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
◆ 생애
윤석금은 웅진그룹 회장이다. 웅진그룹은 한때 30대그룹으로 성장했으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주요계열사를 매각하고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1945년 12월20일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건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입사 1년 만에 세계 54개국 영업사원 가운데 가장 많은 판매실적을 올렸다. 8년 뒤 브리태니커 한국지사 사업국 상무를 맡았다.
직원 7명과 자본금 7천만 원으로 웅진씽크빅의 전신인 '헤임인터내셔널'을 세우고 학습교재와 도서를 만들었다. 특히 이 해 시행된 과외금지법에서 힌트를 얻어 과외강사들의 수업내용을 녹음해 학습테이프로 판매해 성공을 거뒀다.
출판사업을 발판삼아 신규사업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동일삼업을 인수해 웅진식품으로 회사 이름을 바꿨고 고유음료제품을 출시하면서 성장했다.
코리아나화장품을 설립해 화장품사업에도 진출했다가 금융위기에 직면하자 회사를 매각했다. 정수기회사인 웅진코웨이를 설립했고 ‘정수기 렌탈서비스’와 ‘방문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30대 재벌에 진입했으나 건설과 화학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다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웅진코웨이와 웅진케미칼, 웅진식품 등 핵심 계열사를 매각해 1년 만에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윤석금은 법정관리에 따른 채무를 조기에 완납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웅진씽크빅, 웅진에너지, 웅진홀딩스 등의 경영정상화에 힘쓰고 있다. 또 화장품 방문판매사업에 진출하고 정수기렌탈사업을 준비하는 등 새로운 사업을 통해 그룹의 재기를 시도하고 있다.
◆ 경영활동의 공과
△화장품회사 ‘웅진릴리에뜨’ 설립 윤석금은 2016년 1월 자본금 100억 원을 들여 화장품회사 ‘웅진릴리에뜨’를 설립했고 5월 첫 상품을 출시했다.
웅진릴리에뜨는 ‘온라인 방문판매’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구매자가 물건을 살 때 추천인을 입력하며 추천인에게 보상이 이뤄지는 네트워크마케팅 방식의 구조다. 윤석금은 “온라인판매와 방문판매, 네트워크(다단계)판매, 바이럴마케팅 등 판매에 관한 4가지를 모두 접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금은 판매원 확대를 위해 직접 사업자설명회에 나서고 있다. 웅진릴리에뜨는 1만 명에 이르는 판매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금은 1988년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과 함께 ‘코리아나화장품’을 창업해 화장품 방문판매를 통해 화장품업계 2위에 올린 경험이 있는데 같은 방문판매 방식으로 웅진릴리에뜨를 키우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무리한 사업확대 윤석금은 생활가전과 음료에서 성공한 뒤 전혀 낯선 분야에 도전했다.
2007년 6600억 원에 극동건설을 인수하며 건설업에 진출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건설업계에 불황이 계속되면서 극동건설은 재정난이 가중됐다. 주위에서 극동건설을 포기하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오히려 경영정상화를 위해 4400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추가로 지원했고 결국 회생에 실패했다.
금융계 진출을 목표로 2010년 서울저축은행도 사들였다. 윤석금은 극동건설과 서울저축은행을 사들여 한 때 웅진그룹을 재계서열 31위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저축은행도 건설업계 불황에 따른 건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부실의 직격탄을 맞으며 경영난을 겪었다. 윤석금은 서울저축은행에 사재까지 털어 넣으며 인수자금을 포함해 총 2800억 원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성장동력으로 야심차게 추진했던 태양광사업도 2012년 웅진에너지가 적자로 전환하면서 어려움에 빠졌다.
웅진그룹은 결국 2012년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정수기사업 진출 1989년 웅진코웨이의 전신인 한국코웨이를 설립하며 정수기 사업에 진출했다.
웅진코웨이는 외환위기로 설립된 지 불과 8년 만에 외환위기를 맞아 시련을 겪었다. 1997년 웅진코웨이는 330억 원의 매출을 냈지만 영업손실 11억 원을 내며 적자기업이 됐다.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돼 당시 대당 100만 원을 호가하던 정수기를 사겠다는 소비자는 거의 없었다.
윤석금은 “어차피 팔리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빌려주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렌털에 착안했다. 합리적 가격을 앞세워 그동안 높은 가격 때문에 정수기 구입을 주저했던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다. 웅진코웨이는 정수기 렌탈사업을 시작한지 1년 만에 10만 대의 렌탈 정수기를 팔았다.
