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분석,동향

‘교실 우유’의 종말…유업계 경쟁 구도 바꿀 학교 ‘농식품 바우처’

곡산 2026. 1. 20. 16:56
‘교실 우유’의 종말…유업계 경쟁 구도 바꿀 학교 ‘농식품 바우처’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6.01.20 07:57

학생들 결제 품목, 가공유 뺀 국산 흰 우유로 한정…무관세 수입산도 견제
서울우유 ‘A2+’ 라인 앞세워 프리미엄화 집중
연세우유, 품질 인지도 활용 학부모 선택 유도
빙그레·남양유업, 가공유 탈피 흰 우유 강화 과제
매일유업, 사업 다각화로 급식 시장 의존도 낮춰
 

1981년 전면 시행 이후 국내 낙농 산업의 거대한 버팀목이자 청소년 영양 공급의 핵심축이었던 ‘학교 우유 현물 급식’이 45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공급자가 일괄 배달하던 시대가 저물고, 수혜자가 직접 제품을 선택하는 ‘우유 바우처’ 체제가 2026년 농식품 바우처 본사업 통합과 맞물려 전면화되면서 유업계의 생존 방정식도 요동치고 있다.

 

과거 아침마다 우유 박스가 교실 앞에 놓이던 풍경이 사라지게 된 배경에는 복합적인 구조적 결함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 교육 현장에서는 영양교사를 포함한 인력들이 매일 우유 수량을 확인하고 정산하는 행정 업무가 본연의 교육 업무를 방해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으며, 실제로 현장의 과도한 행정 부담 호소는 제도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해 왔다.

 

또한 무상 우유 급식 대상자인 취약계층 학생들이 반 친구들 앞에서 우유를 수령하는 방식은 자신이 저소득층임을 노출하는 ‘낙인 효과(Stigma Effect)’를 유발해 급식 신청을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여기에 흰 우유 중심의 일괄 공급이 학생들의 입맛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급식률은 2010년대 초반 50% 안팎에서 2023년 33.9%까지 급감했다. 마시지 않은 흰 우유가 방치돼 상하거나 버려지는 등 위생 관리와 자원 낭비, 맛에 대한 불만족이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학교 우유 현물 급식이 행정 부담과 낙인 효과 등 구조적 한계로 막을 내리고, 2026년부터 취약계층 학생 대상의 ‘농식품 바우처’ 직접 구매 방식으로 전면 전환된다. 바우처 결제 품목이 ‘국산 흰 우유’로 한정됨에 따라 가공유로 쏠린 청소년 입맛을 돌려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특히 2026년 유제품 무관세 시장 개방과 맞물려 유업체들은 국산 흰 우유의 품질과 기능성으로 소비자의 자발적 선택을 이끌어내야 하는 치열한 ‘브랜드 경쟁 시대’를 맞이할 전망이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우유 바우처 제도는 지난 2016년부터 유업계를 괴롭혀온 ‘최저가 입찰제’의 폐해를 해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투명성 제고를 명목으로 도입된 입찰제 하에서 유업체들은 생산 조절이 어려운 원유의 특성상 손해를 보더라도 물량을 밀어내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정부 권장 가격이 200ml 기준 약 430원(생산원가 360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낙찰가는 생산 원가인 360원을 크게 밑도는 150~180원대까지 추락했으며, 심지어 200원 이하의 초저가 낙찰 사례도 빈번했다. 하락률이 50%를 상회하는 이 같은 덤핑 구조는 유업체의 경영 악화는 물론 도서 산간 지역의 급식 중단을 야기하는 등 시장 실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바우처 체제에서는 학생들이 월 1만5000원의 지원금으로 소매가에 제품을 직접 구매함에 따라 유업체들은 적자투성이였던 B2B 계약에서 벗어나 마진 정상화의 길을 걷게 됐다.

 

가격 구조는 정상화됐으나 유업계의 고민은 여전히 깊다. 강제 급식이 사라지자 학생들이 흰 우유를 외면하고 가공유로 쏠리는 ‘흰 우유 절벽’ 현상이 수치로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 업계 데이터에 따르면 청소년층의 유제품 매출 중 가공유 비중은 이미 80%를 넘어선 상태다.

 

이에 정부는 국산 낙농 기반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이번 바우처 결제에 국산 원유를 100% 사용한 우유류(흰우유, 혹은 국산 원유를 99% 사용하고, 단백질 등 영양성분 첨가한 우유) 제품만 허용하는 고육지책을 내놨다. 수입산 탈지분유를 사용하는 저가 제품의 무분별한 시장 침투를 막는 ‘최후의 방어선’인 셈이다.

 

2026년 전국 확대를 앞둔 ‘농식품 바우처’ 통합 체계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구매 가능 품목의 엄격한 제한이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시행된 기존 우유 바우처 시범사업에서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고려해 국산 원유 함량이 50% 이상인 가공유와 발효유, 치즈 등이 폭넓게 허용됐다. 당시 편의점 채널 내 가공유 매출 비중이 80%를 상회할 정도로 학생들의 가공유 선호도는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2026년 사업비 예산이 1544억 원 규모로 대폭 증액되는 본사업 단계에서는 품목이 국산 흰 우유로 한정된다. 이는 영양 불균형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 당류 섭취를 제한해 청소년기 기초 영양 공급이라는 정책적 목적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이에 따라 시범사업 당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초코·딸기우유 등 가공유와 요거트 등은 바우처 결제 품목에서 제외되며, 신선한 국산 흰 우유 소비를 촉진하는 ‘영양 넛지(Nudge)’ 정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바우처 품목이 흰 우유로 한정됨에 따라 유업체들의 생존 전략도 흰 우유의 질적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특히 2026년 미국과 EU산 유제품 무관세화 본격 진입에 대비해 유업체들은 수입 멸균유와 차별화되는 신선함과 기능성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업계 1위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약 80억 원을 투자해 구축한 ‘A2+ 우유’ 생산 라인을 앞세워 흰 우유의 프리미엄화에 집중하고 있다. 소화 불편감을 줄인 기능성 제품으로 출시 5개월 만에 2000만 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긍정적인 시장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학교 급식 전용 소용량 팩을 통해 바우처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연세우유는 전용 목장이라는 품질 관리 키워드를 바탕으로 마켓컬리 등 유통 채널에서 쌓은 인지도를 활용해 학부모들의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

 

가공유 부문에서 강점을 보였던 빙그레와 남양유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는 원유 함량이 85%에 달해 시범사업 당시 유리한 고지를 점했으나, 흰 우유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장에 맞춰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양유업 역시 과거 원유 함량 이슈가 있었던 초코에몽 등 가공유 중심 라인업에서 벗어나 흰 우유 제품군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편 매일유업은 성인용 단백질 음료나 가정 간편식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며 급식 시장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적 선택을 내렸다.

 

2026년은 학교 우유 급식 역사에 있어 완전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학교 우유 급식의 변화는 덤핑이라는 족쇄를 풀었지만,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제품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냉혹한 경쟁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유업계 관계자는 “바우처 전환으로 덤핑 족쇄는 풀렸지만, 이제는 수입 멸균유와 경쟁하며 학생들의 자발적 선택을 받아야 하는 더 냉혹한 ‘브랜드 경쟁’의 시대가 열렸다”며 “국산 원유의 신선함과 프리미엄 가치를 소비 데이터로 증명하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