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을 향해 간다'…장수기업 어제와 오늘 | ||||||
혼돈의 시대 '장인정신으로 110년 다진 두산·동화약품' | ||||||
| ||||||
"창업한 지 60년 이상 된 우리 기업의 장수 비결을 분석해 100년 장수기업으로 지속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형 경영모델을 개발하겠다." 지식경제부가 지난 8월 밝힌 '100년 장수기업 만들기 프로젝트'의 주요 골자다. 요즘처럼 국내외 경제가 혼돈의 시대를 맞고 있는 상황이라면 장수기업을 향한 한국형 경영모델의 개발은 더욱 절실해 보인다. 그럼 한국형 경영모델은 어떤 것일까. 오랜 역경을 극복하고 재계에 우뚝 선 장수기업을 따라가 봤다.
국내 재계에서 장수기업으로 꼽히는 곳은 어디일까. 보통 장수기업이라고 하면 100년 이상된 기업을 꼽을 수 있다. 산업화가 선진국에 비해 비교적 늦은 우리나라의 경우 두산과 동화약품 정도가 100년 이상 장수기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두산은 올해로 112주년, 동화약품은 111주년을 맞았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자' 두산그룹은 국내 대표적인 보수기업이다. 고 박승직 창업주의 ‘인화제일주의’ 경영철학과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자’는 안전 우선주의 경영스타일이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두산만큼 시대변화에 따라 발빠른 변신을 시도한 기업도 찾아보기 드물다. 늘 변화의 중심에서 고강도 구조조정과 공격적인 경영스타일을 만들어내며 대그룹의 위용을 갖춰왔기 때문이다. 두산의 시작은 1896년 8월1일 서울 종로4가에서 출발한 ‘박승직상점’이 모태다. 주식회사로서의 요건을 갖췄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국내 최초의 회사라고 봐야한다는 게 두산 측의 설명이다. 이후 두산이 주식회사를 출범시킨 것은 1933년 12월18일이다. '소하기린맥주'를 통해서다. 그리고 1951년 두산이란 이름을 처음 사용하게 된다. 소하기린맥주는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OB맥주로 변신했고, 1960년대 들어 건설과 음료, 기계부문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그룹의 면모를 갖췄다. '가족경영'은 두산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형제간 폭로전이 난무했던 '형제의 난'으로 가족경영에 상당한 흠집을 남기긴 했지만 지금까지 5대째 이어지는 가족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두산이 늘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불어 닥친 외환위기는 두산에게도 큰 시련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발빠르게 시행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룹 전체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무게를 낮췄던 것이다. 단적으로 소비재 위주의 계열사 구성만으로 수익 창출이 어렵다고 판단한 두산은 과감하게 주력사업을 매각했다. 성장의 근원지인 OB맥주 영등포 공장 부지까지도 매각했을 정도다. 2002년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계열사를 재편하고, 재계 최초로 연봉제를 도입하는 획기적인 모습도 보였다. 뿐만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하면서 변화에 아낌없는 투자도 단행했다. 두산은 현재 창업 5세대의 틀을 갖춰가고 있다. 최근까지도 공격적인 M&A를 통해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으로 두산이 200년 장수기업의 면모를 어떻게 갖춰가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장인정신으로 한우물 판다' 동화약품은 장인정신으로 한우물을 판 기업으로 유명하다. 국내 최초 제약회사인 동화약품은 노천 민병호 선생의 ‘동화약방’이 전신이다. 궁중 선전관이었던 민병호 선생은 1897년 9월25일 오늘날 동화약품이 자리한 서울시 중구 순화동에 동화약방을 설립했다. 동화약품의 ‘활명수’는 100년 넘는 전통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1910년 상표 ‘부채표’를 포함해 30여종의 의약품에 대해 특허를 등록하는 등 명실상부 제약업계의 살아있는 명품브랜드다. 1937년 고 윤창식 선생이 인수해 사세를 확장했고, 1962년 동화약품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화약품의 장수비결에 대해 업계는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삼고 약품이란 한우물을 판 장인정신을 꼽는다. 또 직원을 한가족처럼 생각하는 경영철학은 제약업계의 모범적 사례다. 전통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한국인의 체질에 적합한 의약품을 만들어낸 신뢰가 쌓여 100년 넘는 명품브랜드를 이어가고 있다. 동화약품은 현재 소화제 까스활명수와 감기약 판콜, 상처치료제 후시딘 등 스테디셀러를 이어가면서 국내를 넘어 해외로도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아직 제약업계 수성에는 가야할 길이 멀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의약품 개발에 매진하며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오너와 조직문화의 조화' 100년 장수기업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경방그룹 또한 한국 근대산업을 이끈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세월의 무게로 현재의 사세는 많이 약화됐지만 한때는 재계서열 3위에 오를 정도로 손꼽히는 기업이었다. 90년 역사를 눈앞에 둔 경방은 구한말 가내 수공업 형태에서 출범했다. 1919년 10월5일 ‘민족의 회사, 조선인의 회사’를 모토로 출발했다. 경방의 창업이념은 ‘경제독립과 민족자존’이다. 주주 공모 방식을 거쳐 2만주의 발행 주식 전부를 한국인들이 소유한 상태에서 출발했다. 경방이 전성기를 달린 시기는 1970년대다. 정부가 경공업 위주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했던 탓에 방직물류시장을 선도하면서 고도성장을 이뤘다. 이후 방직업이 쇄락하면서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예컨대, 1994년에는 한강케이블TV 및 경방필백화점을 개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방은 재계 수성에서 여전히 한발 물러서 있는 상태다. 그러나 경방의 조직문화는 장수기업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된다. 전문경영인을 우대하는 정책으로 다시 일어섰고, 여기에 직원들의 애사심과 끊임없는 기술력을 쌓아 나갔다. 영업실적이 좋던 나쁘던 업계 최고 대우를 한다는 회사의 원칙으로 타 기업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하이트진로그룹도 알고 보면 올해 75주년이나 된 장수기업이다. 하이트맥주란 사명을 사용한 것은 1998년부터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조선맥주, 크라운맥주 등이 모두 전신이다. 하이트맥주는 1933년 일본기업이 세운 조선맥주가 출발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청의 관리에 들어갔다가 명성황후의 조카로 구한말 세도가였던 민영익의 증손자 민덕기씨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이때 크라운맥주로 상표를 바꿨다. 이후 1966년 고 박경복씨가 경영권을 인수했고, 차남인 박문덕 회장이 바통이 이어받아 국내 대표 맥주업체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업계에선 하이트가 국내 대표 맥주업체로 자리 잡은데 대해 ‘눈높은 마케팅’과 ‘뛰어난 오너들의 능력’을 꼽는다. ‘장인정신’ 기업가로 손꼽히는 고 박경복 명예회장의 ‘현장주의’와 마케팅을 강조하는 ‘영업통’ 박문덕 회장의 경영능력이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다.
|
'업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수기업 성공 DNA (0) | 2008.11.26 |
---|---|
[그 골목엔 뭔가 있다]<1>방산시장 베이커리 골목 (0) | 2008.11.25 |
‘재테크’인가? ‘경영권 다툼’ 전주곡인가? (0) | 2008.11.09 |
끈끈하던 가족경영 결국 금가기 시작하나? (0) | 2008.11.09 |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의 이상한 M&A전략 (0) | 2008.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