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밥 일기] 평양냉면만 ‘진짜 냉면’이라는 편협한 사견(?)
서울 방이동 ‘봉피양’
송파구 마천동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과 점심약속을 잡았다. 마천동은 길이 좁아서 중간 지점인 방이동 정도에서 만나기로 했다. 메뉴는 날씨가 더운 관계로 냉면, 그것도 평양냉면으로 정했다. 20여 년 전 지금은 고인이 된 백파 홍성유 선생의 맛집 책자를 열독한 본인은 그 때부터 냉면은 평양냉면만 진짜 냉면이라는 편협한 소신을 보유하게 되었다. 사람은 역시 학습의 동물인가보다. 동국세시기 등 조선시대 후기 문헌을 보면 관서지방 냉면만이 엄연히 기록에 남아 있다. 서울 출신인 홍성유 선생은 생전에 평양냉면을 아주 좋아했다. 지금도 평양냉면 전문 식당은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대부분 포진해 있다. 오늘 접선 장소는 방이동 봉피양 본점이다. 작년에 필자의 회사 주관으로 일본 유명 야키니쿠 음식점과 조리세미나를 공동으로 진행한 적이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일본인 관계자들을 봉피양에서 식사를 대접했다.
일본인들에게 많이 판매할 수 있는 평양냉면
그 때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 바로 평양냉면이었다. 원래 본심(本音)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지만 그날 야키니쿠 관계자들은 평양냉면을 정말로 좋아했다.
나는 그들이 평양냉면을 잘 먹는 이유를 직관적으로 분석해봤다. 우선 메밀 함유량이 풍부한 굵은 평양냉면 면발은 일본의 '소바키리(蕎麥切り와 유사하다. 흰색을 띠는 면의 색은 냉면 그릇이 아닌 소바 채반에 담아서 내놓으면 영락없이 일본 메밀국수인 소바다. 메밀은 우리나라 사람보다 일본 사람들이 훨씬 더 선호한다. 일본 만화 ‘맛의 달인(’美味しんぼ)‘을 보면 주인공인 지로의 친우가 소바를 100판이나 먹는 단락이 있다. 과장도 있지만 그만큼 일본인들은 메밀을 좋아한다.
그 다음은 역시 육수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지금 일본에서는 역사가 훨씬 긴 우동과 소바보다 라멘이 더 인기가 많다고 한다. 전에 후쿠오카에서 만났던 일본의 3대 요리학원 나카무라의 이사장이 그 현상에 대해 명확한 해석을 내렸다. 우동, 소바에 비해 라멘은 육류를 주 재료로 육수를 내기 때문이라고. 즉, 일본 사람들이 이제는 육류로 만든 육수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140년 전 만해도 일본은 육류섭취를 금지했던 국가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왕이 1872년 육식 해금령을 내린 후 일본 국민은 고기를 섭취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탄생한 먹을 거리가 돈가스(豚)와 스키야키(牛) 등이다. 육류를 사용한 국물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음식점에서 라멘이 등장한 이후일 것이다. 아마 불과 수십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에 비해 우리 한국인은 수 백 년 전부터 설렁탕 곰탕 등 탕반의 고기 국물을 먹어왔다. 일본 후쿠오카 현지에서 먹은 돼지뼈로 국물을 낸 돈코츠라멘의 국물은 지나치게 진했다. 동물성 단백질을 선호하는 본인의 입맛 기준으로도 느끼했다. 돼지고기로 만든 제주도 고기국수가 담백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국물을 일본 사람들은 맛있다고 한다.
일본 라멘은 주로 돼지와 닭을 사용해서 국물을 낸다. 거기에 비하면 소고기로 육수를 내면 상대적으로 풍미가 맑고 깊다. 평양냉면이 일본인이 딱 좋아할만한 냉면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메밀면과 고기육수의 절묘한 조합이기 때문이다. 평양냉면이 일본에 진출하면 현재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모리오카(盛岡) 냉면 정도는 쉽게 추월할 수 있다는 쇼비니즘적인 발상이 떠올랐다. 그러나 모리오카 냉면도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인이 퍼트린 음식이 아닌가.
남자의 냉면 평양냉면
냉면을 주문했다. 일금 1만 1000원, 역시 비싸다. 그러나 양이 아주 푸짐해서 비싼 가격을 상쇄한다. 대식가만 아니면 구태여 사리를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냉면을 먹기 전에 나온 돼지고기 수육 두 점도 점수를 줄만하다. 냉면 양이 많고 수육이 나와서 구태여 선주후면을 할 필요가 없다. 아마 다른 냉면집에서는 만두나 수육을 별도로 주문했을 것이다.
봉피양 냉면의 매력은 냉면 위에 올려놓은 고명 중 하나인 얼갈이 절임이 면과 조화롭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면발이 굵어서 좋다. 굵은 면발은 메밀의 구수한 향을 입안에서 좀 더 만끽할 수 있다. 오늘도 육수를 남김없이 싹 비웠다. 지인은 냉면육수에 살얼음이 둥둥 안 떠있다고 컴플레인을 한다. 평양냉면을 제대로 먹을 줄 안다는 마니아들은 육수가 희석된다고 그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마포에 있는 유명 평양냉면집은 슬러시 같은 육수가 그집의 트레이드마크다.
평양냉면은 각자 해석이 분분하다. 마니아들은 다들 자기 단골집이 가장 맛있다고 타인에게 강권을 한다. 백화제방 백가쟁명이다. 맛이 밍밍한 평양냉면의 마니아는 대부분 남자다. 수육과 녹두전 등에 곁들여 가볍게 소주를 마신 후 개운하게 냉면으로 마무리하는 ‘선주후면’은 평양냉면 최고의 매력이다. ‘선주’가 불고기면 더욱 좋을 것이다. 달콤새콤한 함흥냉면은 대체로 여성이 더 선호한다. 개인적으로 봉피양 외에 우래옥 본점, 인천의 옹진냉면, 경북 영주의 서부냉면을 좋아한다. 올 여름에는 메밀 계통의 냉국수가 분명 강세를 이룰 것이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205-8 02-415-5527
글,사진 제공 /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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