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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집중탐구]박재완 의원, 학문적 이론 탄탄한 현장주의자

곡산 2008. 2. 14. 20:02

[인물 집중탐구]박재완 의원, 학문적 이론 탄탄한 현장주의자

2008 02/19   뉴스메이커 762호

사전준비 철저하고 조정능력 탁월… 새 정부 조직개편에 자신의 철학 담아


“청와대 수석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를 뽑아라. 경륜 있는 중량급과 젊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포함시켜라.”
청와대 수석 인선과 관련해 흘러나온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이다. 이 당선인의 인사는 신중하다 못해 더디다. 청와대 수석 인선 역시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인수위 정부혁신·규제개혁 TF팀장인 박재완 의원(한나라당·당대표 비서실장)은 이미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으로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 당선인은 박재완 의원이 만든 정부조직 법안에 대해 “잘됐다’고 치하했다. 이 당선인의 한 측근은 “이 당선인은 좀처럼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면서 “공개적 칭찬을 들어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청탄핵열풍 속 전국구 9번으로 등장
칭찬도 칭찬이지만 더 놀랄 만한 사실은 이 당선인과 박재완 팀장의 관계는 ‘스쳐 지나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당선인의 한 측근은 “내가 알기로 특별한 인연은 없다”면서 “이 당선인이 경선 과정 등에서 대표 비서실장으로서 박재완 의원의 일처리 과정과 능력을 눈여겨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강재섭 대표와도 정치적 인연은 전혀 없었다. 김외철 대표비서실 보좌역은 “주변 인사들의 추천이 비서실장 발탁에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국회 입성도 그렇다. 탄핵열풍 속에서 휘청이던 한나라당의 외부 영입 케이스로 전국구 9번을 배정받았다.

그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 데는 무엇이 되려는 그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라기보다 그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게 더 옳은 말이다. 같은 당의 김양수 의원은 “워낙 실력 있고 내공이 깊어서…”라면서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어할 만한 분”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가 얻은 자리들은 재수 좋게 당첨된 로또복권이 아니다. 상사의 심중을 정확히 읽어내고 보조를 맞추는 자세, 가능한 모든 변수를 고려한 ‘끊임없는 준비’, 정치적 욕심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 뛰어난 학식과 이론적 토대 덕분이다. 이 같은 장점의 근원이 그의 성실성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지인은 없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박재완 의원실 명의로 나간 보도자료는 2006년에 120건, 2007년에 95건이었다. 17대 국회의원 중 단연 최고 수준이다. 이들 자료가 단지 이름을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정부기관이 인정한다.

그는 지난 1월에 식품의약품청, 지난해 12월에 경남경찰청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식품의약품청으로부터는 가짜담배, 녹용밀수, 중국산 찐쌀 수입, 불량 깡통 쇠고기 등의 생산·유통 과정에 대한 실태조사에 대한 성과를, 경남경찰청으로부터는 공·사문서 위조자 340명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박재완 의원실의 이강원 보좌관 은 “정부기관으로부터 의정활동과 관련해서 표창받는 일은 흔하지 않다”면서 “현장주의를 중시하는 박재완 의원의 의정 태도, 이슈를 잡으면 2~3년 물고 늘어지는 근성을 반영하는 예”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방 비서진이 나를 ‘경찰강력반’이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박재완 의원 방에는 다른 방에서 볼 수 없는 ‘가구’가 하나 있다. 이동용 침대다. 이강원 보좌관은 “학자들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시간과 싸움이 아니겠느냐”면서 “대학교수 시절처럼 지금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밤샘작업을 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장주의는 곧 행동주의의 한 갈래다. 박재완 의원의 행동주의를 잘 보여준 사례가 있다. 지난해 그가 모시는 강재섭 대표의 딸 결혼식에서 있었던 일. 한 TV 뉴스 프로그램에서 유명인 하객들을 스케치하고 있는 것을 본 박재완 의원은 “박 의원이 저런 면이 있었나”라고 깜짝 놀랄 정도로 격렬하게 항의했다. 대표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박재완 실장이 마치 국회의원 보좌관같이 싸웠다”라면서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면 물불을 안 가린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그의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23년 동안 나라와 독지가의 도움으로 살았다”라면서 “조금이라도 그 빚을 갚기 위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평생 잊지 못하는 사건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그는 학질에 걸렸다. 이불에 둘러싸인 채 아버지의 등에 업혀 등교했다. 그날이 마침 누나의 결혼식날이었고 선친은 결혼식에 늦었다. 이 기억은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그가 부산고, 서울대 경제학과, 하버드대 정책학박사 등 학업에 정진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대학 재학 시절, 그 역시 시대상황에 대한 고민을 행동으로 옮겼다. 유신반대투쟁으로 1974년 11월(명동성당 구국성명서 작성·배포)과 1975년 4월(서울대 4·3가두시위·민청학년 1주년 ‘기념’ 집회) 두 차례 수감생활을 했다.

유신 반대투쟁으로 두 차례 옥고
자리에 불려다니는 사람은 한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법일까. 박재완 의원이 그랬다. 그는 “내가 말띠라서 그런지 역마살(煞)이 낀 듯하다”고 말한다. 그는 당초 국가공무원을 원했다. 행정고시도 통과했다. 수습사무관으로 경남도청과 창원군청에서도 근무했다. 총무처·국가안정보장회의를 거쳐 감사원에 파견된 상황에서 도미,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고 재무부를 거쳐 성균관대학(행정학과 교수)에서 재직했다. 국회의원이 무려 일곱 번째 ‘직장’이다.

학문적 성과도 적지 않다. 그는 행정학에서 전도가 양양한 학자였다. 그는 특히 대통령직 인수·인계와 관련한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이 경력이 이명박 당선인의 눈에 띈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2년 12월에 쓴 ‘대통령직 인수·인계에 관한 제도화연구’라는 저서는 사실상 인수위 업무에 관한 한국 최초의 연구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학계의 평가다. 그만큼 체계적이고 논거가 분명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정권의 인수·인계의 한 부분이 정부 조직 개편이다. 박재완 의원이 만든 정부조직법은 한마디로 ‘대부처주의’와 ‘대국(大局)주의’에 기초한다. ‘요즘과 같은 지식융합시대에서는 국가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기능과 경계를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는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의 업무 중복과 비능률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제 그의 철학이 국민의 검증을 받을 차례다.

조직은 만들어지는 순간 영속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것을 경영학에서는 ‘고잉 온 시어리(Going on theory)’라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고 항변하고 있다. 참여정부 조직의 틀을 짠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재완 의원에게 “공부 좀 더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정부조직법의 국회처리 과정과 함께 박재완 의원이 주목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