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끼니꾸 전문점 화로예찬 김창호 대표
어린 시절 대통령을 꿈꿨던 한 재일교포 소년은 아이러니 하게도 태어나서 단 한번 투표조차 해보지 못했다. 자신이 태어난 일본에서도, 그리고 자신의 뿌리인 한국에서도 ‘이방인’ 일 수 밖에 없었던 화로예찬의 김창호 대표. 그러나 그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자신의 ‘근본’을 찾아 새롭게 정착한 조국 한국에서 그는 이제 이방인이 아닌 ‘주인공’으로 우뚝 설 계획이다.
“큰 아이가 어렸을 때 시절에 일본에서 교포들끼리 모여 다함께 축구를 보고 있었어요. 일본과 이라크의 경기였나. 이날의 승패에 따라 대한민국의 진출결과도 달라지는 아주 중요한 경기였는데, 한참 이기고 있던 일본이 역전을 당했습니다. 박수치고 좋아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일본이 졌다며 아쉬운 표정을 짓더라고요. 적잖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아이들을 위해서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죠.”
재일교포 2세로 살아온 ‘이방인’으로서의 힘들었던 지난날 때문일까. 화로예찬 김창호 대표의 ‘자신의 뿌리’에 대한 생각은 남달랐다. 일본인과 똑같이 말을 하고 비슷한 외모를 지녔어도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재일교포라는 꼬리표는 평생의 짐이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한국에 정착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놓은적이 없었던 김 대표에게 아이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은 한국행을 좀 더 빠르게 진행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세계가 하나가 되고 서로 원활하게 교류 할수록 아이덴티티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근본이 확실한 사람이 아니면 무엇을 하더라도 혼란이 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떤 목표의식을 가지고 달려가는지 모르겠는, 허망의 순간이 오죠. 제가 재일교포로 일본에 살던 어린시절에는 자존감도 낮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만큼은 비단 자신의 입신양명뿐만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21세기에 듣는 나라와 민족이라는 말은 다소 생경하다.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게 느껴지기에 그 소중함을 모르듯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먹고, 자고, 돈을 벌며 각종 혜택을 누리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우리가 한 두달 해외에 나가있어야 겨우 느끼는 향수병을 김창호 사장은 지난 수십년 간 느껴왔다. 그리고 6년전,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조국 한국에 정착했다.
추억의 차돌박이로 돌아온 재일교포
일본에서의 김창호 대표는 야끼니꾸매장을 여러 곳 운영하며 경제적인 부족함 없이 살아온 편이었다. 우직한 그의 성격대로 소위 말하는 고객을 상대로 ‘장난’치지 않고 정직하게 운영해온 결과였다.
한국에서 정착을 위해 고민한 업종도 역시 자신 있는 야끼니꾸였다. 야끼니꾸는 잘라진 고기에 즉석양념을 통해 간을 베게 한 후 숯불에 구워먹는 요리다. 보통 일본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일본에서도 재일교포가 처음 개발하고 전파한 음식으로 일본의 환경에 맞게 퓨전화 된 ‘한국음식’이라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김 대표는 “한국인들은 색다른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고지식한 편”이라며 “재일교포를 통해 개발된 야끼니꾸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으면서도 일본환경이 접목돼 이미 퓨전화가 끝난 음식이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지 6년째에 접어드는 김대표는 현재 운영하고 있는 화로예찬이 자리 잡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다.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살려고 노력한 그에게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의 차별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가게가 잘돼도 ‘텃새’를 부리는 유통업자들 때문에 물류확보가 어려웠다.
더불어 한국의 ‘사회적인 환경’도 낯설기만 했다. 어느정도 극복하고 장사가 조금씩 되기 시작하자 모 컨설팅 회사에서 새로운 컨설팅을 제안했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 기껏 바꾼 인테리어가 채 빛을 보기도 전에 권리금도 못 받고 매장에서 쫓겨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힘든시기를 겪던 와중에 김 대표는 ‘차돌박이’에 주목했다.
“어릴적에 아버지가 고기와 더덕을 함께 붉은 양념에 무쳐서 구워주시곤 하셨는데, 그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차돌박이에 더덕을 함께 무쳐먹으면 맛에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았죠.”
더덕과 차돌박이를 함께 양념해 놓으니 고기에 더덕 특유의 향이 배고 고기가 훨씬 부드러워 졌다. 특히 여성고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시범삼아 ‘더덕차돌박이’라는 점심메뉴를 8000원에 제공했고 입소문 마케팅이 시작됐다. 더덕차돌박이라는 이색메뉴로 이름을 알리면서 화로예찬의 다른 메뉴들이 덩달아 인기를 얻은 것은 물론이다.
“한끼식사 아닌 여가공간 제공할 것”
한국에서의 짧은 6년동안 서울의 각 매장을 전전하며 매장의 흥망성쇠를 경험한 김 대표는 현재 화곡동에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화로예찬’이라는 야끼니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그의 말대로라면 일명 ‘고기종합전문매장’이다. 인기메뉴인 더덕차돌박이는 물론 갈비살, 우설, 각종 돼지고기 등 화로예찬만의 차별화를 지닌 메뉴들로 가득하다. 특히 삶아서 기름기를 뺀 삼겹살을 숯불에 한번 더 구워먹는 방식의 메뉴는 담백한 맛이 일품으로 여성고객 및 아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향후 프랜차이즈 사업도 계획하고 있는 김창호 대표는 “요즘 시대의 외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없애기 위한 한 끼 식사가 아닌 여가생활이나 다름없다”며 “외식이 하나의 여가문화가 되려면 고객이 절대 불편함을 느끼는 공간이면 안 될 것이며 음식을 먹는다는 것 하나만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느낌이 나는 곳 이어야 한다”고 자신의 경영철학을 전했다.
“제가 본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서 한국에 정착한 재일교포로서 잘 되어서 아직 일본에 있는 교포들이 저를 보고 한국으로 많이 올 수 있는 용기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재일교포에서 비롯된 야끼니꾸 문화를 한국에도 정착시켜 한국이 원조인 세계적인 메뉴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한때 대통령을 꿈꿨던 작은 소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선진외식문화의 주인공이 되어 그 꿈을 실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