렌탈사업은 위기에 빠진 웅진코웨이를 구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렌탈사업을 시작한 1998년 코웨이는 영업이익 30억 원을 내며 단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영업이익은 1999년에 64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2012년 극동건설 부도에서 비롯된 웅진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웅진코웨이는 2013년 1월 사모펀드 MBK파트너에 1조2천억 원에 매각됐다. 코웨이는 매각된 지 3년여 만에 기업가치가 3조 원까지 올랐다.
웅진그룹은 웅진코웨이를 MBK파트너스에 매각하면서 합의한 '5년 겸업금지' 조항으로 인해 2018년 1월까지 국내에서 정수기 사업을 펼칠 수 없다.
△식품사업 진출 1987년 동일산업을 인수하며 식품사업에 진출했다. 동일산업은 1년 뒤 상호가 웅진인삼으로, 1996년에는 웅진식품으로 바뀌었다.
1995년 외국계 탄산음료와 과즙주스가 음료 시장을 점령하던 시절 인삼 달이는 기술을 이용해 ‘가을대추’라는 음료를 시장에 내놓았다. 1996년 ‘아침햇살’ 1999년 ‘초록매실’ 등 잇따라 히트상품을 생산하며 국내 음료 시장에서 빅3에 들게 됐다. 탄산음료가 아닌 쌀, 보리차 등 전통적인 음료 위주의 히트상품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웅진식품은 1999년 누적적자 450억 원, 부채 700억 원에서 2002년 매출 2600억 원대에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2012년 극동건설 부도에서 비롯된 유동성 위기로 웅진식품은 2013년 9월 한앤컴퍼니에 1150억 원에 매각됐다.
△헤임인터네셔널 설립 윤석금이 1980년 웅진씽크빅의 전신인 헤임인터네셔널을 설립했다.
당시 출판업계로선 처음으로 ‘교육 출판물은 여성이 판매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데 착안해 고학력 여성 인력을 전문 판매인으로 육성했다.
헤임인터네셜은 당시 ‘과외 금지법’과 맞물려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과외강사들을 계약을 맺고 ‘헤임고교학습’을 만든 것이다. 이어 ‘어린이 마을 전집’을 만들어 700만 권을 판매하면서 출판업계의 성공신화를 썼다.
| | | ▲ 웅진 실적. |
◆ 비전과 과제
윤석금은 정수기 렌탈과 태양광사업 등에서 웅진그룹 재건의 발판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웅진그룹은 2013년 웅진코웨이를 매각할 당시 ‘5년 겸업금지’ 조항을 수용했는데 이에 따라 2018년 1월까지는 국내에서 정수기 렌탈사업을 할 수 없어 먼저 해외시장을 발판으로 삼았다.
웅진그룹은 2015년 6월 웅진에버스카이를 만들고 최근 터키에 ‘에버스카이’라는 현지 법인을 설립해 한국형 정수기 렌탈사업을 시작했다. 웅진에버스카이를 통해 해외에서 정수기 렌탈사업의 역량을 키우면 국내에서도 정수기 렌탈사업에 뛰어들 것으로 업계는 본다.
윤석금은 웅진에너지를 통해 태양광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웅진에너지는 태양전지 핵심소재인 잉곳과 웨이퍼를 생산하는 웅진그룹의 자회사인데 태양광시장이 악화되며 2012년에 1068억 원의 적자로 전환한 뒤 3년 연속으로 영업손실을 내 모두 영업손실 1511억 원을 봤다.
그러나 태양광사업 강화를 위해 자산을 인수하는 데 나서고 있다.
웅진에너지는 2016년 8월 SKC솔믹스로부터 잉곳 성장로와 웨이퍼링 장비 등 태양광사업 자산을 인수했다. 2016년 6월에는 GS그룹 계열사인 GSE&R솔라로부터 웨이퍼 생산용 공장을 사들이기도 했다.
이 자산들을 인수하면서 웅진에너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태양광발전 소재로 쓰이는 잉곳과 웨이퍼를 단독으로 제조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넥솔론과 오성엘에스티 등 잉곳·웨이퍼 경쟁기업들은 업황 악화를 견디지 못해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매각절차를 밟고 있다.
윤석금은 태양광사업 투자를 강화하기 위해 그룹 내 비주력계열사를 청산에도 적극적이다. 2016년 9월 미래성장을 위한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관광숙박운영업을 하는 자회사 오션스위츠를 180억 원에 매각했다.
◆ 평가
영업사원에서 시작해 자수성가한 대표적 CEO로 통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강한 도전정신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웅진출판을 창업하면서 직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태도로 일할 것을 주문했다.
영업사원 출신이라는 경험을 살려 방문판매와 교육콘텐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의 무기로 내세웠다. 정수기 렌탈업을 성공시킨 것을 기반으로 해 2016년 웅진씽크빅을 통해 콘텐츠렌털을 도입했고 국내 화장품 온라인 방문판매도 도입했다.
