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밥 일기] 서울에 육개장 맛있게 하는 음식점 없나요?
조선일보 입력2012.07.23 09:07 수정2012.07.23 10:04기사 내용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육개장?
필자와 비슷한 연배의 중년 남자들에게 여러 번 들은 이야기가 있다. 자기 어머니가 끓여주신 육개장만큼 맛있는 먹을 거리는 없다고... 공통적인 것은 그 중년 남자들의 고향이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이라는 점이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필자 역시 어렸을 때 집에서 가끔 먹었던 육개장 맛은 각별했다. 소고기와 파, 토란 등을 듬뿍 넣고 끓인 육개장은 담백하면서 아주 시원했다.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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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철 복날이면 연중행사처럼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육개장을 먹고 무더위에 지친 원기를 보충하고는 했다. 주로 하절기에 먹었던 육개장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매력을 가장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음식이었다. 또한 전언한 중년 남자들의 개인 경험치처럼 아주 맛있는 먹을 거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나이가 들고 나니 맛있는 육개장을 먹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서울 장안(長安)에 육개장을 잘하는 식당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당에서 파는 대부분의 육개장은 하나같이 지나치게 빨갛고 맵고 텁텁하기만 하다. 육개장을 좀 잘한다는 식당에 가도 옛날 집에서 먹던 그 맛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맛있는 육개장의 특징인 시원하면서 담백한 풍미가 어느새 실종한 것이다. 시중 식당에서 육개장을 만들 때는 거의 뼈를 사용해서 국물을 내기 때문에 깔끔하지 않고 국물 맛이 텁텁하기만 하다.
필자는 여러 해 전 지하철 무료신문에 맛집 기사를 연재한 적이 있는데 여름철이면 육개장 잘하는 음식점을 인터넷과 수소문을 통해서 계속 조사했지만 도대체 발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정보를 듣고 찾아간 식당의 육개장은 옛날 집에서 먹었던 육개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과연 육개장이 맛있는 음식일까 의심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허영만 화백 만화 '식객'에서도 육개장 맛있는 음식점이 없다고 했을까! 일반 식당에서 파는 맵기만 하고 텁텁한 육개장 맛은 내가 기억하는 육개장 본연의 맛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음식과 외식업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는 사람 사이에서 가끔 하는 이야기가 있다. 육개장을 잘하면 대박을 낼 수 있고 유명 식당으로 빠른 시간 내에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수도권에 진정한 육개장 맛집이 없기 때문에 선점의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육개장 맛집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기 때문에 달에 맨 처음 착륙한 닐 암스트롱처럼 육개장 최초의 지존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육개장을 잘 만들면 곰탕의 하동관처럼 상징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한우 소고기로 끓인 육개장이 정답이다
이런 이야기를 식당업주와 창업자에게 나 역시 여러 해 전부터 수없이 이야기했다. 육개장만 제대로 만들면 빠른 시일 내에 유명한 식당으로 우뚝 설수 있다고.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도 지금 서울, 인천, 경기도에서 "자기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육개장"과 근사치에 달한 풍미를 가진, 제대로 된 육개장을 제공하는 식당이 없다는 것이 명확한 결론이다. 이것은 순전히 필자 개인의 생각이 아니고 주위에 음식정보에 대해 한가닥 하는 지인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얼마 전 경기도 모처에서 한우식당을 하는 업주를 상담했다. 한우구이 무한리필 전문점을 하다가 작년 추석 이후부터 손님이 급감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조언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한우 육개장을 맛있게 만들어서 대외적으로 손님에게 확실하게 어필하자는 안이었다.
한우식당 업주는 대학교에서 축산학을 전공하고 한우도 키운 적이 있는 축산전문가로 한우를 일반 음식점보다 많이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경쟁력과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맛있는 육개장만 만든다면 손님에게 좋은 가격에 한우 육개장을 제공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가 있었다.
맛있는 육개장을 만드는 핵심 중 하나는 건더기 즉 소고기 고명의 푸짐함이다. 원재료를 풍부하게 써야 양질의 육개장이 가능하다. 그래서 한우식당 업주를 포함하여 몇몇 사람과 육개장과 불고기 등에 관한 벤치마킹을 며칠 동안 다녀왔다. 업무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맛있는 육개장 집을 발굴하고 싶었다.
