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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의 변신

곡산 2008. 7. 12. 06:39

[경제]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의 변신

2008 07/08   뉴스메이커 782호

매출 감소·경영권 안개 속 금융권 진출·글로벌 경영으로 돌파

최근 롯데그룹에 조용하지만 무게감 있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식품, 유통·서비스, 중화학·건설 등 전통적인 내수기업에서 벗어나기 위한 활동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재계에선 대기업 중에서도 보수적 이미지가 강했던 롯데가 이제야 울타리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고 평가한다.

롯데그룹의 행보는 금융업 진출과 공세적 글로벌 경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롯데건설이 부동산경기 침체로 심각하고, 석유화학 또한 고유가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다 쇼핑 등 유통사업도 기대 이하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그룹의 주력 사업들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평가 속에서 새로운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이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해 새 시대를 개척해나가야 할 시점에 서 있다”며 “핵심 인재를 체계적으로 관리·육성하는 시스템을 완비하는 것은 물론 해외시장에서 어떤 경쟁력을 갖춰나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신 회장의 둘째아들인 신동빈 부회장이 존재한다.

롯데그룹은 지난 6월 초 국내 최대 투자자문사인 코스모투자자문 인수를 통해 자산운용업에 진출했다. 코스모투자의 지분 50% 이상을 사들인 뒤 자산운용사로 전환해 일본 자산운용회사인 스팍스 그룹과 공동 경영하기로 한 것. 롯데 측은 코스모투자자문을 통해 현재 1000만 명 이상인 롯데패밀리 고객을 바탕으로 올해 초 인수한 롯데손해보험과 함께 퇴직연금 시장에 진출하거나 롯데카드 제휴 상품을 개발해나갈 계획이며, 특히 스팍스의 해외 영업망을 활용해 해외 영업 부문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강훈 롯데그룹 홍보실 차장은 “내년 자본시장 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금융, 보험 등 자본시장에 대한 그룹 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신 부회장은 롯데그룹이 앞으로 더 성장하려면 금융 부문에서도 충분한 이익을 낼 수 있는 준비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그룹의 투자자문사 인수에 대해 금융가에선 “다음 수순은 증권사 설립”이라고 전망한다. 이미 롯데손해보험(옛 대한화재), 롯데카드(옛 동양카드), 롯데캐피탈 등 다수의 금융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어 증권업 진출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는 분석이다.

롯데그룹이 금융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그동안 맛본 ‘금융기관 인수의 단맛’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신한증권의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2002년 동양카드를 인수해 설립한 롯데카드가 지난해 174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흑자구도를 구축했고, 롯데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과의 연계를 통해 회원 관리에서 큰 재미를 보고 있다”면서 “지난 4월 대한화재를 인수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얼마 전 계열사인 롯데건설이 상장 적격심사를 받으면서 증권사 인수에 대한 ‘실탄’을 확보했다는 것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증권가에선 신 부회장의 이력도 롯데가 금융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설정한 이유라고 평한다. 신동빈 부회장은 1977년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靑山學院大學)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영학석사 학위(MBA)를 받은 후 롯데그룹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노무라증권에 입사해 영국 런던지점에서 8년간 근무하며 금융 실무 능력을 쌓았다.

금융·글로벌에서 성장 동력 모색
보수적 이미지의 롯데그룹이 글로벌경영을 앞세우며 ‘문 밖’으로 나섰다. 그 중심엔 신동빈 부회장이 서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해외에서 찾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롯데그룹은 성장 잠재력이 큰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이른바 브릭스(BRICs)에서 브라질 대신 베트남을 추가한 ‘VRICs’ 진출 전략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업종 특성상 서구지역보다 성장 잠재력이 큰 이들 지역을 공략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롯데그룹은 중국 등 16개국에 롯데중국투자유한공사 등 44개의 법인, 42개의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2008년 매출 목표 40조 원 중 1조7000억 원을 해외에서 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4년 뒤엔 전체 매출 60조 원 중 10%인 6조 원을 해외에서 벌어들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가장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신 부회장은 지난해 롯데투자유한공사 출범식에서 “일본과 한국에 이어 중국에 제3의 롯데그룹을 세울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신 부회장이 금융권 M&A를 통해 자본을 늘리고, 공세적 글로벌 경영을 펼치는 데는 그룹 내부적 요인도 존재한다. 그룹의 전반적인 매출 부진과 안개 속 경영권 승계 구도가 신 부회장으로 하여금 신성장동력 발굴에 속도를 내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의 맏형님 격인 롯데쇼핑은 2006년부터 연속 2년째 신세계에 수치에서 뒤지며 유통업 왕좌를 완전히 내준 상태다. 지난해 총 매출액 기준으로 신세계가 10조1028억 원을 올렸고, 롯데쇼핑은 10조851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신세계가 많았다. 롯데쇼핑의 한 관계자는 “라이벌인 신세계가 할인점 중국 진출, PL(유통업체 자체 브랜드 상품) 상품 강화, 프리미엄 아울렛 도입 등으로 새로운 영역을 줄기차게 개발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었다”면서 “전체적인 유통구조가 서로 달라 단순 비교는 곤란하지만 어쨌든 소비자들의 인식에선 1위 자리를 내준 셈”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야심차게 진출한 홈쇼핑 사업 역시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이 몇 년째 인수전보다 더 형편없는 실적이다. 게다가 신동빈 부회장이 적극 나서 일본의 편의점 브랜드 세븐일레븐을 들여와 국내 최초로 편의점 사업을 의욕 있게 시작했지만 경쟁업체인 훼미리마트와 GS25에 밀리면서 1, 2위와 격차가 크게 벌어진 3위 자리로 밀려났다. 간판 브랜드인 롯데리아도 최근 상황이 어려워져 2004년 866개였던 매장이 매년 감소해 지난해 말 기준, 740개로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 넘어온 것’으로 느껴졌던 경영권 승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현재 롯데그룹의 후계구도는 일본롯데는 장남인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이, 한국롯데는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는 형국. 그러나 신 부회장 체제 이후 그룹의 매출 부진은 신격호 회장의 ‘훈시’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영권 확보 위해 ‘문 열고 개혁’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도 신 부회장의 자리를 불안하게 한다. 현재 신 부회장과 일본의 신 부사장은 롯데쇼핑 등 그룹 계열사 전체에 대해 주식을 비슷하게 보유하고 있다. 현재 롯데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은 호텔롯데의 몫. 호텔롯데는 롯데쇼핑(9.29%)을 비롯해 롯데제과(3.21%), 롯데캐피탈(27.33%), 롯데산업(36.82%), 롯데물산(29.62%), 롯데리아(20.2%), 롯데기공(17.38%), 호남석유화학(13.64%)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순환출자의 고리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계열사별로 비슷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두 형제에겐 누가 호텔롯데의 경영권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그룹 전체에서 위치가 좌우되는 것이다. 문제는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신동주 부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일본롯데라는 것.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로만 보면 한국 롯데 경영권의 첫 단추는 일본의 신 부사장이 쥐고 있는 셈이다.