신규사업을 벌이거나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차별화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리아나화장품을 설립하며 기존 로드샵 기반의 유통형식이 아닌 전통적인 직판(신방판)을 도입해 차별화하며 업계 2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웅진식품을 통해 ‘아침햇살’ ‘초록매실’ 등으로 새로운 전통음료라는 차별화된 신제품을 선보이며 적자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정수기를 판매하는 웅진코웨이가 외환위기로 판매량이 줄어들자 국내 최초로 정수기 렌탈서비스를 도입해 흑자로 전환한 것도 그가 펼친 차별화 전략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고집스럽기보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1990년대 말부터 고명 전 건설교통부 장관,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 등 3명과 꾸준히 만나면서 그룹 경영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윤은지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은 “음담패설조차도 그의 입에서 나오면 무형문화재로 바뀌고 만다"며 "사람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문학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내공의 힘일 것이다”며 윤석금을 유머의 달인이라고 평가했다.
회사가 어려움을 빠졌을 때 사재를 쏟아붓고 직원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책임의식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룹 재건의 밑거름을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웅진그룹 계열사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법정관리 신청 전 웅진홀딩스 보유 지분이 70%가 넘었으나 두 차례 감자를 거친 뒤 6.95%로 줄어든 지분을 2013년 말 두 아들에게 넘겼다.
두 아들이 2세경영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윤석금이 존재감을 보이며 사업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석금이 지은 웅진그룹의 모토는 '정신문화에서 생활문화까지'다. 출판업을 시작할 당시 국내 어린이들에게 외국도서나 외국도서의 모방물이 아닌 우리 나라 동식물, 풍속, 모듬살이 등을 담아낸 책을 만든 것이나 웅진식품에서 가을대추, 아침햇살, 초록매실, 하늘보리 등 국내 고유의 음료를 출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 | | ▲ 기업어음 사기 발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2015년 12월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선고를 마치고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
◆ 사건/사고
△ 차남의 웅진씽크빅 주식 불법거래 윤석금의 차남인 윤새봄 웅진씽크빅 대표이사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거래를 한 혐의로 2017년 2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윤 대표는 웅진그룹 사내이사를 맡고 있던 2016년 1월12일 웅진그룹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 웅진그룹 계열사인 웅진씽크빅의 2015년 영업이익이 2011년 이후 최대규모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윤 대표는 실적이 공시되기 전인 1월13일~18일까지 웅진씽크빅 주식 18만 주가량(20억 원어치)을 사들였다. 아들 명의로도 1800주(2천만 원가량)의 주식을 샀다.
윤 대표가 주식을 매입할 당시 웅진씽크빅 주가는 1만1100원 내외였는데 실적이 알려진 뒤 1만6천 원까지 올랐다. 윤 대표는 주식을 팔지 않았는데 웅진씽크빅 주가는 10일 종가기준으로 8940원까지 떨어져 오히려 손해를 봤다.
재판부는 “비록 윤 대표가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이익을 보지 않았지만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자체가 자본시장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 배임혐의 불구속기소 2013년 8월 검찰은 윤석금을 배임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윤석금은 2012년 7~8월에 1천억 원대의 사기성 기업어음을 발행한 혐의와 2009년 3월부터 2011년 6월까지 렉스필드컨트리클럽의 회사 자금으로 웅진플레이도시를 지원해 회사 측에 592억5천만 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혐의를 받았다.
또 2011년 9월부터 2012년 5월까지는 웅진홀딩스·웅진식품·웅진패스원의 회사 자금을 끌어다 웅진캐피탈에 지원해 968억 원의 손실을 입힌 배임혐의도 받았다.
이에 대해 웅진그룹 측은 "웅진플레이도시와 웅진캐피탈에 자금을 지원한 것은 자구책의 일환이었다"며 "그룹 스스로 경영난을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봐주길 희망한다"고 해명했다.
1심은 CP 발행 혐의는 무죄,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가 제기된 범행액수 1560억 원 가운데 1520억 원을 놓고 유죄로 인정해 윤석금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또 윤석금이 피해 회복을 위한 의지가 강했다는 점이 참작돼 법정구속은 면했다.
이후 2015년 12월 열린 2심에서 윤석금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형을 선고받아 감형됐다.
윤석금은 2심 판결에 승복해 더이상 상고를 하지 않았다.
◆ 경력
1971년부터 1980년까지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사업국 상무를 지냈다.
1980년부터 1983년까지 헤임인터내셔널 대표로 재직했다.
1983년부터 2000년까지 웅진출판 대표를 맡았다. 웅진출판은 2000년 웅진닷컴으로 회사이름이 바뀌었다.