맛있는 육개장 찾아 삼백리(三百理)
우선 나 혼자 먼저 다녀온 강남에 최근 오픈한 모 육개장 전문점. 상호와 인테리어 콘셉트는 모던하고 새로운 유형의 한식집이다. 밥은 즉석에서 돌솥밥으로 해서 맛있지만 육개장과 같이 나오는 5가지 찬은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진다. 육개장 역시 탕반이라 김치와 깍두기만 맛있으면 무조건 오케이다. 돌솥밥이라 음식 제공하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가한 오후 3시에 갔는데 식사가 나오는 시간이 15분 이상 소요되었다. 육개장 맛은 생각 외로 비교적 양호했지만 수입산 소고기에 건더기는 빈약했다. 가격은 7000원. 국물을 낼 때는 수입육은 한우를 못 따라간다. 철저하게 원 재료비를 맞춘 것이다. 생각보다는 괜찮았지만 상품력(맛)보다는 콘셉트가 앞서는 신개념 육개장 전문점이다.
충남 천안의 유명한 육개장집. 한우를 사용한 것은 적합했지만 뼈를 사용해서 국물 맛은 좀 탁하고 조미료 맛이 많이 강했다. 같이 벤치마킹에 동행한 한우식당 업주가 라면스프를 먹는 것 같다는 촌평을 했다. 우리가 원하는 그 육개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밥맛은 아주 좋았다. 나는 특을 주문했는데도 건더기의 양이 충분하지가 않았다. 가격은 보통 7000원, 특 9000원 이다.
그 다음은 대전의 유명한 육개장 집. 파개장으로 알려진 집으로 유명세답게 손님이 많았다. 수입육을 사용하고 파를 넣어서 파의 단맛이 우려 나온 것이 나름 괜찮았다. 그렇지만 맑고 시원한 육개장 맛이 아니었다. 국물 맛이 너무 진한 것이 역으로 단점이다.
경남 함양 대성식당은 소고기국밥으로 아주 우수하지만 육개장이라기보다는 경상도식 소고기국밥같다. 메뉴명도 물론 소고기국밥이다. 지극히 경상도스러운 반찬이지만 10가지 이상 나오는 찬들이 정성이 있었다. 그러나 육개장은 아니다.
최근 대구광역시에서 시(市)차원으로 육개장을 대구의 향토음식으로 육성한다고 한다. 매우 반가운 이야기다. 지명인 대구(大邱)를 딴 대구탕반(大邱湯飯)은 육개장과 따로 국밥을 지칭하는 옛날 음식 명이기도 하다. 대구의 육개장 전문점들은 서울보다는 앞서지만 육개장 한 그릇 먹으러 일부러 대구광역시에 갈 정도로 임팩트가 강렬할까? 글쎄다.
현재 육개장 지존은 옥야식당
필자가 생각한 가장 베스트 육개장 지존은 경북 안동의 옥야식당이다. 해장국이라는 메뉴명으로 팔지만 선지를 빼면 거의 90% 육개장에 가깝다. 충청도가 고향인 업주 할머니도 육개장이라고 이야기한다. 메뉴판에는 안 적혀 있지만 손님이 선지를 빼고 주문하면 서빙하는 직원이 육개장이라고 호칭한다.
팔순 가까운 할머니가 지금도 식당 입구 주방에서 육개장 고기를 일일이 손질하고 있다. 우선 이것이 30% 이상 먹고 들어간다. 국물 맛은 시원하고 담백한 육개장의 맛을 제대로 재현하고 있다. 여기에 한우 양지머리 등 고기의 질은 양호하고 양도 꽤 푸짐하다. 한 그릇 다 비우면 속이 편하고 든든하니 아주 충실한 국밥이다. 가격은 7000원.
서울에 70년 가까이 된 곰탕집이 근래 들어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비해 옥야식당은 아직도 명불허전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이것 하나 먹으러 안동까지 일부러 간적도 여러 번 있다. 몇 년 전만해 비교적 무명이었던 옥야식당이 전국구 식당이 된 것은 전적으로 인터넷의 힘이 크다. 거기에는 필자의 발굴이 꽤 한 몫 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그러나 업주 할머니는 잘 모를 것이다. 단 미리 뿌려서 나오는 후추의 맛은 좀 줄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후추의 강한 맛이 국밥의 맑은 국물 맛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치나 깍두기는 명성에 비해 딸리지만 육개장의 품질이 완전히 상쇄를 한다. 만일 필자가 다니는 회사나 집 근처에 옥야식당 동일 가격의 동급 수준의 육개장 집이 있다면 최소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아주 훌륭한 국밥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서울에서는 한우육개장을 7000원에 그렇게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의 육개장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서울 시내에 맛있는 육개장 집이 없다. 그렇다고 육개장 한 그릇 먹으러 매번 안동까지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잘 아는 한식전문가 더함 김인복 대표에게 맛있는 육개장을 개발해보라고 개인적으로 회유와 협박으로 강권했다. 맛있는 육개장을 완성하면 분명히 하루에 수백 그릇씩 이상 판매할 수 있다고 공언까지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육개장 맛있는 식당이 없으면 고객의 강력한 니즈를 모아서 맛있는 육개장 전문점을 탄생하게 해야 한다고.