1988년 롯데그룹에 입사한 이후 호남석유화학 상무(1990), 코리아세븐 전무(1994), 그룹기획조정실 부사장(1995)을 거쳐 2004년 10월부터 정책개발 및 미래전략을 담당하는 정책본부에서 본부장을 맡은 신동빈 부회장. 이후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나섰지만 이후 이렇다 할 경영 성과를 내지 못하자 아버지인 신격호 회장도 여전히 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아직 완벽하게 신임을 얻지 못했다는 반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게 재계의 의견. 신 부회장이 대기업 중 조직 운영과 인사가 아주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롯데그룹에 ‘혁신’을 주장하며 신성장 동력 발굴에 나서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롯데그룹 컨트롤 타워, 정책본부

롯데그룹은 삼성이나 현대자동차처럼 그룹의 헤드타워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계열사별로 그 역할과 권한이 분산되어 있어 그룹 운영은 사안에 따라 ‘따로 또 같이’ 진행됐다. 그러나 1997년 2월 그룹 부회장에 취임한 신동빈 부회장은 2004년 10월 그룹 정책본부를 신설하고 본부장을 맡았다. 그룹 차원의 실무적인 정책 수립에 참여하면서 이를 추진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를 만든 것으로, 그룹 밖에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조직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현재 정책본부는 롯데그룹의 CP(지휘소)다. 그룹의 주요 정책을 조율하고, 계열사의 중복 투자를 방지하며, 국제업무와 해외사업을 총괄하면서 계열사들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 유통업 등 주력사업 분야를 넘어 차세대 성장동력을 고민하고 계획하는 일도 정책본부가 책임지고 있다. 한마디로 삼성그룹의 전략기획실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해체 수순을 밟은 삼성의 전략기획실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는 게 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정책본부는 신동빈 본부장 아래 이인원 부본부장과 8실을 두고 있다. 이인원 부본부장(정책본부 사장)은 롯데그룹의 ‘부자(父子) 경영’을 보좌하는 그룹의 핵심 리더로 꼽힌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 등에서 관리, 영업, 매입 등 백화점 경영의 ‘3대 요직’을 거친 뒤 지난해 롯데그룹 정책본부 부본부장에 올랐다. 신격호 회장의 의중을 파악해 계열사에 전달하고 신동빈 부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신 부회장의 사부’로 불리기도 한다.

롯데정책본부 운영실장인 이재혁 부사장은 계열사의 동향을 총체적으로 파악한다. 이 부사장은 정책본부 전신인 롯데그룹 기획조정실에서만 20년 넘게 근무해온 그룹 내 기획통으로 꼽힌다. 재무와 법무를 총괄하는 지원실을 맡고 있는 채정병 부사장은 입사 이래 재무파트만 맡아온 이력답게 투자 전반에 걸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타당성을 검토하는 핵심인물이다. 그룹 홍보실장인 장병수 전무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빠른 속도로 경영진의 신임을 얻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최근 신 부회장의 글로벌 경영 표방과 함께 힘이 실리는 곳은 국제실이다. 황각규 국제실장(부사장)은 해외 사업 및 신규 사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신 본부장의 해외 출장시 의전을 담당하고 있어 그의 의중을 읽고 있다는 평가다. 그룹의 주력 사업과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는 신규 사업이나 선진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도 국제실이 맡은 업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