1987년 동일산업을 인수해 1년 뒤 상호를 웅진인삼으로, 1996년에는 웅진식품으로 바꿨다.
1989년 한국코웨이를 설립했다. 한국코웨이는 1992년 웅진코웨이로 사명이 바뀌었다.
1991년부터 웅진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2006년 웅진에너지를, 2008년에는 웅진폴리실리콘을 설립했고 새한을 인수한 뒤 회사이름을 웅진코웨이로 바꿨다.
2007년 웅진홀딩스를 설립했다. 2010년 서울저축은행을 인수했다.
2012년 9월 책임경영을 위해 웅진홀딩스 대표이사에 올랐다가 채권단의 반대와 악화된 여론으로 10월 물러났다. 이에 따라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인 선임대상에서도 제외됐다.
2013년 웅진코웨이, 웅진식품, 웅진케미칼을 매각했다.
2014년 2월 서울중앙지법이 웅진홀딩스의 회생절차 종결을 결정해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2016년 6월 법정관리에서 발생한 채무 가운데 98%를 상환해 사실상 조기에 완납했다.
◆ 학력
1963년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69년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김향숙씨와 사이에 윤형덕 웅진에버스카이 대표와 윤새봄 웅진씽크빅 대표 등 2남을 뒀다.
윤형덕 대표는 윤새봄 대표는 각각 1977년생과 1979년생으로 두 사람 모두 2016년 전무로 승진했다.
윤형덕 대표는 화장품 판매법인 웅진투투럽 대표도 동시에 맡기로 해 웅진그룹의 신사업을 담당하게 됐다. 윤새봄 대표는 재무와 관리 분야에 강점을 보여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일을 맡고 있다.
윤형덕 대표는 웅진홀딩스 지분 12.51%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다음이 윤새봄 대표로 12.4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윤새봄 대표는 2014년 8월 배우 유설아씨와 결혼했다.
◆ 상훈
1985년 제25회 한국출판문화상, 1988년 유공출판인 문화공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1997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1년 경제정의기업상, 2004년 한국능률협회 한국경영자상을 수상했다.
2005년 대통령 국민훈장포장을 받았다.
2009년 제4회 지속가능경영대상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2011년 제1회 평화기업인상을 받았다.
| | | ▲ 2009년 11월4일 오전 제4회 지속가능경영대상 시상식에서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오른쪽)이 임채민 기획재정부 차관으로부터 대통령표창(CEO부문)을 전달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
◆ 기타
자서전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리더스북)’를 냈다.
신광수 웅진에너지 대표는 윤석금 곁에서 사업확장을 도우며 보좌해온 인물로 오른팔이자 분신 격으로 알려졌다. 그는 웅진홀딩스 대표를 거쳐 웅진그룹 법정관리인을 맡기도 했다.
◆ 어록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스스로 검색하고 제품의 우수성을 느낄 수 있는 방판 방식을 고안했다." “좋은 회사를 팔아서 빚을 다 갚았고 그간 부침에도 사람들의 신뢰는 잃지 않았다. 가장 우수한 제품으로 다시 도전하겠다.” (2016/06, 화장품 브랜드인 웅진릴리에뜨를 론칭하면서)
“제로(0)의 돈을 갖고 30대 재벌이 되는 엄청난 성장을 했지만, 몇 조원을 태양광·건설·금융에 투자해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재판 중에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았다.” “남과 비교해 나 자신을 초라하게 하지 말고, 내 꿈을 키우고 ‘나도 지금부터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2016/06, 웅진릴리에뜨 방문판매 사업자들에게 한 강연에서)
“구조조정으로 많은 기업이 어려움에 빠진 상황에서 웅진이 모범적인 기업회생 사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2016/06/01, 웅진그룹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후 남아 있던 빚 1조4천여억 원을 사실상 모두 갚으면서)
“앞으로 더욱 열심히 뛰어서 그룹의 재도약을 이끄는 것이 채권단과 임직원, 사회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 (2014/02/11, 법원의 회생절차 종결 결정 직후)
“오히려 명절에는 사람들이 대개 약간 들뜨고 기분이 좋은 상태여서 평소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다. 또 대부분 ‘명절인데다 저렇게 일을 하다니 참 대단하다’라고 생각해서 계약이 성사될 확률이 높았다. 사람들이 던지는 인사도 하나같이 호의적이었다.” (자서전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에서)
“경영은 능력으로 판단할 것이며 능력이 된다면 누구든 등용할 수 있다.” (2010/11, 2세 경영과 관련된 한 언론의 질문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100% 실패하는 것이다.” (평소 강조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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