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경영

M&A 승부사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곡산 2008. 4. 6. 10:55
M&A 승부사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글로벌 기업 되려면…국적을 지우고
해외 M&A 성공통해…스피드 높여라

◆창간 42기획◆

대담 = 박재현 산업부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53)의 두산타워 33층 집무실은 너무나 좁았다. 기껏 5~6평이다. 그러나 집무실 절반이 유리창으로 돼 있어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넓었다. 박 회장은 이 조그만 공간에서 세계를 향한 꿈을 키워 왔다. 그 결정판이 지난해 미국 밥캣을 인수한 것이다. 무려 49억달러를 들여 샀다. 인수ㆍ합병(M&A)을 통해 성장하겠다는 꿈은 국내보다 해외로 향해 있다. 그의 머릿속 'M&A 위시 리스트(Wish List)'에도 외국 기업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두산그룹 매출은 18조6000억원. 박 회장은 자체 성장과 해외 M&A 등을 통해 2015년 100조원 규모로 키워 낼 생각이다. 공적자금 지원 없이 외환위기를 극복한 뒤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등을 잇달아 인수해 두산의 사업구조를 바꾼 주역이 박 회장이다. 오너이면서도 오너 같지 않은 전문경영인이다. 박재현 부국장(산업부장)이 그를 20일 만나 'M&A 비법'을 들었다.

-두산의 M&A 파워는 어디서 나오나.

▶단순한 영토 확장이나 성장 욕구, 기회 포착 등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필요한 제품, 원천기술, 네트워크, 생산능력 등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서 경영의 구조적 스피드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신제품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선 기업이 도망가는 속도가 후발 주자가 따라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따라잡는 길은 스피드를 올리는 방법밖에 없다. 여러 가지 자원을 보유한 업체를 인수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밥캣 인수에 만족하나.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에서 강하고, 밥캣은 북미에서 강하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스스로 북미에서 밥캣 위치에 가려면 20년간 매년 성장해야 가능하다. 반대로 밥캣이 중국에서 두산인프라코어 위치에 가려면 10년 걸린다. 그러나 M&A를 통해 단 6개월 만에 가능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쇼크에도 불구하고 밥캣은 작년에 목표를 달성했고 올해도 첫 두 달간 목표를 이뤘다. 우리와 시너지 효과도 다른 시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자금 조달 때문에 두 달 정도 늦어졌지만 이자율이 더 떨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덕을 봤다.

-두산이 M&A에 잇달아 성공하는 비결은.

▶늘 'M&A 리스트'를 놓고 검토할 수 있는 것은 인수 대상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M&A 성패의 80%는 인수 경쟁이 시작되기 전에 결정된다.

가격을 적어내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다. 반드시 사전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M&A 과정에서 내부 조직과 시장에서 어떤 문제가 예상되는지, 경쟁자는 어떻게 반응할지 조사해 작전을 세워야 한다.

인수 후에는 파견 인원을 최소화해야 한다. 한국중공업 인수 때도 7000명 가까운 조직에 10명 남짓을 파견했다. 밥캣에도 부사장급 2명을 포함해 6명뿐이다.

현지 임원 가운데 우리 철학과 맞는 사람을 골라 쓴다. 직관으로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두산의 '인사 지도(People Program)'를 통해서 한다.

-인수한 기업과 융화하려면.

▶오늘도 오전 2시 반에 미국 지주사 사장과 통화하느라 잠을 못 잤다. 우리 쪽에서 파견한 임원이 있지만 항상 미국인 임원들과 먼저 의논한다. 늘 인수 기업 대표와 두산의 철학ㆍ프로세스를 공유한다. 지난해 12월 1일 정식으로 밥캣 주인이 된 뒤 전 사업장을 돌며 '타운홀 미팅'을 했다.

-M&A 실력을 어떻게 갖췄나.

▶기업을 팔면서 배웠다. 외환위기 직전 구조조정을 위해서 코닥 네슬레 코카콜라 OB맥주 등을 잇달아 처분했다. 2년간 기업을 매각하다 보니 파는 사람 처지를 알게 됐다. 반대로 우리가 사기 시작했을 때는 어느 정도 가치를 지불하는 게 정당하고,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뭔지 터득했다.

-두산의 M&A 조직이 강하다고 하는데.

▶M&A 실무를 전담하는 CFP(Corporate Finance Project)팀에 10여 명이 있다. 그룹 어른들과 핵심 포스트가 일사불란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실무 지원까지 완벽하게 이뤄진다. M&A를 20건 이상 하다 보니 이견이 없다. 서로 눈만 보면 뭘 얘기하는지 알 정도다. 해외 M&A를 시작하기 전 4~5년간 인사제도, 전략 수립, 수행 평가, 조정 메커니즘 등을 글로벌 수준에 맞추기 위해 컨설팅 비용으로만 1000억원 이상을 썼다.

인사제도의 경우 미국 GE 출신을 직접 불러 조언을 받았고, 전략부문에선 10년 이상 맥킨지와 파트너 관계다. 조정 메커니즘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작업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느끼는 것이 많을 텐데.

▶글로벌 플레이를 하려면 국적이 사라져야 한다. 조직 구성원 대부분이 글로벌 시민이 돼야 한다. 합리성은 미국에서, 저돌적 공격 정신은 한국에서, 문화적 유연성은 유럽에서, 성장의 당위성은 중국이나 동유럽에서 취해야 글로벌 기업이 된다.

세계 경제는 이제 '이머징 마켓(신흥시장)'과 '어드밴스트 마켓(선진시장)'만 있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과의 사이에 '샌드위치'가 됐다는 시각은 한ㆍ중ㆍ일이 동일한 시장을 놓고 경쟁할 경우에는 맞지만 어디까지나 특정 산업에 국한되는 고민이다.

중국은 기회의 땅이고 가장 중요한 파트너다. 국내 상당수 기업이 이머징 마켓에 더 적합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위기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회를 잃는 것은 더 큰 위기다.

◆ He is…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 손자이자 박두병 초대 회장의 5남이다. 1955년생으로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보스턴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82년 두산건설에 입사해 계열사 대부분을 거쳤다.

지난해 말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에 취임해 형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과 함께 두산그룹을 이끌고 있다. '워커홀릭'에 가깝지만 걷기와 사진 찍기를 즐긴다.

2004년 창업지인 종로4가 배오개부터 해남 땅끝까지 550㎞를 걸었고, 지금도 유럽 출장 때 틈틈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

[신헌철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