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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M&A계 ''진공청소기'' 부각

곡산 2009. 1. 17. 16:28

롯데 M&A계 ''진공청소기'' 부각

일요신문 | 기사입력 2009.01.16 16:25


롯데그룹은 재계에서 인수·합병(M&A) 얘기가 흘러나올 때마다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기업집단이다. 가장 큰 이유는 롯데가 수조 원대의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는 지난해 두산그룹 주류부문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포함, M&A 시장에 나온 몇몇 매물들을 손에 넣었다. 올해도 롯데의 영역 확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우조선해양 인수 마무리를 위해 실탄 확보가 시급한 한화그룹 일부 계열사들의 강력한 인수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 위/한화 갤러리아 압구정점, 아래/여천NCC제1사업장

수적 경영'으로 정평이 난 롯데그룹은 지난해 의외의 행보를 보였다. 롯데쇼핑 롯데제과 호남석유화학 호텔롯데 등 계열사들이 외부로부터 총 1조 원가량의 돈을 차입한 것.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제2롯데월드 건설과 M&A를 대비한 실탄 확보 차원'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롯데는 "순수한 운영자금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현금만 3조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터라 이러한 회사 측의 해명은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롯데가 현금을 차곡차곡 비축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난해 하반기 대부분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M & A '승자의 저주'에 따른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것은 올해까지도 이어질 것이란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특히 대우조선해양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화는 인수 포기설이 나올 정도로 자금 경색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가 우량 계열사들을 매각할 것'이란 말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화의 유통 계열사인 한화갤러리아는 M&A 시장에 나올 경우 팔릴 가능성이 높아 진작부터 매각설이 나돌았다. 대우조선해양 매각주체인 산업은행에서도 한화의 자금 조달 방안 중 하나였던 자산 매각이 지지부진하자 '한화갤러리아를 매각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매각을 부인하던 한화도 자금난이 쉽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한화갤러리아를 내놓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벌써부터 몇몇 기업들이 한화갤러리아의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큰손' 롯데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이미 롯데는 지난 연말 한화와 접촉, 가격 등 구체적인 협상조건에 대해 의견을 나눴던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한화갤러리아를 염두에 두고 지난 연말 한화 측과 만난 것은 맞지만 양측이 원하는 가격 차이가 너무 커 협상이 원활하지는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한화는 2조 원가량을 원하고 있지만 롯데는 그 금액이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재계에서는 여전히 롯데를 가장 강력한 인수 후보로 꼽고 있다. 롯데가 그동안 한화갤러리아를 호시탐탐 노려온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견을 보이고 있는 가격부분도 4조 원 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롯데와 당장에 현금이 아쉬운 한화의 사정을 감안하면 '흥정이 가능하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산업은행이 한화 측에 사모펀드 조성 후 자산 매각이라는 카드를 제시하면서 롯데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전례를 봤을 때 사모펀드로부터 한화갤러리아를 인수할 경우 한화로부터 직접 사는 것보다 비싼 값을 치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롯데가 이처럼 한화갤러리아 인수에 의욕을 보이는 것은 '강남상권' 때문이라는 게 재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업계 1위 롯데백화점을 보유하고 있는 롯데는 그룹 사세에 비해 강남 지역에서는 경쟁사들에게 맥을 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명품으로 유명한 압구정점을 보유한 한화갤러리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롯데 관계자도 "사실 압구정점만 인수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돈도 적게 들고 효과도 높이는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한화에서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롯데는 한화갤러리아를 인수할 경우 강남상권 확대는 물론 백화점 업계 1위 자리도 굳게 지킬 수 있게 된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은 8조 385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화갤러리아의 매출액 1조 4000억 원을 더하면 백화점으로만 10조 원에 육박하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대백화점(지난해 매출액 4조 3800억 원)과 신세계(3조 2000억 원)와의 격차도 훨씬 벌어질 전망이다.

대형할인점 등을 포함한 유통부문 전체 1위를 놓고 자웅을 겨루고 있는 신세계와의 경쟁에서도 앞서 나갈 수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동빈 부회장의 라이벌로 꼽히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한화갤러리아 인수를 위해 뛰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롯데가 자존심 때문에라도 적극적으로 매입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롯데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호남석화)이 한화와 대림이 공동출자(50 대 50)해 설립한 여천NCC를 인수하려 한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그동안 호남석화는 M&A를 통해 덩치를 불려왔다. 지난 2003년엔 현대석유화학을, 2004년엔 KP케미칼을 인수했다. 신년 초엔 롯데대산유화를 합병했다. 이로써 호남석화는 에틸렌 기준 연간 생산 175만 톤으로 여천NCC(181만 톤)에 이어 국내 석유화학업계 2위로 규모가 커졌다. 그런데 최근 여천NCC 매각설과 함께 인수 후보로 호남석화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검토한 적은 없다"면서도 "여천NCC도 매각 대상군에 오른 것은 맞지만 대림과의 관계도 있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호남석화 역시 "그런 얘기가 나온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한화의 합작사인 대림그룹 역시 건설경기 침체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여천NCC 매각설은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한화리조트 및 한화 소유 부동산들도 롯데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