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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검출=면제”의 종언, ‘유래(derived from)’로 기울어진 GMO 라벨링의 새 질서-이주형의 글로벌 푸드트렌드(17)

곡산 2025. 11. 20. 07:26
“미검출=면제”의 종언, ‘유래(derived from)’로 기울어진 GMO 라벨링의 새 질서-이주형의 글로벌 푸드트렌드(17)

 

  •  이주형 전문위원
  •  승인 2025.11.18 07:46

미국 연방항소법원 ‘고도로 정제된 식품’ 면제 해석 위법 판결
‘검출 불가’를 ‘함유하지 않음’과 동일시는 월권…법적 기준 제시
라벨링 의무 재편…투명성 요구 맞춰 기록 관리 시스템 구축을
이주형 전문위원(법무법인 비트 글로벌식품산업 지원실장)

“정제하면 유전물질이 안 잡히니 표기는 면제다.” 미국 식품업계의 오랜 관성은 10월 31일, 제9연방항소법원 한 장의 판결문으로 뒤집혔다. 법원은 USDA의 고도로 정제된 식품(highly refined foods)의 면제 해석을 위법이라 보고 환송했다. 핵심은 간단하다. ‘함유(contain)’와 ‘검출(detectable)’은 다르다. 기술로 검출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유전자변형 작물에서 유래한 성분을 법 바깥으로 밀어낼 수 없다는 것이 이 판결의 핵심 논지다.

특히 미국 시장을 겨냥하는 한국의 식품 제조 및 수출 기업들에게는 "DNA가 없으니 괜찮다"라는 믿음을 버려야 할 중대 신호탄이 날아왔다. '관대했던 시대'는 끝났다는 메시지가 법원으로부터 강력하게 날아든 것이다.

USDA가 2022년 시행한 국가 바이오엔지니어링 식품 공개 표준(NBFDS)의 핵심은 BE 라벨 부착 의무를 '검출 가능한(detectable) 변형된 유전 물질(DNA)을 포함하는 식품'으로 한정한 것이다.

이 정의는 곧 옥수수 시럽, 콩기름, 카놀라유, 사탕무 설탕 등 유전자 변형된 작물에서 유래했더라도, 고도의 정제 과정을 거쳐 DNA가 과학적으로 검출되지 않는 성분들을 라벨링 의무에서 면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제조업체들은 단순히 DNA 미검출 기록만으로 규제를 회피할 수 있었고, 소비자들은 대다수 가공식품에 쓰인 GMO 유래 성분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이러한 규제 투명성 부재는 시민단체들의 끈질긴 소송을 불러왔고, 결국 제9 연방항소법원은 이 규정이 법적 오류를 범했다고 단호하게 판단했다.

법원이 USDA의 규정을 파기한 논리는 명료하고 단호하다. 핵심은 '검출 가능성'을 기준으로 전체 범주를 면제할 권한이 USDA에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식품이 유전자 변형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contain)'는 법적 사실과, (현 기술로 그 물질이) '검출 가능하다(detectable)'는 과학적 사실은 동일하지 않다"라고 단정했다.

이는 USDA 산하의 AMS(농산물 마케팅 서비스)가 단순히 '검출 불가'를 '함유하지 않음'과 동일시하여 면제권을 부여한 것은 연방법(National Bioengineered Food Disclosure Law)의 입법 의도를 넘어선 월권이었다고 판결한 것이다. 의회는 AMS에 '양(amounts)'에 대한 임계값은 설정할 재량권을 주었지만, '검출 가능성'을 면제 기준으로 삼을 권한은 주지 않았다는 법적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것이다.

이 판결은 DNA 미검출을 기준으로 삼았던 제조업체들의 오랜 라벨링 전략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향후 USDA가 새로운 규정을 만들 때 'GMO 작물에서 유래되었는지(derived from)' 여부에 기반하여 라벨링 의무를 부과해야 함을 강력히 시사한다. 소비자의 알 권리가 과학적 검출 한계를 넘어 법적 권리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번 판결의 파급력은 당장 미국 시장을 겨냥하는 모든 식품 제조 및 수출 기업에게 쓰나미 경고와 같다. 기존의 라벨링 관행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이 판결을 단순한 “라벨 디자인 이슈”로 읽으면 반쪽짜리 이해다. 이는 공급망 이슈이며, 오늘의 라벨은 어제의 조달을 증언한다.

그동안 옥수수시럽, 전분, 정제유(대두·카놀라), 사탕무 설탕은 “유전물질 미검출”을 내세워 면제 트랙에 올랐다. 이제 기준선이 검출주의 → 유래주의로 이동한다면, 이들 대부분이 공개 의무 대상이 될 수 있다. 즉 “검출되지 않는다는 시험성적서”에서 “유래를 입증하는 거래·제조 기록”으로 증빙의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라벨 디자인보다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그동안 자발적 문구였던 “Derived from Bioengineering”이 의무 공개 문구로 흡수될 가능성이 커졌다.

첫째, 라벨링 의무의 재편과 대응 전략이다. 자발적 문구에서 의무 공개 문구로 변화된다. 따라서, BE 텍스트·심볼의 전면(PDP) 배치 전략을 다시 짜야 하며, 전자 링크는 보조 수단으로 격하될 공산이 크다. 이는 시리얼, 제빵류, 소스, 음료 등 미국 내 유통되는 대부분의 가공식품 라벨에 영향을 미치며, BE 라벨이 브랜드 이미지에 미칠 영향을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둘째, 공급망 관리와 증빙의 재구성이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규제가 개정되기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USDA의 새로운 규정은 반드시 더 엄격해질 것이 분명하다. 지금 당장 원재료 성분 하나하나의 BE 유래 여부를 확인하고 비(非)GMO 공급망 다변화를 검토하며, 강화된 투명성 요구에 맞춰 철저한 기록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조달-가공-혼합-충전-유통까지, ‘유래 추적’이 실무의 승부처가 될 것이다. 원재료명세서(CoA), 배합표, 세정/전환/정제공정 기록에서 “DNA 미검출”에 기대던 관행을 버리고, 원천 작물의 성격과 흐름을 서류로 잇는 연쇄를 만들어야 한다. 비BE 대체 원료(예: 비GM 사탕수수 설탕)로 갈아타는 선택지도, 가격·조달 안정성·브랜드 전략을 같이 반영해 하이브리드 포트폴리오로 검토할 때다.

셋째, 온·오프라인 동기화와 신뢰 확보이다. 미국 시장은 이제 PDP(전면 표시면), 측면 영양/성분, 아마존 상세페이지, 배너/이미지 카드가 같은 말을 같은 방식으로 해야 한다. 숫자·심볼·링크가 어긋나면, 소비자 오인뿐 아니라 규제 리스크도 커진다. 내부 라벨·광고 싱크 체크리스트를 상시화해야 한다.

이 변화는 비용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제9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은 미국 식품 규제의 방향타를 '과학적 검출 기준'에서 '소비자 알 권리 기준'으로 확실하게 돌려놓았다.

라벨은 소비자와의 약속이고, 공급망 기록은 그 약속의 증거다. 한국 수출기업에게 이번 판결은 새로운 의무가 아니라, 오래 미뤄왔던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만들어, 어떻게 설명해 왔는가.” 정답은 늘 문장보다 기록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오늘의 기록은, 내일의 라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