가 깊었고 그간 고 박승직 창업주가 일궈냈던 그룹 이미지를 한순간에 깍아내리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은 말 그대로 형제간 경영권 다툼에 빚어졌다.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두산 오너의 가풍이 경영권 다툼으로 번지면서 ‘돈 앞에 추한 꼴(?)’을 세간에 보이고 말았다.

두산그룹은 창업주 고 박승직 회장, 고 박두병 회장에 이어 박용곤(1981~91년, 1993~96년), 박용오(1996~2005년 7월) 회장 그리고 박용성 회장 등 형제들이 나란히 그룹 경영권을 승계 받았다.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은 2005년 7월, 말 그대로 형제간 경영권 다툼에 빚어졌다.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두산 오너의 가풍이 경영권 다툼으로 번지면서 파장은 확산됐다.

박용성 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채 5일도 안 돼 추악한(?) 모습으로 변한 건 결국 재산싸움에 기인한다. 박용오 회장이 1년 전부터 ‘두산산업개발을 계열 분리해 나에게 달라’고 주장하면서부터다. 당시 두산그룹이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을 신임 그룹회장으로 선임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박용오 전 회장이 “박용성 회장을 비롯한 두산그룹 일가가 17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이중 일부를 해외로 빼돌렸으며 비자금 조성 사실을 숨기기 위해 나를 그룹 회장직에서 내쳤다”고 주장하며 불거졌다.

하지만 두산산업개발 경영권을 장악한다는 것은 두산그룹을 사실상 차지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박용오 회장의 주장은 가족회의에서 거절당했다. 그러자 박용오 명예회장은 “박용성 회장의 그룹 회장 승계는 원천 무효”라며 전면전을 선언했다. 결국 두산의 형제간 분쟁은 고 박두병 회장의 형제 중 ‘박용오’ VS ‘박용곤-박용성-박용만’ 형제간 싸움으로 비화됐다.

두산측은 즉각 박용오 전 회장의 진정 내용을 반박함과 동시에 그룹과 가문에서 그를 제명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이후 계속되는 검찰조사과정에서 두산가의 형제들은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폭로전 일색으로 치달았고 그 과장이 낱낱이 알려지게 됐다.

두산가 형제의 난은 서울중앙지법이 두산그룹 형제 중 용오·용성·용만·용구 등 4명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마무리됐다.

이후 두산家 형제들은 경영 일선에서 한발짝 물러났지만 이마저도 잠시 숨고르기 일뿐이었다. 이는 또다시 지난날 페놀 사태의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1991년 페놀 사태로 벼랑 끝에 내몰리자 두산일가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됐고, 위기에서 벗어나자 두산일가가 다시 그룹을 장악한 바 있기 때문이다. 현재 두산가문 3세들의 경영권 복귀는 페놀 사태 당시 위기 극복 시나리오와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게 재계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두산 오너일가의 경영 복귀는 이미 궤도에 오른 중이다. 4남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과 5남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 각각 선임되는 등 그룹 핵심 계열사를 장악했다. 두산그룹은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을 필두로 ▲3남인 박용성 전 회장-두산중공업 ▲4남 박용현 이사장-두산건설 ▲5남 박용만 회장-두산인프라코어 등의 구도로 굳어지고 있다.

한편 ‘형제의 난’을 촉발시켰던 박용오 전 회장은 두산그룹과 또다시 ‘소리없는 한판 전쟁’를 벌일 조짐이다. 박 전 회장은 올초 도급순위 55위인 중견건설업체 성지건설을 인수하며 ‘형제의 난’ 이후 2년7개월만의 경영 복귀를 했기 때문.

게다가 박 전 회장은 아들인 박경원, 박중원 형제도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 때문인지 업계 일각에서는 성지건설을 통해 두산그룹에서 퇴출된 박 전 회장의 일가가 재계 부활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두산그룹 한 관계자는 “현재 형제간의 왕래가 있는지도 알수 없지만 이미 박용오 전 회장 일가는 두산그룹에선 지분도 없을 뿐만 아니라 특수관계인도 아니다”고 전했다.

한편 두산그룹은 지난날 ‘형제의 난’으로 깊어진 감정의 골이 3세에서 4세로 이어지는 자녀들 세대에서 다시 불거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는 관측도 있다. 이 때문에 향후 두산그룹이 어떤 식으로 경영권 승계를 이뤄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