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천장에 채소밭이 펼쳐져 있다. 고개를 들고 감탄하며 방 안을 배회하다 뭔가에 툭 하고 부딪힌다. 내려보자마자 사람 얼굴이 보여 소리를 꽥 질렀다. 귀신인가 했더니 거울에 비친 기자의 얼굴이다. 민망함에 피식 웃고 제대로 보니 거울 효과를 내는 거대한 회의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테이블 덕에 천장의 채소밭이 지상에도 펼쳐져 있는 듯 보였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한 기분을 선사하는 이곳은 설치미술가 한석현 작가가 제작한 방 `?밭(Wit Field)`이다. ?밭은 `위트(Wit) 있는 아이디어가 샘솟는 밭`의 줄임말이다.
?밭 방에서 빠져나와 발걸음을 옮기니 수영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이 튀어나온다. 김무준 작가가 설치한 `Pool(풀)` 방이다. 방 안 곳곳에 놓인 투명한 의자와 테이블이 아니었다면 진짜 수영장으로 깜빡 속을 뻔했다. 김 작가는 이 공간이 아이디어 `풀`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하나의 방이 그 자체로 작품이 되는 곳이 있다. 6명의 미술 작가가 방을 하나씩 맡아 작품으로 꾸며냈다. 도대체 이 `방 갤러리`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이 틀렸다. 이곳은 갤러리가 아니다. 식품기업 샘표의 `발효전문연구소`의 모습이다. 최근 수년간 식품회사의 중앙연구소를 갤러리처럼 바꾼 기업이 많아졌다. 연구소가 창조의 공간인 만큼 예술의 힘을 빌려 차별화를 꾀한다는 취지에서다. 연구원들이 창의력을 발휘하거나 영감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공간 자체를 독특하게 디자인했다. 기자가 방문한 충청북도 청주시 오송에 설립된 샘표 발효전문연구소도 그 가운데 한 곳이다. 샘표는 6개 회의실을 설치 작가와 미술가에게 맡겨 설계했다. 55m의 긴 복도를 캔버스 삼은 벽화도 의뢰했다. 가령 김보민 화가는 미생물에 의한 발효과정을 의인화하고 이를 동양화 형식에 대입해 두루마리 모양의 벽화를 선보였다.
갤러리형 연구소 덕분에 각종 히트상품이 탄생했다는 게 샘표 측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재탄생한 제품이 바로 요리에센스 `연두`다. 이성재 샘표 연구원은 "틀에 박힌 공간에서 벗어나니 다양한 아이디어가 샘솟는 듯했다"며 "히트상품인 연두 외에도 벽화를 바라보고 백일된장, 시골집토장 등의 상품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제과업체 크라운해태의 중앙연구소도 갤러리 형태를 갖췄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한 이 연구소에는 조각과 그림이 100여 개나 전시돼 있다. 우선 연구소 입구에 설치된 키네틱 아트는 유명 작가 팀 프린티스가 설치했다. 작품명은 `식스 바시 식스`다. 기하학적으로 연결된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조각이 자연 바람에 의해 춤추듯 움직이는 게 특징이다. 크라운해태 관계자는 "바람의 불규칙성이 만드는 다양한 이미지가 감상하는 이들로 하여금 영감을 준다"고 평가했다. 이응노 작가의 작품 `인간군상`도 크라운해태의 중앙연구소에 자리해 있다. 인간군상은 문자 추상 시리즈에 표현된 인간의 모습을 독특한 패턴으로 나타낸 게 매력적이다. 사람의 형상들이 화면 전체를 뒤덮어 거대한 축제가 벌어진 듯 흥겨운 느낌을 준다. 이뿐만 아니라 해태제과는 대구공장에 조각 작품 100여 개를 전시해뒀다.
CJ제일제당의 핵심 연구소 `CJ블로썸파크`에도 눈길을 끄는 공간이 자리한다. CJ블로썸파크는 식품, 소재, 바이오 등 CJ제일제당 각 사업 부문의 연구개발 역량을 한데 모은 곳으로 약 600명의 전문 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연구원들이 사색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원터 가든`과 `워터 가든`이란 공간을 마련했다. 원터 가든은 사계절 내내 일정한 환경을 유지해 산소를 발생하는 식물이 자랄 수 있게 한 공간이다. 건물 위로 높이 솟구친 녹색 벽이 마치 잭과 콩나무의 거대 나무를 연상시킨다. 반면 워터가든은 일종의 백색 소음인 물소리를 언제나 들을 수 있게 설치됐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건물 내부에도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게 하는 대형 아트리움(Artrium)을 구축하고 캡슐형 휴게실, 게임실 등 이색적 공간을 설치했다"며 "임직원들이 놀이와 휴식을 겸하며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