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서영 기자
- 승인 2026.01.28 07:53
베이커리 등 B2B 시장 폴란드 멸균 제품 강세
서울우유 A2우유로 승부…수출 13개국 확대
매일·남양유업 ‘탈우유’…단백질 음료 등 육성
2026년 1월을 기점으로 국내 유업계가 유례없는 ‘거대 개방’의 파고를 맞이하고 있다. 한·미,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올해부터 미국산 멸균우유의 관세가 0%로 사라졌고, 유럽산 역시 관세율이 2.5% 이하로 낮아지며 사실상 ‘관세 제로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달부터 미국·유럽산 유제품에 대한 관세가 사실상 사라진 가운데 당초 우려했던 수입 우유 공습은 예상보다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록적 고환율과 무역 불확실성 등이 관세 철폐에 따른 가격 하락분을 상쇄하면서 가격 인하 충격이 크지 않아서다. 유업계는 당장 큰 고비는 넘겼다는 반응이지만, 저출산과 우유 소비 감소라는 근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환율이라는 ‘일시적 방패’가 가격 하락의 파고를 막아내고 있는 사이, 수입 우유의 공습 방식은 단순히 ‘가격’에 머물지 않고 ‘질적 진화’를 거듭하며 국내 시장의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 과거 해외 우유가 주로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가성비 멸균유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A2 단백질’, ‘그래스페드(목초 사육)’, ‘유기농’ 등 고부가가치 기능을 내세운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국내 안방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해외 프리미엄 제품의 선두 주자는 호주·뉴질랜드의 ‘a2 밀크’다. 모유와 유사한 A2 단백질 100%를 강조하며 ‘배 안 아픈 우유’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여기에 덴마크의 ‘알라 오가닉(Arla Organic)’은 세계 최대 유기농 협동조합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동물복지와 탄소중립 가치를 내세워 국내 고소득층 소비자들을 공략 중이다. 독일의 ‘올덴버거’ 역시 높은 유지방 함량과 깊은 풍미를 앞세워 홈카페족과 미식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 시장의 하단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가성비 제품들이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다. 폴란드의 바르트밀크(Wart-Milk)가 선보인 ‘뮤(Mu!)’와 ‘매도우스타’는 리터당 1300~1600원대라는 압도적인 가격을 무기로 삼는다. 이는 국산 일반 우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가격 민감도가 높은 소비층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현재 국내 우유 시장은 B2B(기업 간 거래)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양대 채널에서 동시에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이른바 ‘소비 양극화’ 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해지고 있다.
우선 B2B 시장의 지형도는 이미 수입산 위주로 재편된 모양새다. 원가 절감이 곧 생존과 직결되는 개인 카페와 베이커리 업계에서는 국산 우유 대신 수입 멸균우유를 선택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특히 가성비를 앞세운 폴란드산 멸균우유의 공세가 거세다. 실제로 2026년 현재 국내 외식업계에서 폴란드산 멸균우유의 점유율은 55%를 상회하며 국산 우유를 앞지르는 기염을 토했다.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한 해외 저가 제품이 카페 라떼나 제과·제빵용 원료 시장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셈이다.
가정용 시장인 B2C 분야에서는 소비자들의 취향이 세분화되는 ‘초개인화’ 트렌드가 강화되고 있다. 저출생 여파로 일반적인 흰 우유 소비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나, 특정 목적을 가진 기능성 제품군은 오히려 견고한 성장세를 보인다. 자녀를 둔 부모들은 다소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위해 A2 우유나 유기농 제품을 선택하는 가치 소비에 주저함이 없다. 반면 성인층에서는 소화의 편의성이나 식단 관리를 고려해 저지방 및 락토프리 우유를 맞춤형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결국 작금의 국내 우유 시장은 폴란드산 제품을 필두로 한 ‘극한의 가성비’와 A2·유기농으로 대변되는 ‘프리미엄 건강 자산’으로 소비가 양분되고 있다. “가장 싼 우유를 사거나, 아니면 가장 좋은 우유를 산다”는 이 같은 소비 양극화는 향후 국내 유업계가 풀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시장 구조의 변화로 분석된다.
거센 공습 속에서 국내 유업계는 수입산이 따라올 수 없는 ‘본질적 가치’와 ‘사업 다각화’를 통해 필사적인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 국내 유업계 빅3는 다음의 세 가지 방향으로 생존 로드맵을 가동 중이다.
첫째는 ‘본질의 진화’다. 서울우유는 5년간 80억 원을 투자해 개발한 ‘A2+ 우유’를 필두로, 전 제품의 A2 전환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수입 멸균유의 물량 공세에 맞서 ‘신선한 국산 A2 우유’라는 독보적 품질로 세대교체를 선언한 것이다. 이를 통해 수입산에 밀린 주도권을 되찾고 누적 판매 1억 개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둘째는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한 ‘탈(脫)우유’ 전략이다.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은 흰 우유 소비 감소에 대응해 단백질 음료(셀렉스 등)와 식물성 대체유(오트·아몬드) 시장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특히 고령화 시대에 맞춘 성인 영양식과 특수의료용 식품 시장을 선점해 수익성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셋째는 ‘글로벌 영토 확장’이다. 좁아진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업계는 2026년 수출 목표액을 전년 대비 20% 상향 조정하며 해외 현지 맞춤형 공세를 펼치고 있다.
특히 업계 1위 서울우유는 중국, 미국, 베트남, 필리핀 등 전 세계 13개국으로 수출 전선을 넓히며 작년 전년 대비 30% 성장이라는 공격적인 목표를 세웠다. 과거 중국 중심의 전략에서 벗어나 미국 시장에서는 '크림도넛'을 새로운 수출 효자로 키워냈고, 베트남에서는 '앙팡 유기농 아기치즈'로 현지 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등 품목 다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서울우유는 향후 비요뜨, 커피포리 등의 추가 수출과 유통 조직 재편을 통해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남양유업은 베트남 푸타이 그룹과 손잡고 현지 중상류층을 겨냥한 프리미엄 분유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매일유업은 중국 내 ‘아인슈타인’ 분유의 입지를 다지는 동시에 단백질 영양식 ‘셀렉스’를 앞세워 중·일 고부가가치 시니어 영양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환율과 물류비가 일시적인 방패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무관세라는 근본적인 환경 변화는 피할 수 없다”며 “국내 유업계가 단순한 흰 우유 제조사를 넘어 건강기능식품과 기능성 유제품 전문 기업으로 변모해야만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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