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급 남직원’ 뽑는데 지원한 23세 여성, 지금은…
'과장급 남자 직원' 공고 보고 지원→최연소 여성 임원으로
풀무원 최연소 여성 임원 윤명랑
외면받던 풀무원 냉동사업부 일으켜
일과 가정의 양립은 제도와 배려가 만들어
풀무원식품 마케팅본부 윤명랑(40) 상무는 2017년 1월 1일 풀무원 최연소 여성 임원으로 승진했다. 냉동식품·가정간편식 마케팅 담당, 브랜드 관리실 등을 거친 올해 18년차 베테랑이다.
그는 2001년 ‘과장급 남자 마케팅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당시에는 채용 공고에 성별을 명시하는 회사가 많았다. “당연히 지원자는 모두 남자였고, 면접 때는 ‘왜 지원했냐’는 질문을 받았죠. 면접에서 저도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었어요. 당시 유일하게 ‘바른 먹거리’를 강조하는 풀무원에 관심이 많아 제품을 주의 깊게 봤습니다. 그런데 생칼국수 제품이 2인분에 350g, 4인분은 700g이 아닌 600g이었어요. 이유를 물었습니다. 알고보니 중량 표기는 담당 직원의 실수였어요.” 면접관의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과장을 뽑던 채용 과정에서 사원급으로 추가 합격했다.
그는 ‘냉동 만두는 질 낮은 재료로만 만든다’는 편견을 깨고 만두 고급화 문을 열었다. 최근에는 여성들이 좋아하는 착즙주스 ‘아임리얼’과 탄산수 ‘스파클링 아일랜드’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아임리얼’은 10년째 착즙주스 시장점유율(65%) 1위를 차지하고 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수서동 풀무원 본사에서 윤 상무를 만났다. 그가 최연소 여성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던 비결,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방법을 알아봤다.
풀무원식품 마케팅본부 윤명랑 상무.
출처 : 풀무원 제공, 촬영 이현석 사진작가사원의 패기로 밀어붙인 고급 만두 대중화
윤 상무는 입사하자마자 ‘냉동 만두’ 기획·마케팅을 맡았다. 풀무원은 냉동 만두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윤 상무는 6개월에 걸친 소비자 조사 결과 소비자가 ‘좋은 재료로 만든 만두라면 더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생고기 생야채’를 콘셉트로 ‘고급 만두’를 기획했다. 원재료비가 기존에 비해 5배 이상 높았다. “‘말도 안된다’는 평이 대부분이었죠. 공장에서도 ‘냉동 재료가 아니면 손이 많이가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그때는 사원의 패기랄까, 소비자 조사 자료를 근거로 밀어붙였습니다. ‘신상품위원회’라는 사장단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발표했더니 ‘한번 해보자’는 의견을 얻었어요.”
2002년 4월에 출시한 풀무원 물만두는 반응이 좋았다. 기존에 월 2억~3억 원에 불과하던 월매출이 20억원으로 올랐다. 2004년 ‘쓰레기 만두 파동’ 때는 쓰레기 만두와는 전혀 상관없는 풀무원도 타격을 입었다. ‘만두’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윤 상무는 이때를 기회로 보았다.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생산 과정을 소비자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소비자가 공장 견학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생고기, 생야채를 다루는 게 엄청난 비밀 같아 보이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장 가보면 직원 50~60명이 직접 채소 씻어서 닦고 계세요. 또 부추는 재배 특성상 밑단을 자르면 다시 나는데, 다시 자란 부위는 안쓰고 중간 부위만 쓴다든지 굉장히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이후로도 그는 냉동밥, 냉동 핫도그 등을 담당하며 냉동식품에 대한 편견을 깼다. 풀무원은 이전에 없던 냉동사업부를 만들어 적극 투자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바른 먹거리’라는 가치를 구체화하는 데 집중한다. “기획하는 제품이 바른 먹거리인지, 바른 먹거리임을 소비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소비자에게 신뢰받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출이나 이익보다 중요한 필수 조건이에요. ”
일과 가정 제대로 분리, 제도가 뒷받침해줘야
윤 상무는 2012년 결혼해 출산·육아휴직을 합쳐 10개월 동안 휴직했다. 4살짜리 아들이 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려면 둘을 ‘분리’해야 한다. “하루는 집에서 저녁때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엄마가 집에서도 일하는 거 싫다’고 하더라구요. 그 어린아이도 다 알아요. 일하는 시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제대로 구별해야 합니다. 일을 제대로 마무리 못했다는 찜찜함이 있으면 애한테 집중할 수 없어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엄마의 각오와 마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일과 육아를 둘 다 하기로 마음먹어도 회사 제도나 분위기가 받쳐주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윤 상무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풀무원도 남자 직원이 많은 ‘남초 회사’였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윤 상무를 ‘미스 윤’이라 부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풀무원은 다른 회사보다 일찍 일과 가정 양립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가족친화기업’을 만들기 위해 제도를 정비했다.
풀무원은 전체 직원 5977명 중 여성은 3268명(54.68%)이다. 또 전체 임원 106명 중 여성은 15명(14.15%)이다. 풀무원은 2020년까지 여성 임원 비율 30%를 목표로 세웠다. 인사 제도에서 성차별적 요건을 찾아 보완하고 있다.
직원들이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도록 지원한다. 14주 이내 또는 34주 이후 임신한 여성 직원은 하루 2시간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서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로 명시한 것보다 앞뒤로 2주씩 연장한 것이다. 임금 삭감도, 승인 절차도 없다. 오전 8시부터 10시 사이 출근시간을 조정하는 ‘유연근무제’도 자리 잡은지 오래다. 남자 직원도 태아검진을 사유로 한 휴가는 승인 없이 쓸 수 있다.
윤 상무는 아들과 함께 출근한다. 아들은 사내 어린이집에 맡긴다. 사내 어린이집은 오전 7시 30분부터저녁 7시 30분까지 운영한다. “아이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안심하고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도 회사에서 담당합니다. 소풍 때 도시락 쌀 필요도 없어요. 부득이하게 야근을 해야 하면 사무실에 아들을 데려와서 일할 때도 있어요.”
자녀를 둔 직원을 지원하는 제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
출처 : 풀무원 제공‘특혜’ 아닌 ‘배려’ 필요
워킹맘에 대한 배려를 ‘역차별’이라 보는 시선도 있다. “'특혜'와는 구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려면 일정 기간 동안 배려가 필요합니다. 가령 임신기, 출산 후 아이가 보살핌이 필요하는 기간이에요. 이때 제도가 받쳐줘야 하고 기회 보장도 필요해요. 이 시기를 지나면 워킹맘이 충분히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도가 잘 갖춰진다 해도 ‘눈치 주는’ 문화라면 일과 가정 양립이 힘들다. 여성 혼자 뭐든지 완벽히 해내는 ‘슈퍼우먼’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아이 한명을 키우기 위해 사돈의 8촌까지 동원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에요. 몸을 추스를 땐 친정어머니,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셨어요. 남편과 제가 사내 부부라 1박 2일 워크숍 때는 남동생이 시간을 냈습니다. 팀원들은 아이를 키우는 직원 스케줄에 맞춰줘요. 사무실에 아이를 데려와도 꺼려 하지 않습니다. 배려를 번거롭고 귀찮게 생각했다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다들 출산과 육아가 힘들다는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생각합니다."
글 jobsN 이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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