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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경영에 성공한 외국 기업들

곡산 2008. 4. 6. 10:37
스피드경영에 성공한 외국 기업들
사소한 상황 변화도 실시간 체크

스피드경영에 정성을 기울이는 한국 기업들이 하나같이 벤치마킹 상대로 삼고 있는 기업은 외국 글로벌기업들이다. ‘스피드경영 측면에서는 글로벌기업과 아직 격차가 있다’는 게 스피드경영에 특히 관심이 많은 한 기업 관계자 설명이다. 그중에서도 GE, 자라, 월마트 등은 스피드경영을 통해 현재 자리에 올라선 기업으로 유명하다.

GE 스피드경영의 핵심은 ‘명확한 원칙’이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을 당시 GE에는 재보험, 항공엔진, 의료기기, 발전 등 테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업부문이 여러 가지였다. 더군다나 9월 11일은 신임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이 취임한 지 불과 4일째 되는 날. 아직 업무 파악도 덜 된 상태였던 이멜트 회장이 바로 사태를 수습하고 사업부문 재편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셈이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이멜트 회장은 의연하게 사업부문 재편에 들어갔다. 보험업을 매각하고 기업금융 대신 소비자금융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6년간 약 800억달러를 들여 유망사업을 인수하고 거꾸로 350억달러 규모의 사업을 매각하는 사업구조조정 작업을 계속했다. 현재 GE의 6개(기업금융, 소비자금융, 인더스트리얼, 인프라스트럭처, 의료·제약·생명공학, 영화·방송·오락) 사업군은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사업개편은 성공적이었다. 2004년 이후 11분기 동안 8%가 넘는 자체성장률(인수합병 등이 아닌 기존사업을 통한 성장)을 기록했다. 동종업계 대비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GE가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GE의 전통으로 내려져오고 있는 ‘명확한 사업구조 조정원칙’ 때문이다. ‘1~2위가 아닌 사업은 재구축하거나 매각한다’는 게 GE의 원칙이다. 이 원칙에만 근거해 결정을 내리면 되니 빠르게 사업 구조조정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1~2위가 아닌 사업은 재구축하거나 매각한다는 게 GE의 원칙이다. 원칙이 확고하면 스피드는 따라온다.
한편 GE 스피드경영은 디지털조정실(Digital Cockpit) 시스템으로 대변된다. GE의 주요 경영진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 100여국에 진출한 GE 기업들의 각종 경영성과와 경제지표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수십 개의 계기판을 한눈에 보면서 비행기를 안전하게 조종하는 것처럼, 경영자들도 전 세계 사업장의 모든 경영현황을 통합해 살펴봄으로써 사소한 상황변화에도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평소 자신과 관련없는 분야라 해도 다양한 문제 상황과 그에 대한 대처 요령을 숙지하는 문화도 GE 스피드경영을 규정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천두성 GE코리아 이사는 “사무직원이라고 해도 공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한 대응요령을 숙지하고 있다. 매년 정기적으로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문제 발생 시의 원인과 대처방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 대응 능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오는 5월이면 국내에서도 자라(ZARA) 매장을 볼 수 있게 된다.

자라는 전 세계적으로 패스트패션(Fast Fashion) 열풍을 몰고온 글로벌 의류 브랜드다. 모기업인 인디텍스(Inditex)는 지난해 기준 전 세계 68개국에서 3700개의 매장을 운영한다. 지난해 상반기 순매출은 41억2400만유로(약 6조4600억원)로 전년 대비 19% 이상 성장했다.

75년 스페인의 작은 옷가게로 출발한 자라는 이제 인디텍스의 대표 브랜드로 우뚝 성장했다.

품질, 디자인, 가격 세 가지가 모두 자라의 성공신화를 만든 요인이지만 정작 자라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생산속도’였다. 자라는 초고속생산시스템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자라 본사에서는 최신 패션 트렌드를 15일 내에 상품화한다. 트렌드스포터(Trend Spotter)로 불리는 200여명의 디자이너들이 백화점, 쇼핑센터, 나이트클럽 등 현장을 돌면서 소비자들의 요구를 수시로 파악하는 덕분이다. 디자이너 개인의 강한 개성이나 주장을 배제하고 대신 현장의 트렌드를 빠르게 쫓아갔다. 트렌드 중심의 상품 기획을 하다 보니 일부에선 ‘개성’이 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소비자의 의견과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다 보니 도리어 ‘트렌드에 민감한 개성 있는 대중 브랜드’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자라에서는 신상품을 매주 2번 이상 공급함으로써 ‘빠른 기업’ 이미지를 얻었다.
이 같은 빠른 상품화는 제품 회전율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방소현 자라코리아 재무담당 이사는 “최소한 매주 2회씩 스페인 본사에서 물건이 들어온다. 이 중 80%는 기존 상품이고 20%는 신상품이다. 결과적으로 2주 반만 지나면 매장에 있는 제품은 모두 신제품으로 바뀌는 셈”이라고 전한다.

최고 트렌드 브랜드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라는 소량 한정 생산만 한다. 한 의류당 10만~35만장 정도 생산하는 게 고작이다. 당연히 물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회사는 이를 제품 출고 횟수를 높이는 식으로 보충한다. 원하는 물건이 품절돼 아쉽긴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또 다른 제품이 계속 나오니 아쉬움을 접고 새로운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는 셈이다.

이는 또 다른 효과도 가져왔다. 소비자 마음속에 자라 옷은 ‘오늘 안 사면 못 입는 옷’이라는 인식이 심어지면서 ‘매장에 들른 이상 마음에 드는 옷은 꼭 사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분위기가 자라 매출액 상승 기반이 된 것은 물론이다.

월마트는 지난해 6월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에 1위로 선정됐다.

2006년 딱 한 차례, 엑손모빌에 밀려 2위를 기록했던 적을 제외하면 월마트는 최근 6년간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영향에도 지난해 실적도 좋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절정이었던 4분기에도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8.3% 증가했고 순이익이 4% 늘어난 41억달러를 달성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 위상을 차지한 월마트는 스피드경영 대표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88년까지는 K마트가 월마트보다 규모가 컸다. 월마트 매출액이 159억달러였던 반면 K마트 매출액은 256억달러에 달했다. 이후 월마트가 K마트를 추월하게 된 가장 커다란 배경은 ‘자주’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월마트는 물건 공급 기간을 축소함으로써 재고를 대폭 줄였다.
K마트는 2주일에 한 번씩 물건을 공급한 반면 월마트는 1주일에 두 번씩 물건을 공급했다. 결과적으로 월마트는 재고를 K마트의 4분의 1로 줄이거나 소비자 선택의 폭을 K마트보다 4배로 늘릴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게 됐다.

첨단 IT(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실시간으로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월마트식 스피드경영도 유명하다. 이른바 QR(Quick Response)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월마트는 세계적인 생활용품 메이커인 P&G사와 정보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일선점포의 생생한 정보를 바로 알 수 있는 P&G사는 그에 맞는 생산계획을 세운다. 제조업체가 현장 상황에 맞게 제품을 생산하니 당연히 유통업체의 발주 기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연히 재고가 없어 해당 제품을 찾는 소비자에게 물건을 전달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크게 줄어든다.

이 같은 월마트의 경영 방식은 현재 전 세계 유통업체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특별취재팀 = 김소연(팀장) / 정광재 기자 / 김경민 기자 / 김충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50호(08.04.09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