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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최혜현(서울 강남구·32)씨는 요즘 먹거리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 26개월 된 아들에게 안전한 음식을 먹이기 위해서다. 식품제조업체·집단급식소 등에서 식품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운영 중인 HACCP(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의 기본 원리를 가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 말하자면 가정 HACCP이다.
지난 12일 최씨의 집을 방문, 가정 HACCP의 핵심인 주방 관리, 손씻기, 조리, 보관 등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살폈다. 강남차병원 가정의학과 이기호 교수가 동행했다.
◇주방은 미생물의 온상=조리대 앞에서 최씨는 “수세미·행주는 매일 삶아 완전히 말린 뒤에 다시 쓴다”며 “채소용과 고기용 칼·도마를 구분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평가 점수는 50점.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세균이 가장 많은 것은 수세미. 다음은 행주·도마 순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이철수 박사가 젖은 행주의 세균 수를 검사했다. 식중독균인 포도상구균이 g당 1000만 마리 이상이었다. 이 정도면 식중독을 일으키고도 남는다. 수세미·행주를 잘 삶은 뒤 바짝 말려 사용하는 것은 가정 HACCP의 기본이다.
◇교차오염을 막아라=‘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있다. 식중독균 오염에 관한 한 ‘윗물’은 어류·육류·계란 등 동물성(단백질 풍부) 식품이다. 식중독균이 단백질 식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랫물’은 채소·과일·곡류 등 식물성 식품이다. 이런 식품에선 식중독균이 잘 자라지 못한다. 이것이 윗물과 아랫물이 서로 섞이지(교차 오염) 않도록 해야 하는 이유다(푸드원텍 오원택 박사). 가정에서도 어류·육류·채소용 주방기구(도마·칼·젓가락 등)를 따로 두는 것이 안전하다. 이 교수는 “어류를 조리하던 칼로 채소를 자르면 어류의 식중독균이 채소로 전해질 수 있다”며 “주방 공간이 협소해 도마를 여럿 둘 수 없으면 책받침처럼 얇은 도마를 이용하라”고 조언했다.
◇수술실 의사처럼 손을 씻는다=최씨는 손씻기 부문에선 합격점을 받았다. 그는 음식 조리 전과 상을 차리기 전에 30초가량 흐르는 물에 손을 씻는다. 이 교수는 “비눗물로 손을 20초 이상 씻으면 식중독균을 90% 이상 제거할 수 있다”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일반 비누보다 살균력이 높은 항균비누를 사용할 것을 권했다. 손에서 세균 오염이 가장 심한 부위는 손가락 사이라며, 깍지를 끼고 잘 비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름엔 팔뚝까지 씻어야 한다. 이때 가능한 한 손가락 끝은 위로, 팔뚝은 아래로 향한다. 그래야 조리에 사용하는 손이 팔뚝을 씻은 물에 다시 ‘오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얀 거탑’ ‘뉴하트’ 등 의료 드라마에서 집도의가 팔을 수직으로 올린 채 수술실에 들어서는 것은 이래서다.
◇75도 이상 가열 조리한다=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 후 우리 국민에게 익숙해진 숫자가 75다. ‘75도 이상 가열하면 안전하다’는 사실이 널리 홍보돼서다. 세균·바이러스 등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열이다. 75도에서 1분 이상 가열하면 살아남을 미생물은 없다. 가끔 고열 처리한 음식을 섭취한 뒤 식중독에 걸렸다는 사람도 나온다. 검사해 보면 거의가 포도상구균 식중독이다. 식중독은 세균 자체가 아니라 세균이 분비한 내열성(耐熱性) 독소가 주범이다.
조리할 때 식품의 표면이 아니라 내부까지 75도에 도달해야 한다. 따라서 식품 내부 온도를 측정하는 온도계를 구입해 사용하는 것도 ‘남는 장사’다.
◇냉장고 과신은 금물=최씨 집의 냉장고를 열자 반쯤 먹고 남긴 사과가 랩을 씌우지도 않은 채 보관돼 있었다. 평가는 ‘부적합’. 이 교수는 “냉장고를 과신해선 안 된다”며 “냉장은 물론 냉동 상태에서도 식중독균은 증식이 억제될 뿐 죽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냉장고에 넣어둔 우유가 며칠 지나면 시큼해지는 것은 냉장 온도에서도 세균이 느리지만 증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남은 음식은 신속하게 냉장고에 보관하되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버리는 것이 원칙. 특히 침이나 젓가락이 닿은 부위는 확실히 제거한 뒤 냉장고에 옮긴다.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서 꺼낸 뒤엔 75도 이상으로 재가열해 먹는다.
◇가정 HACCP의 핵심은 온도·시간=가정 HACCP에선 생물학적 위해요인(세균·바이러스 등 식중독균)의 관리가 성패의 관건이다. 화학적(농약·중금속 등)·물리적(이물 등) 위해요인에 대해선 가정에서 대처할 수단이 별로 없다. 잘 씻고(농약 제거), 포장을 뜯은 뒤 내용물을 잘 살피는(이물 확인) 정도다.
이 교수는 “조리 과정에서 열을 충분히 가해 세균·바이러스를 죽이고(생물학적 위해요인 제거) 일단 조리한 음식은 가능한 한 빨리(4시간 이내) 섭취해 미생물이 증식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 가정 HACCP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