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열전

'오뚜기 카레' 반세기 넘게 국민 건강식 자리매김[장수브랜드 탄생비화]

곡산 2023. 10. 3. 17:04

'오뚜기 카레' 반세기 넘게 국민 건강식 자리매김[장수브랜드 탄생비화]

등록 2023.03.12 09:22:42

'오뚜기 카레' 출시일 1969년 어린이날, 오뚜기 창립일로 기념

생소했던 인도의 전통 음식 '커리' 한국화…韓 대중에 사랑받아

1969년 첫 출시 당시 오뚜기 카레. (사진=오뚜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주동일 기자
 
= 인도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카레는 197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한국인의 국민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한때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고급 음식으로 여겨졌던 '커리'(카레)가 국내 소비자의 일상에 스며들게 한 일등공신으론 단연 '오뚜기 카레'를 꼽을 수 있다.

오뚜기의 창립일은 1969년 5월 5일이다. 실제 창립일은 이보다 빠르지만, 첫 제품인 오뚜기 카레가 시장에 공급된 이날을 창립일로 삼았다. 소비자에게 오뚜기카레의 이름을 처음 알린 것을 오뚜기의 시작으로 여긴 것이다.

공교롭게도 제품 공급일은 어린이날과 겹쳤다. 당시엔 어린이날이 공휴일이 아닌 단순 기념일이어서 창립일로 삼는데 문제가 없었다. 특히 카레라는 음식이 어린이에게 좋은 영양소를 공급할 뿐 아니라, 기존에 없던 새로운 맛이라는 점에서 어린이를 가장 중요한 고객으로 염두에 두었다는 점에서 창립일 지정은 의미가 있었다.

고 함태호 오뚜기 창업주가 믿었던 '카레의 가능성'

오뚜기가 카레를 첫 제품으로 삼은 건 "식품은 가정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가정에는 사랑과 정성이 넘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첫 카레 제품의 용량이 5인분이었던 이유도 당시 우리나라 가구당 가족 수가 5명이었기 때문이다.

인도의 전통음식인 커리(curry)는 일본에서 '카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일본식으로 재해석돼 1940년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일본산 카레 수입제품이 유통됐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카레는 한국인이 즐기는 음식은 아니었다.

살림 형편이 좋은 부유층이나 일부 고급식당에서 판매되는 메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식생활을 가진 일본에서 카레가 누렸던 인기엔 못미쳤지만, 오뚜기의 창업주인 고 함태호 명예회장은 카레의 대중화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함 명예회장은 1930년대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임시군사교육학교인 육군종합학교를 거쳐 소위로 임관해 1957년까지 근무했다. 소령으로 전역한 뒤 1959년 조흥화학에 입사한 그는 선친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홍익대학교 상학과를 나와 1968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함 명예회장의 눈길을 끈 것은 식품사업이었다. 인공 감미료와 식품첨가물을 만드는 조흥화학에서 근무하며 경험을 쌓고, 무엇보다 직접 식품사업에 뛰어들어 국민들의 식생활을 개선하고 싶다는 열망에서다.

1960년대 우리 국민에게 밥은 주식의 개념을 넘어 생명의 가치로 신봉됐다. 특히 밥과 함께 국, 찌개 등 매콤한 맛을 곁들이는 식습관을 갖고 있었다. 함 명예회장은 우리 국민의 식성을 생각할 때 밥 위에 올려 매콤하게 즐길 수 있는 카레가 충분히 인기를 누릴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카레가 가진 영양과 건강성을 생각해 '맛과 영양'을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카레의 가능성을 믿고 1969년 5월 5일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 입맛에 맞게 분말 타입인 '오뚜기 분말 즉석카레'를 내놓았다. 당시 내놓은 오뚜기 즉석카레는 기존 타사 제품인 '스타 카레분'과 달리 함 명예회장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콤한 향을 살렸다.

2004년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해 강황 함량을 50% 증량한 백세카레. (사진=오뚜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분말로 보관기간 늘리고 편의성 높여

오뚜기가 카레 대중화를 목표로 시장에 발을 들일 당시 국내 시장은 이미 적지 않은 카레 제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한일 합작 식품회사인 한국S&B의 'S&B순카레', 일본 즉석카레 '하우스 인도카레' 등이 대표적이었다.

오뚜기는 기존 제품들과 달리 분말 형태로 카레를 만들어 시장을 공략했다. 보관이 쉽고 유통기간이 긴 데다 다른 식재료만 있으면 바로 요리가 가능해 편의성을 높였다. 적극적인 홍보에도 나서며 카레가 우리 식생활에 뿌리내리도록 했다.

출시 이후 거래처 점주와 유대를 강화하면서 유통시장도 적극 확장했다. 또 거리시식회를 통해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며, 유통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카레라는 음식을 알리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훗날 함태호 명예회장은 직원 교육자리에서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카레를 출시할 당시엔 카레에 대한 인지도가 대단히 미흡했습니다. 고소득층이나 고학력층에서 간간이 별미로 먹을 정도로 대중화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식품을 취급하던 도매상도 제대로 카레에 대해 알지 못하던 터라 우리는 영업조직을 가두판매 형태로 만들고, 시식세일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어느 회사보다 앞선 영업방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국과 찌개를 곁들여 밥을 먹는 식문화에 익숙한 국민들에게 카레는 이색적인 맛과 건강 친화적이라는 강점을 앞세워 소비자를 설득했다. 이러한 오뚜기의 노력은 1970년대 카레 대중화를 이끌었다.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다양하게 출시된 오뚜기 카레. (사진=오뚜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번거로움 덜고 건강하게…카레의 변신은 계속

최초 분말 형태로 시작해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레토르트 형태로 발전한 카레는 2000년대 웰빙 바람을 타고 식품의 기능성 강화에도 앞장섰다. 오뚜기는 강황의 함량을 50% 이상 증량하고 베타글루칸 및 식이섬유가 풍부한 귀리 등을 원료로 한 '백세카레'를 2004년 내놓으며 시장을 선도했다.

2009년 4월엔 과립형 카레로 편의성을 대폭 높였다. 소비자들이 가정에서 더욱 편리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물에 더 잘 녹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전까지 카레는 따로 물에 갠 다음 끓여야 했지만, 과립형 카레는 조리 시 바로 카레를 넣고 끓여도 덩어리가 지지 않고 잘 풀어지는 장점이 있었다.

2012년엔 소비자들이 발효 제품에 긍정적 인식을 갖는 점을 고려해 명품카레 '발효강황카레'를 출시했다. 2014년 5월엔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꼽히는 렌틸콩을 주원료로 한 '3분 렌틸콩카레'를 내놓고, 2017년엔 쇠고기와 과일, 사골을 3일간 숙성한 소스에 다양한 향신료를 더해 '오뚜기 3일 숙성카레'를 공개했다.

특히 오뚜기 3일 숙성카레는 적정 숙성 기간을 찾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거쳤다. 숙성소스가 카레분과 잘 어우러지고,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맛을 내기 위해 3일을 숙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오뚜기의 50년 카레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든 제품이다.

오뚜기 카레는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흐름에 발맞춰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오뚜기는 지난해 5월 비건 브랜드 '헬로베지'를 출시하고 첫 제품으로 '채소가득카레'를 선보였다. 채소가득카레는 토마토와 양파를 베이스로 한 카레 소스를 사용해 산뜻하면서 달콤한 맛을 냈다. 특히 새송이버섯과 병아리콩, 물밤, 연근, 토마토, 샐러리, 등으로 다채로운 식감을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