이제는 고객이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5~6년 전부터 식당 경영자들에게 육개장에 대해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아직도 어느 누구 하나 맛있는 육개장 전문점을 실천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식 문화와 음식에 대한 철학과 직관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즈니스 측면에서 고객의 진짜 숨은 니즈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양질의 육개장은 남녀노소 누구나 다 선호할 수 있는 메뉴다. 전언한 안동 옥야식당 해장국(육개장)은 물론 중노년층이 선호하지만 20대 신세대도 충분히 좋아하는 먹을 거리다. 필자가 운영하는 회사의 젊은 직원도 옥야식당 육개장을 아주 좋아한다.
좋은 맛은 세대와 성별의 차이를 극복한다. 육개장은 아침, 점심, 저녁 3끼를 모두 먹어도 물리지도 않는다. 몇 년 전 다수의 식당 경영자들이 일본 야키니쿠 벤치마킹 투어를 다녀왔는데 일본인이 운영하는 도쿄의 야키니쿠 식당에서 상당히 훌륭한 육개장을 먹었다고 한다. 서울에는 없는 맛있는 육개장 집이 도쿄에는 있는 것이다.
육개장은 맛도 맛이지만 설렁탕, 곰탕, 평양냉면과 더불어 한국음식에서 백 년 이상의 역사적 내력을 보유한 몇몇 안 되는 소중한 한국음식의 자산이다. 따라서 육개장은 보존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한국의 대표 탕반 음식으로 개인적으로, 공적으로 육개장에 대한 묘한 애착이 있다. 또한 설렁탕, 곰탕과 비교해도 영양학적으로 훨씬 균형있는 웰빙탕반이라는 확실한 차별성도 있다. 그런 육개장이 장례식장 음식 이미지로 완전히 전락한 것이다.
고객의 적극적인 니즈로 맛있는 육개장을 개발
요리전문가와 파워블로거 등 맛에 일가견 있는 몇몇 지인과 함께 그제 밤 서울 청파동 더함에서 육개장 시식회를 했다. 우선 국물부터 먹었다. 예전에 먹었던 그 육개장 맛에 85% 정도 이상 근사치에 접근했다. 지나치게 맵지 않고 맑고 국물 맛이 깊었다. 진짜배기 육개장은 매운 음식이 아니고 바로 이 시원하고 담백한 음식이다. 시식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좋은 평가를 한다.
고기는 원래 육개장처럼 결대로 찢지 않고 두툼한 고기를 푹 끓여서 풍성하게 내놓았다. 오리지널 육개장처럼 고명을 결대로 찢으면 고기의 풍성하게 씹히는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없다. 안동 옥야식당은 고명을 두툼하게 내놓기 때문에 푸짐함의 미덕이 있는 것이다. 푹 익은 덩어리 고기 고명은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아주 괜찮다. 대만(臺灣)의 우육탕면에서 살짝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는 손님의 보편적인 기호를 파악해 육개장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결론적으로 서울 지역 식당 육개장 중에서는 현재 가장 앞서는 맛이다. 더함에서 시식한 육개장은 김치와 찬류 등은 아직은 미흡하지만 육개장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밀리지 않는 맛을 실현했다. 물론 손맛이 탁월한 많은 어머니들이 끓여주던 그 맛에는 완벽하게 접근하지 못했지만 늘 연구하는 주인장이 있으니 좀 더 좋은 육개장으로 진화할 것이다.
한우육개장 9000원. 한우는 소비자가 절대 선호하지만 원재료비에 대한 부담이 육개장 단가를 높은 책정해야 하는 취약점이 있다. 그러나 원재료비가 부담이 돼도 절대 만원을 넘기지 말라고 참견까지 했다. 양은 푸짐해야 하고. 무조건 박리다매로 가야 한다. 더욱이 주인장 김인복씨는 돼지떡갈비를 아주 잘 만드는 솜씨를 보유하고 있다.
저렴한 돼지떡갈비나 모둠전 등도 육개장과 메뉴 조합으로 밸런스가 맞는 음식이다. 경남 창원시에는 석쇠불고기(떡갈비)와 소고기국밥의 조합으로 엄청나게 성황 중인 식당도 있다. 선육후탕(先肉後湯)격이다. 드디어 서울에도 육개장 잘하는 식당이 한 곳 생기려나?
위치 : 서울 용산구 청파동2가 71-88 02-707-3692
글,사진 제공 /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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