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유왕·카레 전도사·조미료의 아버지·..韓 식품산업의 선구자 큰 별 지다(종합)
이선애 입력 2017.10.10 09:53
정식품 창업주 정재원 명예회장 별세…향년 100세
임대홍 창업주에 이어 함태호 회장도 '지는 별'
식품산업 외길…사회공헌에도 박차 '참기업가 실천'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식품업계가 큰 슬픔에 잠겼다. 지난해부터 노익장을 과시하던 식품업계 창업주의 별세 소식이 잇따라 전해진 가운데 대한민국 두유산업의 선구자인 정식품 창업주 정재원 명예회장이 10월9일 별세했다. 향년 100세.
◆대한민국 두유 선구자로 평생 콩 연구에 몰두= 일제강점기이던 1917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고인은 홀어머니 아래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19세 나이에 최연소로 의사검정고시에 합격해 1937년 명동의 성모병원 소아과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의사로 일하면서 원인 모를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목격한 정 명예회장은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 끝에 아이들의 사망 원인이 모유나 우유에 함유된 유당 성분을 정상적으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불내증’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마침내 1966년 유당이 없고 3대 영양소가 풍부한 콩을 이용해 만든 선천성 유당불내증 치료식 두유를 개발해 식물성 밀크(Vegetable + Milk) 라는 뜻의 ‘베지밀(vegemil)’로 명명했다. 베지밀로 1966년 제 1회 발명의 날 대법원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인은 1973년 정식품을 창업하고, 1984년 세계 최대의 규모의 설비를 갖춘 청주공장을 준공했다. 1985년에는 중앙연구소를 설립해 제품 개발과 품질 개선에 힘썼다. 또 경쟁기업들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만든 두유를 공급할 수 있도록 위탁생산(OEM) 전문회사 ‘자연과 사람들’을 설립했다.
정 명예회장은 ‘인류건강 문화에 이 몸 바치고저’라는 신념으로 콩 연구에 평생을 바쳐왔으며 국제적으로도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국제대두학회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누구든 공부에 대해 가슴앓이를 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1984년 ‘혜춘장학회’를 설립해 지난 33년 간 약 2350명에게 21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오는 12일이다.
◆'참기업가' 실천하고 떠난 식품 거목(巨木)들= 식품업계는 노익장을 과시하던 식품업계 거목의 잇따른 별세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국내에 카레를 대중화한 일등 공신인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은 지난해 9월12일 향년 8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오뚜기를 창업한 이후 47년간 국내 식품산업의 발전을 위한 외길 인생을 걸어온 한국 식품산업의 산증인이다. 품질제일주의로 한 평생을 바친 그는 국내 식품산업의 제품 대중화를 이뤘다.
1969년 5월 오뚜기를 창립하고 첫 제품으로 '카레'를 출시하며 국내에 처음 대중화시켰다. 1971년 제대로 된 케첩을 처음 생산했고 이듬해에는 마요네즈를 국내 최초로 상품화했다.
1978년 국내 최초로 2단계 고산도 식초 발효공법에 의한 2배 식초, 3배 식초를 개발했다. 이후로도 샐러드드레싱, 식초, 순식물성 마아가린, 레토르트 제품 등 보다 앞선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이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고인은 맛과 품질에 대해 소비자에게 철저히 책임을 지는 기업인이기도 했다. 매주 금요 시식에 직접 참여해 시식평가를 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등 맛과 품질에 대해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직접 챙겼다. 이러한 그의 집념과 철학이 국내 식품회사 중 가장 많은 1등 제품을 보유할 수 있는 이유다.
국내 조미료의 대명사가 된 미원을 만든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도 지난해 4월5일 9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일본에서 조미료의 성분인 글루타민산 제조 방법을 연구한 임 명예회장은 이듬해 부산으로 돌아와 동아화성공업을 세웠다. 여기서 국산 최초의 발효조미료를 만들었고 오늘날의 미원을 탄생시켰다.
당시 국내 소비자들의 밥상은 일본인이 개발한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장악하고 있었다. 임 창업주가 미원을 선보이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미원 열풍이 불었다. 어떤 음식이든지 미원만 넣으면 맛이 살아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제품은 날개 돋힌 듯이 팔려나갔다.
60년대 중반 임 창업주는 국내 최초로 발효법에 의한 글루타민산 생산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20여 종의 아미노산과 핵산 등의 제조기술을 개발하는데 일조했다.
그는 삼성그룹의 이병철 창업주가 평생의 한을 갖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조미료 시장에 진출할 당시 최고의 대표 브랜드인 '미원'을 꺾으려고 온갖 마케팅을 펼쳤으나 '미원'의 높은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말년에 자신의 의지대로 안된 것 중 하나가 '미원을 누르지 못한 것'이라고 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장 하면 샘표를 떠올릴 정도로 식품기업 샘표를 70년 장수 기업으로 키운 박승복 회장이 지난해 9월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고인은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원칙·품질 우선 경영철학으로 70년 역사를 지닌 샘표를 이끌었다.
그는 샘표식품 창업주인 박규회 회장의 장남으로 1922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났다. 1976년 55세에 선친의 뒤를 이어 샘표식품 사장으로 취임한 후 매출액 2614억원(2015년)을 올리는 샘표의 기반을 탄탄하게 쌓아 올렸다. 특히 '내 식구들이 먹지 못하는 음식은 만들지도 말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식품업 본연의 가치인 품질에 최우선을 두었다.
'세계 최고 품질의 간장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1987년 경기도 이천에 단일 품목 설비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간장 공장을 지었다. 선친이 사먹는 간장 시대를 열었다면, 고인은 품질에서 일본 1위 기코만 간장을 제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90년 일본장류연구소 간장품질테스트에서 샘표간장은 향과 색 등 품질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았다.
고인은 40여 년 동안 경영 일선에 있으면서도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목련장,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 한국의 경영자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했다.
이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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